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쟁의 시간, 인내의 시간

2022년 11월 방콕

by 루시

체크인을 하던 시각, 지원이에게 전화가 왔다. “케리어 붙이는데 20만원 넘게 달래!” 누가 들어도 어처구니 없는 소리에 나는 무슨 말이냐며 되물어야 했다. 지원이는 위탁수하물이 포함되지 않은 항공권으로 구매했었고, 그 사실을 당일 날 수속 카운터에서 알게 된 것이다. 부산에서 출발하는 지원이가 항공권을 따로 구매할 때 리체크를 하지 않았다는 사실에 ‘아차 싶었다. 이딴 항공사가 어디 있냐며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짜증과 억울함을 십 여분 동안 들어줘야 했다. 지원이와의 재회는 거진 3년만이었다. 아주 오랜만에 만나도 어제 본 것처럼, 혹은 가족처럼 특별한 사람이었다. 몇 년 동안 연락 한번 없다가 어느 날 갑자기 대뜸 여행을 가자고 해도 이상하지 않았다. 코로나 이후 처음 나가는 해외 여행이었기 때문에 지원이는 준비하는 내내 즐거워했다. 그러나 출발 첫날 터진 수하물 사건은 평온하기만 할 것 같았던 이번 여행이 마냥 그렇지만은 않을 것이라는 작은 신호탄이었다.


방콕의 기온은 밤이 늦은 시각에도 27도를 웃돌았다. 수완나품 공항은 에어컨이 돌아가고 있었지만 외부의 높은 습도와 붐비는 사람들의 체온이 더해져 후덥지근했다. 6시간이라는 긴 비행시간에 지쳐 몇 년 만에 우리는 한국땅도 아닌 타지에서 만났지만 그다지 호들갑스럽게 굴지 않았다. 예상대로 지원이는 수하물 이야기를 다시 시작했다. 항공사 직원에게 사정해서 몇 만원이라도 깎을 수 있었다며, 치열했던 당시 상황을 구구절절 늘어놓았다. 일탈이라는 설렘을 품고 공항에 도착했을 때, 얘기치 못한 상황으로 지원이는 자신의 실수에 대한 화를 참아내며, 추가비용을 조금이라도 줄이기 위해 민망함을 무릅쓰고 투쟁해야 했다. 삶은 언제나 인내와 투쟁의 연속이었다. 참을 것인지 내지를 것인지 선택의 기로에 서서 갈팡질팡했다. 잠시라도 쉬기 위해 떠나는 여행도 완전한 쉼은 없었다. 낯선 곳에서는 또 다른 인내와 투쟁의 순간들이 찾아왔다. 지원이가 공항에서 겪어야 했던 인내와 투쟁은 나 역시 방콕을 여행하는 내내 겪어내야 하는 것들이었다.


방콕을 여러 번 다녀왔던 나는 이번 여행 대부분의 결정과 수행을 맡아서 했다. 지원이는 지긋지긋한 집안일에서 벗어났다는 이유만으로 무엇이든 다 좋다며 들떠 있었다. 그러나 전부 좋다는 말은 전부 좋아야 한다는 욕심이기도 했다. 지원이는 호텔 방부터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았다. 습도가 높은 날씨와 배정받은 호텔 동 위치가 환기가 잘 되지 않아 방안은 꿉꿉한 편이었다. 침대에 누워보더니 물속에 들어와 있는 것 같다는 말만 반복했다. 방을 바꾸고 싶다는 말을 둥글고 예쁘게 말아서 나에게 계속 던지고 있었다. 지원이의 투정을 그만 들으려면 카운터로 내려가서 방을 바꿔 달라고 말하는 수 밖에 없었다. 호텔 직원은 습하다는 영어도 제대로 알아듣지 못했다. 눈치로 알만한 얘기를 고개만 갸우뚱거리는 걸 보니 눈 가리고 아웅하는게 분명했다. 하지만 우두커니 서서 똑같은 말만 되풀이하는 진상 고객을 이기지 못하고 끝내 방을 바꿔줘야 했다. 새로운 방은 좀 전에 나온 방에 다시 들어온 것처럼 모든 것이 똑같았다. 지원이는 볼멘 소리를 하고 싶은 듯 보였다. 하지만 오랜 친구에게 내어줄 수 있는 인내심은 이미 하루치를 전부 소진해 버려서 더 이상 참아낼 기력이 없었다. 포기하라고 단호하게 말하고 나서야 상황은 끝이 났다. 인내와 투쟁이 줄다리기 할 때, 여행뿐만 아니라 모든 관계는 수평을 맞추고 팽팽하게 이어갈 수 있었다.


