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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늦봄 Oct 30. 2020

난 선택 제왕 했습니다

그리고 후회하지 않습니다.

2020년 9월 4일은 나의 제왕절개 D-day였다.


그 전날 9월 3일 밤, 남편과 임신한 배를 마지막 기념 촬영하고, 잠자리에 들었다. 다음날 11시 수술이니 9시까지 병원에 가야 하는데, 수술이 얼마나 아플까 하는 두려움에 잠은 오지 않고 눈물만 흘렀다. 부모가 된다는 기대감과 설렘보다는 수술 고통에 대한 두려움이 너무나 컸다. 남편이 이를 잘 알아주는 것 같지 않아 결국 남편에게 "내가 수술한다고 했으니 아파도 어쩔 수 없다는 거냐, 아기는 같이 만들었는데, 왜 나만 아파야 하냐"며 성을 내고 말았다.


9월 4일 수술 당일, 남편과 입원 수속을 마치고, 분만실로 걸어 들어가 필요한 조치들을 취했다. 인터넷으로 병원 후기를 읽은 그대로 태동검사, 제모, 수액 바늘 꽂기가 끝나고, 내가 제왕절개 수술 결정 후 제일 고민했던 페인 부스터 사용 여부에 대한 최종 결정을 해야 했다. 맘카페나 여러 제왕절개 후기에서 페인 부스터를 사용하면 통증이 많이 경감된다고 하여 '나도 꼭 쓰겠다!!'라고 마음먹었었으나, 병원에서 추천하지 않는다고 하여 수술 전 며칠 동안 고민을 했었다. 제왕절개 시, 경막외 마취를 하는데, 페인 부스터를 사용하고 싶다면 척추 마취해야 하고, 무통주사로 충분히 감당이 가능할 것이라는 게 병원의 설명이었다. 나는 수술 전 며칠간 고민을 한 끝에, 최종적으로 경막외 마취가 실패할 경우, 척추마취를 하고 페인 부스터를 사용하기로 결정했다.


수술시간까지 잠시 대기를 하는 동안, 담당 선생님이 와서 인사를 했고, 수술 시간이 다가와 남편과 인사를 하고 수술실로 걸어 들어갔다. 너무나 무서웠지만 담담하게 마음을 먹으려고 애썼다. 수술실 앞에서 울지 않은 것이 다행이었다. '이 정도 수술은 할 수 있다. 할 수 있다'를 마음속으로 계속 주문처럼 되뇌었다.


마취를 하고 점점 몸의 감각이 둔해지는 것이 느껴졌고, 나의 담당 선생님이 들어오셔서 수술이 시작되었다. 절개하는 느낌이 나고, 무엇인가 부산한 움직임이 느껴지고, 뜨거운 무엇인가가 흐르는 느낌이 나더니 11시 12분, 나의 아기가 탄생했다. 아기를 안아볼 수도 없이, '안녕'이라고 마음속으로 인사하며 아기 얼굴을 보고 바로 수면마취로 잠이 들었다.


남편은 내가 수면마취로 잠이 든 후, 수술실 옆방에서 아기 탯줄을 2차로 자르고 목욕을 시켰다고 한다. 자연분만이었다면 그 순간을 함께 했을 텐데... 아쉽지만 남편에게 이야기로 전해 듣는 수밖에....


다시 눈을 떴을 때, 남편과 회복실에 있었고, 아기가 들어왔다.


아이를 처음 품에 안은 그 감동적인 순간.

'아기야, 엄마 아빠한테 와줘서 고마워'라고 말하려고 계속 생각했었는데...

난 마취약에 취해 기억이 없다......


남편에게 듣기로는 아주 차가운 목소리로 "신생아는 눈물이 없다는데, 눈물을 흘리네"라고 말했다고 한다..

기억이 나지 않지만, 아기와의 첫 만남을 그렇게 시작하다니.. 너무나 속상했다.


담당 선생님이 남편에게 아기 머리가 동그래서 생각보다 절개를 더 해야 했다고 전했다고 한다. 그 말을 듣고 나는 ‘그것 봐, 자연분만 시도했으면 고생은 고생대로 다하고 결국 수술할 뻔했네’라고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병실로 이동하여 마취제에 취해 자다 깨다를 반복하며, 장기 유착을 막기 위해 몸을 힘들게 좌우로 움직이며 밤을 지새웠다. 수술 다음날 아침, 내가 생각해도 독하게 걷기 위해 부단히 노력한 결과, 수술 후 24시간이 되기 전에 두발로 걸어 신생아실에 아기를 보러 다녀올 수 있었다. 아기를 처음 제대로 보면서도 믿기기 않았다. 너무나 작고 이쁘고 귀여워서 눈물이 났다.


이 아기가 내 뱃속에 있었다니!!


수술 통증은 페인 부스터 없이 버틸 수 있었다. 무통주사를 마지막 한 방울까지 쓰고, 경구 진통제까지 먹어가며 힘들게 시간이 얼른 흘러 이 고통이 사라지기를 바라는 수밖에 없었지만, 그래도 시간은 지나갔고, 혼자서 다리를 침대에서 내리지도 못했던 나는 차츰 고통을 느끼면서도 움직이는 것에 익숙해졌다.


빠른 회복을 위해, 입원기간 동안 나는 병실 복도를 열심히 걸어 다녔고, 퇴원하고 조리원에 갔을 때는 훨씬 더 잘 걸어 다닐 수 있게 되었다. 물론 봉합부위가 욱신거리는 것은 꽤 지속되었지만 이 정도의 출산의 고통이면 감당할 수 있다고 생각되었다.


자연분만도, 제왕절개도 아기를 낳는 과정은 쉽지 않다.

내가 선택한 제왕절개를 나는 후회하지 않는다.


뱃속에 품고 있던 38주 6일 동안 눈에 보이지 않으니 심장은 잘 뛰고 있는 건지, 잘 크고 있는 건지, 문제는 없는 건지, 매일 걱정하던 시간은 끝났다.


아기는 눈앞에 있지만, 오늘도 아기가 조용하면 숨을 잘 쉬고 있는지, 아기를 너무 세게 잡아서 탈골이라도 되는 것은 아닌지, 걱정은 계속된다.


그래도 아기를 만나서 행복하다.


병실에 입원해 있는 동안, 남편에게 보여주기 싫었던 온갖 모습을 다 보여줘야 했고, 묵묵히 내 병시중을 들어준 남편에게, 이 글을 빌어 고마움을 전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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