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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늦봄 Nov 28. 2020

조리원 동기 꼭 있어야 하나요

나의 인간관계에 대한 고찰

요즘 산후조리원이라는 드라마가 핫하다. 육아 때문에 챙겨보지는 못하지만 유튜브로 클립 정도를 보고 있다. 드라마 안에서는 비 현질적인 해프닝들이 일어나지만, 깨알 같은 리얼리즘도 공존하는 것 같다. 예를 들어 산모들이 산후풍 예방을 위해 목에는 손수건을 두르고 있는 것. 박하선이 파라핀이 묻은 손으로 나타나는 장면 등이다. 나 또한 자고 나면 손가락 마디마디가 쑤셔 조리원에서 하루에도 몇 번씩 파라핀 찜질을 했고 집에 와서도 목에 손수건을 두르고 있었다. 조리원을 가본 이들은 공감할 것이다.


하지만 극 중 가장 공감이 안 되는 장면은, 등장하는 산모들이 개인적 희로애락을 공유하는 부분들이다. 그들은 서로 힘을 합쳐 개인적 어려움을 극복해간다. 조리원 동기의 유대감을 보여주는 것이다. 조리원 생활 9박 10일을 했지만 조리원 동기가 없는 나는 이해하기 힘든 장면이다.


누구보다 끈끈해진다는 그 조리원 동기. 임신 10주경 조리원을 예약해 놓고, 결혼 후 새로운 동네에서 살게 되어 '조리원 동기가 생기면 동네 친구가 생기려나' 하고 생각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막상 조리원에 가보니 누군가와 마음을 터놓는 사이가 되는 게 쉽지 않았다.


나의 조리원 첫날은 새로운 학교로 전학 간 중학생 같았다. 나 빼고 모두가 서로 자기들만의 그룹을 만들어 똘똘 뭉쳐있는 것처럼 보였다. 누군가에게 말 붙이기도 어려워 첫날 점심은 빈자리에 앉아 말 한마디 없이 밥만 먹었다. 그날 저녁, 우연히 합석하게 된 그룹에 끼어서, 밥 먹을 때 함께 앉는 이들은 생겼다. 며칠에 한번 꼴로 누군가는 떠나고 누군가는 새로 들어왔다.


식사하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지만 마음속 이야기는 하지 않는다. 직장의 관계 기관 혹은 거래처 직원과의 대화처럼 속마음을 드러내지 않는 대화가 가능하다. 뉴스에 나온 산후도우미가 신생아를 폭행한 이야기, 어느  산후조리원에서 아기 얼굴에 상처를 냈다는 이야기, 산후도우미를 쓸 것인가 아닌가 같은 이야기들을 나누었다. 다들 조리원에서 멀지 않은 곳에 살지만 어느 아파트에 사는지 말하면 각자의 경제 수준이 드러나니 사는 곳도 동네 이름만 말한다. 서로 워킹맘인지 전업주부인지만 얘기하지 직업이 무엇인지는 공유하지 않는다. 나에게 묻는 사람도 없었고 나도 묻지 않았다. 혹여 누군가 물어도 사무직이라 답했다. 나에 대해 굳이 많이 알리고 싶지 않고 또 다른 사람에 대해 굳이 알고 싶지 않았다. 14-16명이 모여있는 작은 사회. 301호 산모가 단유 마사지를 받겠다는 말을 옆에서 들은 사람이 소문을 빠르게 퍼트리고, 309호 산모는 중학교 선생님이라더라 라고 이야기가 돈다. 굳이 나를 알리지 않고 303호 OO이 엄마로 충분한 곳. 나에게 조리원은 그런 곳이었다.


나 같은 사람만 있던 것은 아닐 것이다. 저녁마다 식당에 삼삼오오 모여 담소를 나누던 이들도 있다. 코로나 바이러스 사태로 인해 여러 가지 조리원 프로그램이 취소되었어도, 식사 시간 이외에는 모두 마스크를 쓰고 있어도, 친해지는 사람들도 있다. 어쩌면 그들은 그 끈끈한 조리원 동기를 만들었을지도 모른다.


집으로 돌아와, 육아를 시작하고, 아기가 잠든 어느 날 밤.


아기 옆에 누워 생각하다가, 비단 산후조리원 동기만 없는 것이 아니라, 나는 절친 하나 없는 사람이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마음을 열기 어려운 사람이다. 내 곁을 쉽게 내주지 못하는 사람이다. 그동안 서울, 태국, 제주 등 이곳저곳 돌아다니며 살아왔고 그곳에서 항상 몇 명의 친구들을 시간을 걸려 만들었지만, 그 인연들을 끈질기게 이어가지 못했다. 나는 매일매일 연락하는 그런 절친이 없다. 그저 때때로 연락하는 이들이 있을 뿐. 매일 집에서 아기와 시간을 보내는 요즘, 내가 매일 연락하는 이는, 엄마 그리고 출근한 남편뿐이다.


내가 왜 이렇게 되었을까 고민해 보았다. 초등학교 시절 왕따 경험 때문일까. 20년도 훨씬 더 지난 그때 경험이 아직까지 내 발목을 잡고 있는 걸까. 어른이 되면 친구 만들기가 쉽지 않다는데 난 학창 시절 친구도 없다.


친구 없어도 그럭저럭 살아온 것 같지만..


문득 외로워지는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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