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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늦봄 Nov 02. 2020

나의 모유 수유기

눈물 나고 찬란했던 59일간의 고행길

왜 아무도 내게 모유수유가 이렇게 힘든 거라고 말을 안 해준 걸까?


임신기간에 이 이야기는 많이 들었다. "아기가 뱃속에 있을 때가 좋을 때지". 그리고 출산의 고통까지는 여기저기서 많이 들어봤다. 그런데, 모유수유는 "안되면 분유 먹이면 된다"라고만 알고 있었고 얼마나 힘든지는 왜 몰랐던가..


아기가 60일 되는 오늘, 나는 오늘부터 단유를 시작한다.


나는 임신기간 나름대로 모유수유를 준비했다. 유튜브로 모유수유 자세를 공부하고, 수유에 필요하다는 깔때기와 유두 보호기도 미리 구입했다.


제왕절개 수술 당일, 수술 전 여러 항목을 확인하며 간호사가 물었다. "모유 수유하실 거죠?".


수술 이틀 뒤부터 소위 "수유 콜"이 오기 시작했다. 신생아실에 있는 아기가 배가 고파서 깨서 울면, 내 병실로 전화가 와서 "아기 깼는데 수유하실 건가요?"하고 물어보고 "지금 바로 신생아실로 오세요"라고 하면, 나는 무엇을 하는 중이었던지 당장 내려가서 아기에게 수유를 하는 시스템이다. 물론 안 하겠다고 할 수 있고 그렇다면 분유를 먹인다.


신생아실 옆방인 수유실에 가서 손을 씻고, 수유복을 입고, 소파에 앉아, 수유쿠션을 하면, 간호사 선생님이 나의 아기를 데리고 나오신다.


그 작은 입으로 배가 고파서 입을 뻐끔거리고 있는데, 아직 모유는 나오지 않지만 수유를 시도한다. 결국 10여분 동안 아기를 바라보다가 아기가 배고파서 울면 젖병으로 맘마를 주고 다시 간호사에게 아기를 맡기고 병실로 돌아오게 되었다. 그리고 유축도 시작하게 되었다. 처음 유축을 하고 초유가 담긴 젖병 사진을 남편에게 보냈는데, 남편은 "다 먹은 젖병이야?"라고 말했다. 그 정도로 나의 초유는 적은 양이었다.


나의 첫 유축 초유


2-3시간에 한 번씩, 아기가 깰 때마다, 수유콜이 왔고, 나는 제왕 절개한 배를 움켜쥐고 수유실로 향했다. 보통 야간에는 수유콜을 받지 않는데, 나는 새벽에 수유를 해야 모유 양이 늘어난다고 하여 혼자 새벽마다 수유콜을 받아 수유실로 가곤 했다. 입원해 있던 기간 5박 6일 중, 셋째 날에 수유를 시작하고 퇴원 때까지, 병실 전화기 옆에 항상 스탠바이 하며, 밥을 먹다가도 뛰어가고, 화장실에 있다가도 뛰어가 모유수유를 했다. 코로나로 인해 아기를 병실로 데리고 올 수가 없어서, 수유를 하는 시간이 내가 아기를 직접 만날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이었기 때문이다. 한 번이라도 더 아기를 만나고 싶어서 나는 열심히 수유실로 향했다. 수유실에서 처음 보는 산모들끼리 둘러앉아 가슴을 내놓고 아기에게 수유를 하는 것은, 처음에는 다소 충격적이었다. 조리원 입소 전에 가슴 마사지도 받아 모유를 늘리기 위해 노력했다. 눈물 나게 아픈 마사지였지만 제왕절개 고통을 생각하며 꾹 참았다.


병원에서 운영하는 같은 건물 내 조리원으로 옮기자 또 다른 상황이 벌어졌다. 오히려 수유콜이 오지 않았다. 아마도 산모들이 충분히 쉴 수 있게 배려하는 것이겠으나, 덕분에 난 배운 대로 3시간에 한 번씩 유축을 했고, 역시나 새벽 1시, 새벽 4시에도 수유실에서 유축을 했다. 유축을 해도 모유 양이 많지는 않았으나 분유보다는 모유를 조금이라도 더 먹이고 싶었기 때문이다. 수유실에서 산모들끼리 둘러앉아 유축을 하면, 나도 모르게 유축한 을 비교하게 된다. 나는 아기 낳은 지 더 오래됐는데, 양이 왜 이것밖에 안되나.. 좌절하기도 한다. 9박 10일간의 조리원 생활이 절반쯤 지났을 때, 나는 조리원 실장님을 찾아가 직수 (직접 수유하는 것)를 더 하고 싶다고 말했고, 그 후부터 조리원 내 방, 그리고 핸드폰으로 수유하라는 전화가 자주 오기 시작했다. 수유실에서 수유를 할 때 가끔씩 신생아실 선생님들이 수유자세를 봐주시는데, 선생님마다 가르쳐주는 자세도 다르고,  자세를 가지고 혼나면서 수유를 하다가 스트레스를 받아서 아이를 데리고 방에 와서 수유를 하기도 했다. 아기는 수유를 하다가 잠이 들곤 했다. 잘 나오지 않는 젖을 먹으려고 힘쓰다 보니 피곤해져서 잠이 드는 것이라고 했다.


