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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늦봄 Nov 11. 2021

2주 차 초보 워킹맘의 하루

눈을 번쩍 떠보니 아침 6시 반이다.  


다행히 14개월 된 우리 아기는 아직 잠에서 깨지 않은 것 같다. 지난주에는 아기가 저녁 7시에 잠들어서 아침 5시면 깨어나 출근 준비를 시작하는 7시까지 졸린 눈을 비비며 두 시간 동안 함께 놀아야 했는데, 다행히 지난 이틀간은 밤 9시에 잠들어서 아침 7시에 일어나고 있다. 이 얼마나 기적 같은 일인가. 물론 3시 반에 우유 200ml를 드시고 다시 잠드신 것은 안 비밀이다.  


눈을 뜨자마자 챙겨야 할 것들이 산더미다. 아기 아침밥으로 두부와 버섯을 굽고, 내가 퇴근하기 전에 아기가 먹을 저녁밥을 챙겨둔다.  삶은 브로콜리와 이미 만들어 놓았던 고기완자, 그리고 냉동해두었던 순부두 들깨국을 해동해서 식판에 담아 놓는다. 하필이면 오늘 어린이집 점심메뉴와 간식이 14개월 우리 흥이에게는 좀 이른 메뉴이다. 점심 메뉴인 짜장밥과 치킨너겟을 대체할 아기 불고기를 굽고, 오후 간식인 초콜릿 케이크와 요구르트를 대체할 할머니표 바나나빵과 멸균우유를 챙겨서 어린이집 가방에 넣는다.  


그동안 아기는 깨어나서 놀아달라고 주변을 맴돌다가 엄마가 바빠 보이니 혼자 놀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아빠가 씻는 동안 화장실 앞에 매달려 있다가 또 혼자 놀 거리를 찾아 바쁘게 움직인다. 식판에 준비해준 아침은 거의 먹지를 않아서 이리저리 돌아다니다가 입에 한 개씩 넣어주면 그래도 받아먹어 준다.

 

오늘은 고장 난 아기띠를 AS 맡겨야 하는 날이다. 어제 AS 센터에 미리 신청해 놓아서 빈 박스에 넣어 놓기만 하면 된다. 박스에 아기띠를 넣고 테이프를 붙이는데, 테이프 뜯는 소리에 아기가 달려온다. 하루도 아기띠 없이 버틸 수 없기에, AS를 보내기 전에 어제저녁에는 새것 같은 중고 아기띠를 당근거래 해놓았다.  


남편이 씻고 나서, 급하게 나도 씻고, 아기 어린이집 가방을 마저 싼다. 식판 하나에 숟가락 3쌍 (오전 간식, 점심, 오후 간식). 턱받이, 물통, 칫솔까지 넣었다. 저녁에 할머니와 저녁밥 먹을 때 필요할 숟가락과 턱받이, 집에서 먹는 물통도 따로 챙겨 놓는다.  


내가 옷을 갈아입는 동안 남편은 아기의 내복을 갈아입히고, 남편이 나갈 준비를 마치는 동안 내가 아기의 외출복을 마저 입힌다. 두꺼운 아기 외출복은 아직 빨래를 못해서 세탁 바구니에 담겨있다. 따듯해 보이는 옷을 꺼내 입혀본다. 내가 바쁘게 움직이는 동안 남편이 내가 운전하며 마실 커피를 텀블러에 내려 주었다. 주방과 거실을 대충 정리하고 집을 나선다. 나는 물만 한잔 마시고, 남편은 식탁 위 빵 한 조각만 먹었고 아기 음식을 준비하는 것밖에 하지 않아서 크게 어질러지지는 않았지만, 오후에 친정엄마가 아기를 봐주러 오시니 어느 정도 정리는 해 놓아야 한다.  


아빠 껌딱지인 흥이는 아빠와 어린이집 앞에서 헤어지면 통곡을 하기 때문에 내가 아기를 안고, 어린이집 가방을 들고 먼저 어린이집으로 향한다. 그동안 남편은 내 텀블러를 아파트 입구에 가져다 놓고 지하철을 타러 간다. 어제까지는 아기를 안고, 아기 가방에 내 가방까지 짊어지고 나오느라 힘들었는데, 이제는 그냥 차키와 핸드폰만 챙기기로 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어린이집이 아파트 현관에서 10걸음만 걸으면 된다는 것이다. 만약에 어린이집이 멀다면? 10분 먼저 집에서 나와야 했을지도 모르고, 비가 오거나 추운 날에는 더욱 힘들었을 것이다. 아기를 안고 우산을 쓰고 걷는다는 것은 생각만 해도 너무나 힘든 일이다. 다행히 최소의 동선으로 아기를 어린이집에 데려다주고, 손을 흔들고 나와서 주차장으로 향했다. 주차장으로 향하면서 어린이집 어플 알림장에 글을 올린다. 오늘 아기 점심 대체 메뉴와 간식 대체메뉴를 가방에 넣었으니 그것으로 먹여달라고 말이다.  


