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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늦봄 Aug 28. 2020

차마 꺼내지 못했던 이야기

쌍둥이에서 단태아로

임신 사실을 처음 알게 된 것은 2020년 1월 3일이었다. 결혼한 지 한 달 반 만이었다.


한주 전에 해본 임신테스트기에서 임신이 아니라고 결과가 나왔었고, 그때 임신이 아니라는 사실에 실망하여 남편 품에서 대성통곡을 한 지 1주일 만에 임신테스트기에 두줄이 뜬 것이었다.



인터넷에서 열심히 검색을 해본 결과, 너무 초기에 병원에 가기보다는 며칠 기다려보고 병원에 가야 아기집을 볼 수 있다고 하여, 일주일 동안 임신테스트기로 매일매일 시약선이 짙어져 가는 것을 확인해 보고 드디어 집 근처 산부인과를 찾았다.


첫 병원 방문에서 아직 아기집은 보이지 않는 상황이기에 혈액검사를 했고, 혈액검사 수치가 너무나 높게 나와서 자궁외 임신일 수도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펑펑 울면서 다시 병원을 찾은 게 1월 중순이었다. 그리고 얼마 후 아기집이 2개가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되었다. 전혀 예상치도 못한 쌍둥이 소식이었다. 기왕에 아이 둘을 낳을 거면, 이번 한 번에 자녀계획을 끝내자고, 남편과 나는 서로를 얼싸안았다.


양가에 임신 소식을 알리고, 몇주후 곧 쌍둥이 소식을 알리자, 우려가 담긴 축하가 쏟아졌다. 아기 하나 키우기도 힘든데 쌍둥이 키우려면 더 힘들 텐데라며.. 출산 일자 기준으로 만 35세가 넘는 나는 고위험군 산모인데 쌍둥이면 위험성이 더 커진다고 담당 의사도 축하 겸 걱정을 건넸다. 회사에도 쌍둥이 임신소식을 알리고 임신 초기 단축근무를 신청했다. 쌍둥이 임신확인서를 받아서 정부지원 바우처카드를 신청하고, 보건소에 임산부 등록을 하고, 쌍둥이 태아보험을 알아보는 등 쌍둥이 맞이에 하루하루 바쁜 순조로운 나날들이었다. 의사가 쌍둥이의 경우 25주부터 산모가 안정을 취해야 한다고 하여 그즈음 퇴사하고 출산 후 2년간 쌍둥이  육아에 집중한 후 재취업을 하기로 남편과 논의했다. 꺼림칙한 게 있다면, 태아보험 설계사의 '본인의 아이도 처음에 쌍둥이었지만 결국 단태아가 되었다'는 코멘트와 인터넷 검색 결과 그러한 일이 종종 발생한다는 사실이었다.


쌍둥이를 임신했을 때 한 아이가 자연도태되는 케이스를 찾아보며, 나는 아닐 거야 라고 매일 중얼거렸지만 그래도 불안한 마음은 항상 마음 한구석에 있었다. 나의 증조할아버지가 쌍둥이셨다는 새로운 사실도 알게 되면서 어쩌면 쌍둥이 유전자가 나한테 있었나 보다 라는 생각도 하게 되었다. 하지만 불안한 마음은 여전했고 자연도태에 대한 두려움이 커져갔다.


불안한 마음은 꼭 현실이 되는 걸까?


2월 초 정기검진으로 병원을 방문했을 때, 쌍둥이 중 한 아기의 심장이 이미 일주일 전에 멈추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아기집을 늦게 발견한 아이 쪽이었다. 심장이 멈춘 이유가 뭐라고 딱히 말할 수 없지만, 심장이 멈춘 아기를 수술 등으로 꺼낼 필요는 없다고 했다.


하늘이 무너저 내리는 기분이었다.


남은 한 아이를 위해서라도 마음을 강하게 먹어야 했지만, 남편도 나도 힘든 시간을 보내야 했다. 부정적인 생각을 너무 많이 해서 이렇게 된 게 아닐까, 회사에서 상사한테서 스트레스를 너무 많이 받아서 그런 것은 아닐까.. 끊임없이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이유를 찾아 원망하고 싶었다.


슬픈 소식을 양가에 전하는 건 남편의 몫이었다. 남편도 힘든  마음이었지만 무너저내린 나를 달래야만 했다.


쌍둥이라는 단어, 떠난 아기의 태명 등은 우리 집의 금기어가 되었다. 부모님 댁에 놓인 아기집 두 개가 나란히 찍힌 초음파 사진 액자의 사진도 다시 단태아 아기집 사진으로 교체했다.


약 6개월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떠올리기만 하면 눈물이 먼저 흐른다. 그 6개월 동안 나는 일기를 쓸 수도 없었고, 기도를 할 수도 없었다. 이런 일이 생기게 한 하느님과 화해하지 못했다고 생각했다.


시간이 아무리 흘러도, 괜찮아지지 않는 것도 있는 것 같다.

마음에 묻고 가는 것일 뿐…

생명은 사람의 의지로 되는 게 아닌 것 같다.


심장이 멈춘 아기가 아직 뱃속에 남아 있기에 피치 못하게 산부인과 담당의사가 아닌 의사가 초음파를 볼 때 무심히 '쌍둥이였네요'라고 하는 말에 '네... '라고 대답해야 하는 상황도 있었다.


'그때 쌍둥이인줄 알고 가족행사 안왔잖아'라고 얘기하는 친척 때문에 집에 와서 펑펑 운것이 불과 2달 전이다.


다행히 남은 한 아기는 지금까지 별다른 이벤트 없이 건강하게 잘 자라고 있다. 기형아 검사도 통과했고, 임신성 당뇨검사도 재검을 했지만 결과적으로는 무사히 통과했다. 아기는 매일 열심히 태동하며 본인의 존재감을 알리고 있다. 나는 임신 25주에 퇴사하기로 한 쌍둥이때의 계획과는 달리 회사에 남아 출산휴가와 육아휴직을 쓸 수 있게 되었다. 보통 출산 1~2주 전에 시작하는 출산휴가를 남들보다 빨리 들어간 것은 회사/상사 스트레스 때문에 혹시나 또 무서운 일이 생길까 하는 두려움 때문이었다. 아기를 지키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어졌다.


출산일이 37일 남은 오늘, 출산을 준비하며 쌍둥이의 기억을 다시 꺼내어본다. 그리고 되뇌어본다. 생각한 대로 될 것이니 모든 게 다 잘 될 것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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