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권수린 Nov 30. 2023

나는 시댁살이를 한다.

MZ며느리의 시댁입성기

"니가 시집살이를 한다고?" 



신접을 시댁에서 차린다는 말에 대번에 돌아오는 말들은 똑같았다. 결혼하자마자 시집살이를 한다니? 그것도 속칭 기 세기로 유명한 니가 가능하겠냐는 늬앙스마저 누구에서나 똑같았다. 큰일이라도 난 것처럼 구는 친구들과 당장 결혼자금이 부족해서 그런 거냐는 조심스러운 질문까지 아주 갖가지 질문을 생생하게 마주했다. 처음 결정을 할 때부터 주변에 공공연하게 말하기까지 별 고민 없이 결정 했던터라 이런 반응들이 올 거라곤 전혀 예상하지 못해 오히려 당황스러웠다. 시댁 들어가 산다는 말이 이렇게까지 격한 반응을 일으킬 일인가. 열띈 반응에 나도 그냥 멋쩍은 듯 머리를 긁자 질문을 한 지인들은 경제적 사정이나 말할 수 없는 비밀이 있는 줄 알고 그 뒤로 질문을 잇진 않았다. 물론 걱정스러운 표정을 거둔 건 아니였지만.



원룸의 도피처는 결혼?



스무살 이후부턴 자취를 했으니 어느새 원룸생활만 7년차. 살면 살수록 원룸은 오래 살만한 곳이 아니었다. 화장실에서 나와 머리를 말리려고 팔을 들면 부딪히는 건조대, 젖은 빨래 위를 지키고 있는 사계절 옷이 뒤섞인 헹거, 그 옆으론 꺼지지 않는 전기매트와 한 몸이 되어 엉켜진 이부자리, 좌식상 하나 놓기 빠듯했던 남은 공간까지. 맹세코 나는 집에 많은 걸 바라지 않았지만 그래도 이건 진짜 집이라고 할 수 없지 않나 싶었다. 그냥 몸 하나 뉘이는 곳, 그 수준을 못 벗어난 몇 년이 지겨워서라도 이사를 가고 싶었다. 아니 그저 하루라도 빨리 이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고 싶었다. 


마침 몇 년간 사귄 남자친구와 결혼이 확실해지고 있었던 터라 결혼을 하면 원룸을 벗어나겠지? 하는 간단한 생각과 함께 남친에게 은근슬쩍 결혼하면 어떤지 의중을 떠보기로 했다. 당시 남자친구(현 신랑)은 나와 다르게 신중한 성격으로 '우리가 결혼을 한다면'이라는 가정도 쉽게 세우지 않는 건 물론이요, 결론이 날 때까지 고민을 입 밖으로 내지 않는 성격이라 쉽게 결혼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슬슬 마음이 급해졌다. 목 마른 사람이 우물을 판다고 결국 내가 먼저 결혼 이야기를 꺼냈다. 


처음 "우리 결혼할래?"하며 물어봤을 때는 아직은 결혼 생각 없다했다. 남자친구는 결혼이라는 제도에 관심 조차 없다는 말을 나랑 결혼을 안한다고? 하며 오해해서 운 적도 있다. 결혼할까?를 주구장창 떠들어도 별 반응이 없자 슬슬 약이 오르기 시작했다. 아직 제대로 말도 안했지만 머리 속에선 이미 약이 오르다가 넘쳐 화로 번졌다. 머리가 끓어오르는 순간 대번에 물어봤다. 


왜? 결혼을 안하겠다는 건데? 씩씩거리며 묻는 내 모습을 본 남자친구는 "어디서 살지 생각은 해봤어? 대출이자는 계산해봤어?"로 시작해 결혼이란 말이 나온 날 부터 끌어안고 있었던 현실적인 고민을 줄줄이 사탕으로 풀어내기 시작했다. 당시 둘 다 직장에 자리 잡은 지 2년도 되지 않았었고 모아둔 돈이 없는 건 물론이요. 머리 위로는 쌓여있는 학자금이, 등 뒤로는 당장 쓴 카드값이 대기 중이었다. 사회초년생 둘이 버는 돈으로는 번듯한 전세집 하나도 얻기란 택도 없었고 나는 없는 집 딸에 장녀, 신랑은 4남매 중 막내로 양가에 도움 또한 생각치도 못할 상황이었다. 이런 상황에 결혼이라니. 현실적인 남자친구 입장에선 가당치도 않은 이야기였다. 집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ing형으로 흘러가고 있으니 선뜻 결혼하잔 말에 대답하지 않았던 것이다. 오히려 남자친구 입장에서는 얘가 왜 이렇게 조르나 싶을 정도로 천하태평이라 당황스러웠다 했다.


그제서야 머리를 쳤다. 아뿔싸! 우리는 살 집이 없어 결혼할 수 없는 사람들이었던 것이다. 세상에 돈 없어서 결혼 못하는 게 나였다니. 머리가 댕하고 울렸다. 그 옆에서 현실적인 문제를 하나 하나 짚어내는 남자친구에게 공감하면서도 괜히 빈정이 상하기도 해 틱틱거리며 처음엔 좀 어렵게 시작해도 되지 않냐며 되받아치기도 했지만, 한숨을 푹푹 쉬던 남자친구는 부동산 앱을 보여주며 우리가 감당 가능 한 선에서 구할 수 있는 집은 지금 원룸과 다르지 않은 위치와 조건일텐데 여기서 사는 게 좋겠냐고 물었다. 그건 또 싫었다. 번듯하게 살고 싶어서 결혼하고 싶었는데 또 전전긍긍하며 살아야 한다니 이도저도 아니였다. 


평소 말 많던 애가 시무룩해지니 그 모습에 답답한 건 남자친구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다 뜬금없이 나에게 물었다. "혹시 우리 집에서 사는 건 어때?" 2PM도 아니고 우리집으로 가자니 그것도 참 멋쩍게 물은 말이었다. 그런데 왜인지 그땐 그 말이 동아줄 같았다. 별 다른 고민도 없이 고개를 세차게 흔들며 대답했다. "응 좋아! 나 오빠네 집에 들어갈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