복직 전 계획대로라면, 내가 재택근무를 하거나 육아기 단축근무를 써서 좀 더 여유롭게 어린이집에 등원을 시키려고 했는데, 인생은 계획대로 되지 않는다. 복직 첫날, 육아기 단축근무를 쓰고 싶다고 이야기를 꺼냈다가 퇴짜를 맞았다. ‘권리이기는 하지만 지금 사무실에서 한창 바쁠 때인데, 굳이 복직하자마자 써야 하느냐’라는 게 나를 관리하는 국장님의 의견이었다. 본인도 육아휴직 후 아기 8개월 때 복직을 하였다며, 아기들은 어차피 기억하지 못하니, 처세술을 알려주는 것이라 하였다. 내 육아휴직을 기다리지 않고 다른 사람을 고용하겠다는 주변이들에 맞서서 내 자리를 15개월 동안 지키느라 자기는 이미 최선을 다하였는데, 내가 육아기 단축근무까지 쓰면 본인이 이제 더 이상 감당이 어렵다는 것이었다. 육아휴직을 쓰고 복직한 내가 죄인인 것처럼.. 나는 그렇게 직원 대부분이 재택근무하는 사무실에 매일 출근하여 ‘나 여기 일하고 있다’고 존재감을 나타내야 하는 처지가 되었다.  


집에서 사무실까지는 50km, 운전해서 약 한 시간이 걸린다. 오늘의 공지사항을 업데이트하기 위해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엄마는 반찬 더 해줄까”라고 묻는다. 어제도 남편과 나를 위해 반찬을 여러 통 해다 주셨는데, 아직 열어보지도 못했다. 엄마가 또 반찬을 가져다주면 정성껏 만든 반찬이 결국엔 다 음식물쓰레기가 될까 봐, 아침엔 바빠서 못 먹고, 저녁엔 피곤해서 못 먹는다고 말하니 엄마는 힘들어서 어떻게 하냐며 걱정을 하신다.  


그러게... 힘이 든다고 생각을 하니 왈칵 눈물이 쏟아졌다.  


내가 너무나 일을 사랑해서 복직을 꼭 하겠다고 우겨서 복직을 한 것이 아니었다. 나는 별로 복직을 하고 싶지 않았지만 주위 상황에 휩쓸려 복직을 하게 되었다, 엄마가 어린이집 하원 후 내가 퇴근할 때까지 아기를 봐주시겠다고 하고, 남편은 내 경력이 중요하지 않냐고 하고, 회사에서는 아이가 돌이 지날 때까지 기다려주겠다고 하고, 거의 재택근무를 하니 업무도 괜찮을 것이라고 했다. 그래서 어쩌다 보니 복직을 하게 되었다. 막상 복직을 하니, 나는 육아휴직을 쓴 죄인이 되어 있고, 눈치 보느라 재택근무도, 육아기 단축근무도 쓰지 못해 너무나 정신없고 하루에 8시간을 어린이집에서 보내는 아기에게 미안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이게 뭐지…?


특히 막 복직을 했던 지난주는 너무 힘이 들었다. 매일 출근할 것이라고 생각도 못했기에,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았는데, 매일 아침 8시에 나와 남편, 아기가 모두 준비를 마치고 나가야 했고, 아기는 감기에 걸려 기침을 하며 계속 토를 했다. 아기 병원에 가는 것도 눈치 보며 사무실을 빠져나와 겨우 갈 수가 있었다. 남편과 나는 아기에게 감기가 옮아 기침을 하면서도 제대로 쉬지도 못하고 하루씩 번갈아가며 밤에 아기를 돌봐야 했다. 남편은 나에게 시어머니께 당분간 부탁해서 아기 돌보는 것과 집안일을 부탁드리자는 말까지 했다. 남편이 나를 위해서 한 말이라고는 생각이 되지만, 그것이 나를 위한 일은 아니다.  


사무실에 도착해서 쌓여있는 이메일을 보여 업무를 처리해 나간다. 오후 3시가 되면 어린이집 선생님이 어린이집 어플에 아기 사진을 올려주신다. 사진을 양가 카톡방에 보내드리고 아기의 오늘 활동을 확인한다. 퇴근시간이 거의 다 되었는데 일을 받게 되어 어쩔 수 없이 퇴근 전까지 최고의 집중력으로 폭풍과도 같이 급하게 일을 처리하고, 겉옷을 들고 뛰쳐나간다.  


고속도로를 달리고 달려, 집에 도착하면 친정엄마와 아기가 나를 맞이한다. 이제 육아 출근이다. 엄마와 급하게 전달할 사항만 서로 전달하고 엄마는 또 아빠가 기다리는 집으로 출발한다. 나는 졸려하는 아기를 달래 목욕을 시키고, 옷을 입히고, 뒷정리를 시작한다. 하루 종일 엄마와 떨어져 있던 흥이는 계속 안아달라고 졸라서, 아기띠로 아기를 안고 주섬주섬 집안일을 하다 보면 남편이 퇴근한다.  


다들 이렇게 사는 거겠지? 어제와 같은 오늘, 오늘 같은 내일. 당장 눈앞에 놓인 해야 하는 것들을 하다가 살다 보면 어느새 이게 익숙해지겠지. 눈앞에 보이는 급한 일들을 하면서 매일 살다가, 정작 신경 써야 할 아기와의 시간, 남편과의 시간, 가족과의 시간은 계속 미뤄지고 미뤄지는 게 아닐까..


나는 무엇을 위해 오늘도 이렇게 달리는 것일까…


나는 이제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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