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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늦봄 Aug 31. 2020

출산방법을 선택하다

선택제왕 D-8일

출산 일자가 다가오고 있다.

현재 임신 37주 5일. 이번 주에 여성병원 정기검진 때 출산방법을 결정하고 예약을 하고 왔다.


자연분만이 당연스러운 문화에서 출산방법을 고민한다는 것 자체가 이상하게 들릴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임신 중기부터 자연분만과 선택제왕 사이에서 고민해왔고, 이번 주에 여성병원에 선택제왕을 예약함으로써 결정을 내렸다. 아기가 역아로 있다거나, 특별한 문제가 있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100% 나의 의지로 선택제왕을 결정했다.


지난 몇 개월 동안, 자연분만과 제왕절개의 장단점과 내가 다니는 여성병원에서 자연분만이나 제왕절개를 했던 후기를 열심히 읽어보았다. 자연분만과 제왕절개는 각각의 장단점이 있다. 그중 나에게는 제왕절개의 장단점이 더 나에게 맞다고 느껴졌다. 그 이유는 아래와 같다.


나는 예상치 못한 상황이 발생하는 것이 싫다. 선택제왕의 경우, 양수가 미리 터지지 않는 이상, 예약된 날짜에 분만이 진행된다. 하지만 자연분만의 경우, 아기가 언제 나올지 모르기에 예정일이 지나도 아기가 나오지 않을 수 있다. 또한 분만 과정에서 몇 시간이나 진통을 겪을지, 중간에 응급상황이 생겨서 결국 수술을 하게 될지 아무도 알 수 없다. 나는 분만 과정에서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른다는 것이 너무나 공포로 다가왔다. 내가 좋아하는 드라마인 ‘연애시대’에서는 주인공 남녀가 출산과정에서 사망한 아기로 인한 마음의 상처로 끊임없이 엇갈리게 된다. 내 아기는 건강하게 태어나겠지만, 21세기가 되어도 분만은 여전히 산모와 아기에게 위험한 과정이다. 나는 그러한 일말의 가능성도 두고 싶지 않다. 분만 과정에서 힘이 빠져 아기가 산소부족이 되면 어떻게 하지, 등등의 두려움이 크다. 분만 과정이 순조롭지 않아 유도분만을 했다가 결국 응급 제왕수술을 하게 되어 두 가지 고통을 모두 경험해야 했던 여러 지인들의 이야기를 들으면, 나는 자연분만과 제왕절개의 고통 중 하나만 선택하고 싶다.


자연분만으로 인한 몸의 변화 또한 한 가지 중요한 이유이다. 임신 과정에서 이미 아이가 몸속에서 자라느라 산모의 뼈가 벌어져 있지만, 자연분만 후에는 체형 등 더 큰 변화가 생긴다. 또 항문과 질환을 오래 겪어온 나는 자연분만으로 인한 산후통, 회음부 통증, 치질 등이 너무나 큰 부담으로 다가왔다. 개복수술인 제왕절개가 더 큰 흉터를 남기는 것은 사실이고, 사람에 따라 장기 유착 등이 생길 수도 있겠지만, 자연분만도 사람에 따라 큰 후유증을 남기기고 고통을 겪는 사람들도 있기에, 나는 흉터가 남더라도 제왕절개를 선택했다.


아직 뱃속에 있는 심장이 멈춘 작은 아기 때문이기도 하다. 분만 시 자연 배출된다고 하지만, 그래도 수술을 통해서 확실히 몸에서 빠져나가는 것이 더 나은것으로 느껴진다.  


이러한 결정을 하기까지 그 과정은 쉽지 않았다. 내 몸이기에 내가 결정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남편도 내 결정을 따르겠다고 동의해 주었지만, 남편은 제왕절개 예약 전날까지 자연분만을 하자고 나를 설득했다. 개복수술에 따른 위험부담이 그 이유였다. 남편의 걱정이 당연히 이해가 되지만, 나에게는 개복수술만큼이나 자연분만의 위험부담이 크게 다가왔고, 진통을 겪어낼 자신이 없다. 내 몸이지만 우리 부부의 아기이기에, 나는 남편이 내 결정에 동의해주기를 간절히 원했다.


제왕절개를 하기로 결정했지만, 친정어머니 말고 아직 다른 가족에게는 그 사실을 알리지 않았다. 친정어머니는 제왕절개를 지지해 주셨다. 친척 중에 내 또래에 출산한 분이 계신데 자연분만으로 오래 진통을 겪다가 힘들게 아기를 낳았고, 내가 어린 나이가 아니기에 자연분만을 수월하게 해내기 힘들 것 같고 회복도 느릴 것 같으며, 굳이 진통을 느낄 필요가 없다는 게 이유였다. 제왕절개를 지지해 주는 사람이 한 명이라도 있다는 것이 나에게는 큰 힘으로 다가왔다. 일전에 내 할머니께 ‘나 수술할까?’라고 했을 때 할머니는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느냐는 반응이었고, 시어머니께서도 당연히 내가 자연분만할 거라고 생각하고 계시다.


다음 주 정기검진을 다녀와서 가족들에게 제왕절개 소식을 알릴 예정이다. 아기 머리가 커서 의사가 제왕절개를 해야 한다고 했다고 거짓말을 하기로 했다. 아기가 평균보다 크고, 머리도 평균보다 큰 것은 사실이지만, 36주 정기검진에서 의사는 이 정도면 자연분만을 시도하기에 나쁘지 않다고 했었다. 내가 다니는 여성병원은 자연분만을 추구하는 병원이기에 담당 의사 선생님은 처음에는 제왕절개를 고려중이라는 내 말에 놀란 것 같았지만 내가 자연분만에 자신이 없다면 강요하지 않는다고 했다.


선택제왕이라는 선택을 했지만 주변에 거짓말을 해야만 하는 이유는 자연분만을 시도하지 않았다는 비난을 받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임신과 동시에, 내 몸은 내 몸이지만, 동시에 양가 손자의 집이 되었기에, 그들의 손자에게 행여나 안 좋은 영향이 있을까 봐, 친정아버지도, 시어머니도 임신기간에 이건 먹으면 안 되고, 이건 하면 안 되고 등등의 얘기를 하셨다. 그런 얘기를 듣고 아무렇지도 않게 넘길 수 있는 사람도 있겠지만, 나는 무척이나 신경이 쓰이고 내 몸에 대한 작은 결정(무엇을 먹을지)부터 큰 결정(분만 방법)까지 이렇게 주변의 눈치를 봐야 한다는 것이 서럽다.


예약한 수술일 까지 8일이 남았다.


내가 선택한 제왕절개이지만 무서운 것이 사실이다. 수술대에 누워 보는 게 처음은 아니지만, 두렵다. 매일 저녁 아기의 건강한 출산을 위해 기도를 하며, 나 또한 무사히, 문제없이, 후유증 없이 수술이 잘 끝나기를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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