조리원에서 집으로 돌아가기 전, 가장 중요한 준비물은 유축기였다. 다행히 관할 지역 보건소에서 유축기 무료 대여사업을 하고 있어, 퇴원 전 유축기를 미리 대여해 놓았다. 그리고 아기를 올려놓아 수유자세 잡는 것을 도와주는 수유쿠션도 당근 마켓에서 구입해 준비해 놓았고 유축한 모유를 저장할 모유 저장팩까지 준비를 해 놓았다.


집에 돌아온 날은 아기가 태어난 지 딱 2주가 되는 날이었고 금요일이었다.  집에 돌아와서 가장 먼저 한 일은 유축이었다.그날부터 우리 가족모유수유와의 전쟁을 시작했다.


나는 남편에게 유축과 직수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지 않았다. 유축하는 모습이 스스로가 젖소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직수를 하며 가슴을 내놓고 있는 모습도 부끄러움을 많이 타는 내가 남편에게 보여주고 싶은 모습은 아니었다. 하지만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남편에게 두 가지 다 보여줄 수밖에 없었다.


나와 남편이 아기와 오롯이 함께한 금, 토, 일, 2박 3일 동안, 우리는 무슨 일이 있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을 정도로 정신없는 2박 3일을 보냈다.


아기가 배가 고파서 울면 한쪽 가슴 직수를 하다가 아기가 잠이 들고, 깨워서 다른 쪽 직수를 하고, 트림을 시키면 한 시간이 훌쩍 넘는다. 20~30분이 지나면 또 배가 고파서 운다.


우리는 천 기저귀를 사용하겠다고 종이 기저귀는 구입도 하지 않아서 천기저귀 빨래 거리는 계속 나왔다. 직수를 해도 배가 고픈 아기는 분유 보충을 종종 해야 했는데, 직수로 얼마큼 먹었는지를 알 수 없으니 분유를 너무 조금 타서 아기가 자지러지게 울기도 여러 번이었다. 분유 때문에 나오는 젖병 설거지와 유축기 설거지는 2-3시간마다 계속 반복되었다. 자주 아기에게 젖을 물려야 양이 늘어난다고 하여, 나는 아기에게 직수를 하며 3시간에 한 번씩 유축을 했기 때문이다.


초보 엄마 아빠는 우왕좌왕했고,  신생아실 베테랑 선생님들의 케어를 받던 아기는 힘들어했다.


월요일 아침, 나와 남편은 천기저귀를 포기했다. 그리고 우리의 구원자인 정부지원 산후관리사님이 첫 출근을 하셨다.


관리사님은 조리원에서 배운 대로 한쪽 가슴마다 거의 30분씩 수유를 하던 내게 수유를 너무 오래 하고 있다며, 한쪽 가슴마다 5분씩 2회씩만 하라고 말해주시며 아기가 젖을 물고 잠이 들면 남은 젖을 유축기로 빼내야 다시 젖이 차서 양이 늘어난다고 알려주셨다. 그래서 나는 더욱더 열심히 유축을 하게 되었다. 하지만 조리원에서 집으로 돌아와, 잠도 줄고, 식사도 조리원에서 만큼 잘 챙겨 먹지 못하자 유축한 모유량이 확연하게 줄어들었다. 아기는 분유를 더 먹게 되었는데, 분유를 잘 소화시키지 못해서 계속 토하고 게워냈다. 아기는 토하고 게워내느라 밤에 잠을 깊게 자지 못했고 남편과 나는 번갈아 가며 불침번을 서며 아기 곁을 지켰고 또 피곤하니 모유양이 늘지 않았다. 악순환이었다. 아기가 분유를 소화시키지 못하니 나는 더 열심히 유축을 하게 되었다.


