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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정현진 Apr 25. 2022

함께 하는 기쁜 날

가족과 함께 여행을 한다는 건

현진이의 일기



엄마의 일기


어릴 적 내가 기억하는 모든 가족여행에는 아빠가 없다. 축산업을 하시는 아빠는 하루라도 소를 두고 집을 비울 수가 없었고, 모든 가족행사나 여행에 당연한 듯 아빠의 자리는 없었다. 내가 기억도 못하는 아주 어릴 때부터 아빠의 부재는 당연했던 일이라, 딱히 서운함이나 아쉬움 같은 것도 없었다.

취업을 하고 내 돈으로 부모님과 여행을 갈 수 있게 될 즈음부터는 가끔 아빠도 여행에 합류하기는 했다. 긴 시간 설득하고 나서야 선심 쓰듯이. 나는 아빠를 사랑하지만, '네가 원한다니 한 번 노력해볼게'라는 자세로 가족여행을 대하는 아빠의 마음은 아직도 이해하기 어렵다.


그런 면에서, 나는 나의 가족이 생기면 1년에 단 한 번이라도 당연한 듯 가족여행을 가는 모습을 그려왔었다. 그리고 만난 지 채 10년이 안 된 우리 가족은 일 년에 한두 번씩 꼬박꼬박 여행 중이다. 조금 자란 현진이는 이제 여행 날짜나 여행지에 대한 의견도 낸다. 본인 생일 아침은 바다를 보며 맞이하고 싶다거나, 이번 여행은 수영장이 있는 펜션으로 가면 좋겠다거나 하는, 꽤나 명확한 의견을 제시한다. 그리고 우리 부부는 기쁜 마음으로 현진이의 의견을 수용한다.


함께 여행하는 일이 전혀 어색한 일이 아니고, 여행 준비는 엄마 혼자가 아니라 가족 모두 같이 하는 것이며, 여행에서는 한 눈 팔지 않고 서로에게 집중하는 것. 내가 오랫동안  바라 왔으며 우리 가족이 된 이후 쭉 하고 있는 여행이다.


이번 여행은 남편의 생일 기념이었다. 여행지를 함께 추린 뒤 현진이의 의견을 듣고 날짜와 장소를 정했다. (아직 어린 둘째는 이곳에 갈 거라며 미리 사진을 보여주는 정도로 타협했다.) 짐을 싸는 일은 주로 나의 일이지만, 여행지에서 읽고 싶은 책이나 가져가고 싶은 장난감은 각자가 챙겼다. 그리고 언제나 그랬듯, 이번 여행도 정말로 신났고 정말로 행복했다. 모든 기쁜 순간들을 가족 모두와 함께 하는 일이 아주 당연한 것은 아니라는 걸 알고 있는 난, 지금 우리 가족의 모습이 더할 나위 없이 예쁘고 소중하다.


엄마 아빠 최고라 말해주는 지금이 아니더라도, 현진이 유진이가 조금 더 커서 나보다 친구가 더 좋다고 말하는 그때가 온대도, 이렇게 좋은 날이면 우리 넷이서 여행 가는 게 아무렇지 않은 가족이면 좋겠다. 기쁜 날에는 넷이 함께 모여 축하를 나누는 일이 당연한 가족이 되면 좋겠다.


우리는 앞으로 때때로 마음이 통하는 날이면 여행을 하고, 그렇게 기분 좋은 추억들을 쌓아갈 테다. 바라건대 어린 나의 아이들이 어른이 되어도 그렇게 가끔 당연한 듯 함께 시간을 보낼 테다. 그리고 그것이 나뿐 아니라 나의 남편이, 나의 아이들이 그려가고 있는 우리 가족의 모습이라는 걸 안다. 그래서 집이 아닌 곳에서 함께 있는 우리의 모습은 평온하면서도 뜨고 기분 좋다. 

나의 남편, 나의 아들, 나의 딸이 함께 하는 모든 순간을, 우리 가족 모두를 난.. 물이 날 만큼 사랑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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