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보다 훨씬 어릴 적부터 현진이는 또래와 어울릴 때마다 본인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착하다는 말을 많이도 들어왔다. 천성인지 혹은 내 양육방식이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현진이는 과격한 행동이나 큰 목소리를 아주 무서워했으며, 친구가 장난감을 뺏으려는 시늉만 해도 잽싸게 넘겨주고, 누가 가까이만 와도 차례를 양보해주는 아이였다. 누군가는 착하다고 할 수도 있는 내 아이의 모습은 사실 엄마가 보기에 복장 터지고 답답할 때가 더 많았다. 이래서야 엄마 없는 곳에서 호구 노릇하고 다니는 건 아닐까 하는 걱정을 늘 달고 살았더랬다.
일곱 살 현진이는 이제 더 이상 내 걱정 속에 살던 그 아이가 아니다. 여전히 과격한 행동을 싫어하고 양보를 잘하는 아이지만, 본인만의 경계선이 생겼달까. 납득이 안 되거나 손해를 보는듯한 상황에서는 '그건 싫어' '이건 안돼'라고 확실히 말할 줄 아는 아이가 되었다. 요 몇 년 사이 선생님이나 내가 마법이라도 부렸을 리가 없는데 아이는 그렇게 많이 바뀌어 있었다. 아니, 자랐다고 하는 편이 더 정확하겠다. 호구될 걱정하던 지난 내 모습이 무안해질 만큼 아이는 아주 열심히 자라고 있었다.
오늘만 해도 그렇다. 원에서 남자 친구들과 부쩍 잘 어울린다는 이야기는 들었으나 집으로 남자 친구를 초대하는 건 코로나가 시작되고 처음 있는 일이었다. 장난기 많은 남자 친구의 방문을 앞두고 나는 오랜만에 아들의 호구력을 의심하고 걱정하고 있었다.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나는 아들에게 많이 미안하다. 날계란이라고 생각했던 아들의 마음은 단단한 돌멩이가 되어가고 있었는데 엄마인 나만 몰랐다. 내 마음만 너무 아슬아슬하고 조심스러웠다.
남자 친구와는 과격하고 시끄럽게, 딱 그맘때 남자아이들이 노는 것처럼 놀았다. 집이 덥지도 않았는데 아이 둘이서만 사우나라도 한 것처럼 땀을 흘려댔다. 중간중간 '현진이가 상처받을 수도 있겠는데' 싶은 상황이 내 눈엔 보였으나, 현진이에게 이미 그것은 충분히 의연하게 넘길 수 있는 것들이었다. 그리고 나는 비로소 안심을 했다. 내 아들이 자랐구나, 단단하게 자라고 있구나.
현진이가 예의 있고 올바른 아이로 자라는 것 또한 엄마로서 당연히 바라는 일이지만, 그보다는 마음이 단단한 어른이 되면 좋겠다.세상의 크고 작은 풍파에 쉽게 깨지지 않는 마음을 가진 어른으로 자라면 좋겠다. 자라면서 마주치게 되는 수많은 거친 언행들에 자주 생채기가 나지 않는, 단단하고 유연한 마음을 가지면 좋겠다.
그리고 내 아이는 분명 그렇게 자라고 있다. 목이 쉬도록 외치는 함성 속에서, 땀에 범벅이 된 얼굴의 미소 속에서, 쿵쿵대는 너의 힘찬 발걸음 속에서 단단함은 그렇게 묻어 나오고 있다.
그래, 그렇게, 앞으로도 계속.
너의 딴딴한 마음을, 너의 딴딴한 사회생활을 응원해.
아들의 일기
지성이가 ◇◇◇동 ◇◇◇◇호에 놀러 오는 날! 그래서 이것저것 했다. 너무 재미있었다. 그리고 요리도 했고, 간식도 먹고, 요리한 것은... 바나나 초코! 그림도 그리고 색칠도 했고. 오늘은 최고! 지성아 사랑해 웃기고 재미있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