모유양이 적다고 고민하자 엄마는 인터넷으로 열심히 검색을 하셔서 '돈족탕'을 끓여다 주시기까지 했다. 돈족탕을 먹으면 유선염이 올 수도 있다는 인터넷 글이 있어 먹어야 할지 고민하다가 엄마가 힘들게 끓여주셨으니 결국 먹었다. 그리고 병원밥과 조리원 밥만 2주 동안 먹다가 집으로 돌아오니 그동안 먹고 싶었던 인스턴트 음식과 기름진 음식도 조금씩 먹기 시작했다.


그리고.. 유선염이 왔다.

따듯한 찜질을 해야 젖 양이 늘어난다는 글을 보고, 열심히 따뜻한 찜질을 했는데, 가슴이 찌릿찌릿하기 시작했다. 다음날 오후가 되자 바늘로 쑤시는 듯한 통증이 몰려왔다. 마침 토요일 오후였기에 병원에 갈 수도 없어서 울면서 급하게 검색하여 집 근처 가슴 마사지 샾에 출장 마사지를 불렀다.


가슴 마사지 코치님에 따르면 나는 유선이 촘촘한 치밀 유방인데, 기름지고 단 음식이 유선을 막아 염증이 생긴 것이라 했다. 그리고 유축을 너무 무리하게 해서 가슴이 많이 상한 상태였다. 신기하게도 코치님은 내가 먹은 음식들을 알아맞혔다.

"치킨 드셨나요?"

"네.."

"족발 같은 거 드셨어요?"

"돈족탕 먹었어요"


그리고..

"혹시 유산하신 적 있으세요?"

"아... 처음에 쌍둥이였다가...."


그분에 따르면, 한 명의 아기가 잘못되었을 때, 몸이 아기가 출산된 것으로 착각하여 모유를 만들기 시작했으나 배출되지 않아 몸에 쌓여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임신기간 중에 가슴이 간질간질했던 것이라 설명해 주었다. 마치 신기 있는 점집을 찾아간 것처럼 나의 여러 가지 상황을 딱 맞추는 코치님께 의지하게 되어 총 4회의 마사지를 받으며 적지 않은 금액을 투자하게 되었다. 성공적인 모유수유를 위해 그 정도 금액을 투자할 수 있었다. 또 기름진 음식, 단 음식, 밀가루를 먹으면 유선염이 다시 올 수 있다고 하여 식단 조절도 병행되었다. 내가 먹을 수 있는 음식은 나물과 생선 밖에 없었다. 음식을 가려먹는 고통은 꽤 컸다. 덕분에 임신 전 몸무게로 돌아갈 수 있었다. 나와 함께 나물 반찬을 먹고 육아를 하느라 힘들었던 남편도 덩달아 다이어트를 하게 되었다.


첫 마사지 이후, 코치님은 일명 '풋볼 자세'를 추천하였고, 또 마침 그날이 토요일 오후였기에 나와 아기는 그날 저녁부터 새로운 자세로 모유수유를 시도하였다. 새로운 자세로 직수를 하려니, 아기는 배는 고픈데 자세를 잘 잡지 못해 울었고, 나는 우는 아기를 달래다가 같이 울었다. 그리고 남편은 아기 목을 잡아 자세 잡는 것을 도와줘야 했다. 셋이 함께하는 모유수유였다.  


그날 이후로 유축을 하지 않으니, 가슴도 덜 아팠고, 설거지도 줄었다. 며칠간 시도했지만 나와 아기에게 풋볼 자세는 너무 어려웠기에 우리는 포기하고 원래 하던 자세로 수유를 계속했다. 지금은 한 줄의 글로 요약되지만, 수유할 때마다 아기와 나는 너무나 힘든 시간을 보내야만 했다. 그런데 원래 하던 자세로 수유를 하려면 한쪽 수유가 끝나면 아기를 들어 방향을 바꿔야 하고, 아기가 점점 무거워져서 남편이 도와줘야 했다. 그나마 다행인 건 코치님이 추천해준 분유로 바꾸면서 아기가 소화를 훨씬 잘 시키게 되었다는 것이다.


4번의 마사지 이후 양이 좀 늘었다는 판단 하에 매번 수유때마다 했던 분유보충을 점점 줄여 나가고 최종적으로 낮엔 분유보충을 안하고 직수만 하기 위한 시도를 시작했다. 분유양이 줄어들어 아기가 배고파 할때마다 더 자주 직수를 했는데 내가 힘든건 참을 수 있어도 커가는 아기가 배고파 하는건 지켜보기 힘들었다. 낮에 직수만 하겠다는 목표를 이루기 위해 아기를 힘들게 하는게 내 욕심으로 느껴졌다. 결국 분유양을 다시 늘리게 되었다.


