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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정현진 Jan 02. 2023

놓치지 않을게, 늘 바라보고 있을게

걱정 마, 네 뒤엔 언제나 내가 있단다

현진이의 일기



엄마의 일기


늦여름 즈음 아이들을 데리고 공원에 갔을 때의 일이다. 나는 커피와 주스를 사러 잠시 자리를 비운 상태였고, 남편은 공원에서 킥보드 타는 두 아이를 보고 있었다. 어느 순간 흥분한 현진이가 킥보드를 쌩쌩 타고 앞으로 끝없이 직진하기 시작했고, 하필 그 순간 유진이는 킥보드가 마음대로 되질 않아 멈춰 서서 아빠에게 안아달라 매달렸다. 그렇게 현진이는 점점 아빠에게서 멀어졌다. 아빠가 본인을 따라오고 있지 않다는 걸 문득 깨달은 현진이는 황급히 달려온 길을 되돌아오며 열심히 아빠를 불러댔지만, 사람 많고 드넓은 공원에서 겨우 120센티미터 아이가 아빠를 발견하기는 아마도 아주 어려웠을 것이다. 남편은 멀리서 소리를 치며 되돌아오는 현진이를 발견했에도 큰 목소리로 대답하는 대신 그저 돌아오는 모습을 바라보고만 있었다고 한다. 거리가 멀어 두려움 가득한 아들 표정과 절박한 외침은 안 들렸던 것이겠지. 잠시 뒤 마실 것을 사서 돌아오는 엄마와 유진이를 데리고 걸어오던 아빠를 동시에 만난 현진이는 울음을 터뜨렸다.


 현진이가 돌아오는 걸 봤으니 굳이 대답하지 않아도 큰 문제는 없으리라 단정한 것이 잘못이었다. 대놓고 탓하지는 않았지만 매사에 나보다는 느긋하고 예민하지 않은  반응은 이번만큼은 확실히 적절치 못했다. 현진이는 아주 잠깐이었지만 엄마 아빠를 잃어버렸다는 생각에 엄청난 패닉이 왔었던 것 같다. 미 일어난 일에 남 탓을 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겠냐마는, 그날 현진이의 두려움 가득한 얼굴을 보는 내내 나는 불편한 마음으로 남편을 끝없이 질책할 수밖에 없었다.


그 뒤로 현진이는 사람 많은 곳을 갈 때면  긴장한다. 잘 놀다가도 순간적으로 엄마나 아빠의 모습이 보이질 않으면 크게 당황해 허둥지둥하거나 패닉인 얼굴이 되어버린다. 무래도, 늦여름 공원에서의 그 짧은 순간이 현진이에게는 커다란 트라우마로 남은 것 같다.




오늘 과학관에서도 그랬다. 현진이가 좋아하는 것들이 가득한 과학관에서 엄마 아빠가 뒤에서 봐주고 있다는 믿음만 있다면야 현진이는 마음껏 땀 흘리며 뛰어놀았을 것이다. 과학관은 넓었고 사람은 많았다. 쉽게 마음을 놓고 이곳저곳 누비고 다니기엔, 무서웠던 기억이 자꾸만 현진이의 발목을 잡아 멈춰 세우는 듯했다. 현진이는 잠시라도 본인의 시야에서 가족들이 사라지면 영영 찾지 못할 것이라 여기는 불안한 눈을 하고, 때때로 허둥지둥 주위를 둘러보았다. 한참 집중해서 체험하다가도 문득 고개를 홱 돌려보고, 재밌는 놀이를 찾아 달려가다가도 급 브레이크를 걸어 멈춰 서곤 했다.


딱 1년 전, 이곳에 처음 방문했던 날의 현진이는 달랐다. 뒤도 돌아보지 않고 뛰어다니고 만져보는 통에 쫓아다니느라 정신을 차리지 못할 정도였다. 자칭 과학 박사라는 현진이에게 과학관은 천국이었다. 1년 뒤 오늘의 과학관은 분명 현진이에게 더 재미있는 공간이었을 것이다. 그간 아는 것이 더 많아졌으니 보이는 것도 훨씬 많아졌을 테고, 심지어 천체관에서 처음 보는 영상은 우주 홀릭 현진이를 제대로 홀렸다. 그럼에도 현진이가 마음 놓고 과학관의 모든 것을 백 프로 즐겼는지는 잘 모르겠다.


과학관이 너무 재밌고 좋다며 신이 나서 다니는 와중에도 꼭 붙잡고 놓질 않는 현진이의 손이 안쓰러웠다. 열심히 뛰어다니다 수시로 돌아보는 현진이 얼굴에 문득 스치는 불안함이 미안했다.




마음껏 좋아하고 흥분할만한 과학관에서도 완전히 자유롭지 못한 현진이에게, 완전하게 완벽한 믿음을 다시 쌓아주고 싶다. 현진이 눈에 당장 보이지 않더라도 언제나 엄마 아빠바라봐주고 지켜봐 주고 있다는, 안전한 믿음을 다시 주고 싶다. 뒤돌아보지 않아도 넘어지면 잡아줄 거리의 뒤에는 언제나 내가 있다는 확신을 주고 싶다. 현진이에게 트라우마처럼 남은 기억이 언제쯤 희미해질지 알 수는 없지만, 오늘 과학관에서의 현진이 모습을 보며 남편과 나는 다시 한번 다짐했다. 절대 현진이를 놓치지 말자고. 우리를 부르면 아주 커다란 소리로 응답해 주자고. 현진이가 뒤돌아보기 전에 미리 우리가 현진이의 손을 잡아주자고.


현진이는 과학을 좋아하고 그래서 과학관도 정말로 좋아한다. 그러니 아마 우리는 앞으로도 여러 번 과학관엘 방문해야 할 것이다. 다음번 방문엔 현진이의 신나는 얼굴만 마주하고 싶다. 불안함에 자꾸만 나를 찾아오는 게 아니라, 자유롭게 신기하고 흥미로운 것들을 찾아다니면 좋겠다. 엄마 아빠가 늘 뒤에 있으니 나는 언제나 안전하다는 믿음이 차곡차곡 쌓여, 그땐 우리의 과학관 탐방을 백 퍼센트 즐길 수 있으면 좋겠다. 아하는 것들을 향해 수없이 직진하는 현진이를 따라다니느라 하루의 체력을 다 써버리는, 아주 힘든 날이 되면 참 좋겠다.


사랑하는 현진아.

네가 나를 바라보지 않더라도, 나는 언제나 너를 바라봐줄게.

놓치지 않고 늘 너를 바라보고 있을게. 

그러니 걱정 말고 세상을 마음껏 뛰어다니렴.

좋아하는 것들을 주저 없이 찾아다니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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