해는 완전히 넘어가지 않았지만, 잔뜩 낀 먹구름 때문에 날은 어둑어둑했다. 조드페어 야시장에 점포들은 행과 열에 맞춰 질서정연하게 각자 위치에 서있었다. 평일 이른 오후였지만 사람들은 꽤 많았고 대부분의 점포들은 문을 열고 야시장을 환하게 밝혔다. 한쪽 골목에서는 랭쌥, 해산물 튀김 등 태국과 어울리는 음식들을 팔았고, 다른 골목에서는 코끼리 바지, 나염한 옷, 손으로 만든 공예품 등을 팔고 있었다. 현지인보다는 여행객을 위한 시장에 가까웠다. 점포 안에 테이블이 없는 길거리 음식점도 많았지만 앉을 수 있는 공용 테이블은 심각하게 부족했다. 지원이는 치킨을 먹고 싶다며 애타게 찾았다. 야시장을 여러 바퀴 돌고 나서야 한곳에서 치킨을 살 수 있었다. 마땅히 앉을 곳이 없어서 한참을 빙빙 돌다가 간신히 빈 테이블에 앉을 수 있었다. 밥을 먹고 나오니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5분도 채 지나지 않아 빗방울은 폭우가 되었다. 방금 전까지 시장 골목마다 가득 메우고 있던 사람들은 순식간에 자취를 감췄다. 소나기 인줄 알았던 비는 그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9시에 예약해 둔 마사지숍에 가기 위해 택시를 타야 했지만 폭우 때문인지 좀처럼 택시는 잡히지 않았다. 방콕은 여행객에게 정직한 편이었지만 외국인을 상대로 요금을 후려치는 장사꾼들은 항상 있었다. 특히 택시 사기가 가장 흔했다. 이 때문에 대부분 그랩이라는 앱으로 택시를 이용했다. 계속 쏟아지는 비와, 촉박한 시간 탓에 어쩔 수 없이 우리는 그랩을 포기하고 지나가던 택시를 타야 했다. 택시기사는 미터기를 누르지 않고 요금부터 불렀다. 그랩에서 본 요금에 거진 두 배였다. 가격흥정 여행에서 가장 피곤한 일이었지만 호객이 되는 일은 더 용납할 수 없었다. Distcount 라는 단어 조차 모르는 기사를 상대로 어떻게든 깎아 보려고 애를 써야 했다. 몇 분을 애타게 조르던 외국인 두 명에게 지친 기사는 요금을 절반 정도 깎아 줬다. 그러나 가격흥정 투쟁에서 이겼다고 상황은 끝난 것이 아니었다. 이미 심기가 불편해진 기사에게 거스름돈을 못 받을 가능성이 컸다. 내야 할 돈을 정확하게 맞추기 위해 지원이와 나는 어두운 택시 안에서 잔돈을 탈탈 털어 돈을 맞춰야 했다. 더군다나 폭우와 교통체증이 심해 운전에만 집중해도 모자랄 판에 휴대폰에서 눈을 때지 않는 산만한 기사에게 1바트라도 더 줄 생각은 일절 없었다.