그런데, 왼쪽 가슴을 직수할 때마다 아기가 심하게 몸부림을 쳤다. 처음에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으나, 산후관리사님이 떠나고 남편의 출산휴가 10일 동안 또다시 둘이 오롯이 육아를 하는 동안, 왼쪽 가슴을 먹을 때마다 아기의 몸부림은 점점 큰 울음소리가 되었다. 그냥 우는 게 아니라 정말 몸부림을 처가며 자지러지게 우는데 아기가 왜 우는지 도저히 알 수가 없고, 또 직수를 안 하면 가슴이 아프니 직수를 안 할 수도 없었다.


가슴 마사지 코치님에게 연락했더니, 왼쪽 가슴이 뭉쳐서 모유량이 적어서 그럴 수 있다고 했다. 열심히 인터넷을 검색해 보니, 유축기를 많이 사용하면 젖이 분수처럼 나오는 사출이 많이 생길 수 있고, 그러면 아기가 모유를 먹기 힘들어서 우는 것이라고 했다. 양은 적은데 사출까지 있다니... 보통 사출이 생기면 양배추 크림을 발라서 모유양을 줄이거나, 유축을 해서 아기에게 먹인다고 하는데, 나는 양이 이미 적은 상황에, 이미 유축기를 과다하게 사용해서 더 이상 유축기를 사용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하지만 모유수유를 포기할 결심은 서지 않았다. 자연분만의 '유산균 샤워' 신화처럼, 모유수유를 해야 면역력이 강해져 코로나도 이겨낼 수 있다는 말을 조리원에서 교육받았기 때문이다. 게다가 나는 자연분만이 아닌 선택제왕을 했으니 모유수유라도 잘해서 아기의 면역력을 높여주고 싶었다. 나의 목표는 100일까지였다. 왜 100일이냐 하면, 최소 6개월은 모유수유를 해야 한다고 국제기구에서 권고하고 있고, 그 절반인 100일 (약 3개월)이라도 모유수유를 해야 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나는 모유양을 늘리기 위해 마사지뿐만 아니라 따듯한 물을 계속 마셨고, 비싼 가격의 모유 촉진제를 3통이나 먹었으며, 수유부 두유까지 챙겨 먹었다.


출산 49일이 되는 날 밤, 남편이 산책을 하자고 했다. 때마침 시어머니가 육아를 도와주시러 오셔서 함께 가족 여행을 떠난 기간이었다. 어머님께서 내가 밤에 푹 자고, 낮에도 쉴 수 있게 아기를 봐주셔서 나는 출산 후 처음으로 밤에 수유를 안 하고 잘 수 있었고, 낮에도 아기 곁을 떠나 남편과 데이트를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아무래도 직수하는 횟수는 줄어들어, 전에는 밤낮없이 2-3시간에 한 번씩 하루에 8-9회 직수를 했다면, 하루에 2-3회만 직수를 하게 되었다.


남편은 그동안 모유 수유하느라 고생했으니, 이제 그만하자고 말해주었다. 모유 수유하며 나도, 아기도, 남편도 너무나 힘들었고, 그 에너지를 차라리 즐겁게 육아하는데 쓰는 게 더 좋겠다는 의견이었다. 단유를 결정하기 힘들었던 나는 그렇게 단유를 결정하게 되었다.


가족 여행에서 직수 횟수가 줄어들자, 밤에 이불이 젖을 정도로 모유가 흐르기도 했는데, 여행이 끝날 즈음이 되니 그런 현상도 줄어들었다. 여행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왔을 때, 직수를 하루 2-3회만 했고, 그 후 단유 차를 물 대신 마시면서 하루 1회로 줄였다. 아기에게는 "엄마 맘마 먹는 거 이제 몇 번 남았어. 우리 아가 그동안 엄마 맘마 먹느라고 고생 많았지. 엄마도, 너도, 아빠도 힘들었지. 이제 엄마 맘마한테 인사하자"라고 며칠 전부터 이야기해 주었다. 그리고 마침내 어제 마지막 직수를 하며 모유수유를 마무리 지었다.


직수를 하지 않은 오늘, 가슴이 아프지는 않다.

참 힘들게 모유양을 늘리려고 노력했는데, 이렇게 쉽게 단유가 되려 하다니 너무나 허무하고 아쉽다.

 

38주 6일간 탯줄로 연결되어 있던 아기와 유일하게 연결할 수 있었던 모유수유인데, 이렇게 끝내게 되니 아기에게 미안한 마음이 크다.

병원 신생아실에서 처음 직수를 하던 그때의 아기가 눈앞에 아른거린다.

하지만 우리는 최선을 다했고 앞으로 더 행복해질 것이라 의심치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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