난데없이 불쑥 찾아오는 인내와 투쟁의 시간들 때문에 하루 일정이 끝나면 기진맥진해져서 기절하듯 잠이 들었다. 지원이는 아침 7시만 되면 조식을 먹으로 가자며 나를 깨웠다. 조식을 먹고 나면 어김없이 수영장에 가야 했다. 지원이는 여유로움을 찾기 위해 온 방콕에서도 흘러가는 시간을 그냥 흘러 보내지 못했다. 아침 잠이 많은 나는 7시에 조식을 먹고 한 시간 이상 수영을 하는 오전 일정을 마치고 나면 오후 내내 하품을 했다. 하지만 조식당에 혼자 가라고, 수영장에 혼자 가라는 냉정한 말은 차마 할 수 없었다. 혼자 온 여행이 아니었다. 몇 년 만에 나온 해외여행에 한껏 들뜬 지원이의 흥을 깨고 싶지 않았다.


여행의 마무리로 왓아룬 전망으로 유명한 식당에서 야경을 보며 저녁을 먹기로 했다. 모든 순간이 완벽해야 했던 지원이의 욕심은 이곳에서도 유효했다. 비 오는 날씨를 안타까워하며 야외 테이블에 앉아 야경을 보고 싶어했다. 잠시 비가 소강상태에 들어가자 지원이는 밖으로 자리를 옮기자고 말했다. “직원에게 옮겨달라고 해볼까” 라며 나에게 속삭였지만 직접 나서지는 않했다. 직원에게 보내야 할 간절한 눈빛을 나에게 보냈다. 나는 주춤거리며 다가가 자리를 옮겨달라고 말해야 했고, 비가 내리면 또 다시 안으로 옮겨줄 수 있냐는 부탁을 해야 했다. 직원은 인상을 찌푸리며 당황스러운 기색을 보였지만 미안해 하는 내가 애처로워 보였는지 야외 테이블과 의자에 고여있는 빗물을 닦아 냈다. 어두워 질수록 식당에 손님들은 많아졌다. 하지만 비가 잠시 그쳤다고 밖으로 자리를 옮기는 사람은 없었다. 야외 테이블에는 우리 둘뿐이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 비가 다시 내리는 바람에 밥을 먹다 황급히 안으로 들어와야 했다.


완전히 불이 켜진 왓아룬은 후광을 밝히는 불보살의 모습이 아닐까 싶었다. 구름으로 꽉 막힌 하늘과 시커멓게 둥둥 떠다니던 차오프라야 강 사이로 눈부시도록 강한 빛들을 사방으로 쏟아냈다. 주변에 모든 이목을 자신에게로 집중시켰다. 감탄을 자아내며 선망의 눈으로 바라보던 사람들 향해 고귀한 미소를 지었고, 양 옆으로 줄지어 있던 허름한 건물들은 왓아룬을 향해 무릎을 꿇었다. 여행 내내 인내와 투쟁이 남긴 감정 찌꺼기들이 마음에 돌아다녔다. 방금 전 자리를 옮기면서 생겼던 짜증과 비슷한 것들이었다. 차곡차곡 쌓여서 커져가던 지꺼기들은 왓아룬을 보는 순간 순식간에 사라져버렸다. 왓아룬이 내뿜은 밝은 빛은 마음속에 어둠이 기승을 부리지 못하게 했다. 지원이를 대하는 마음이 한결 편안했다. 애쓰고 참아서 억지로 이해하려 했던 것들이 진심으로 이해할 수 있었다.


인내와 투쟁은 나의 선택이다. ‘자신이 가장 먼저’라고 말하는 세상에서 타인을 위해 참아내고 싸워야 하는 행동은 바보 같은 짓일 수도 있다. 나를 위했다면 호텔 방을 바꿀 필요도 없었고, 아침 7시에 일어날 필요도 없었다. 인내와 투쟁을 멈추기 위해 떠난 여행이었지만 그곳에서는 또 다른 모양의 인내와 투쟁을 마주해야 한다. 그럼에도 그것들을 외면할 수 없었던 이유는 찰나의 자신보다 오랜 친구가 더 귀중하기 때문이다. 잠깐의 번거로움과 피곤은 모래알만큼 작고 사소하다 신발 속으로 들어온 모래알은 털어버리면 그만이었다. 왓아룬이 없다면 방콕을 찾는 여행객들도 줄어들 것이다. 나 역시 지원이가 아니었다며 방콕이 아닌 다른 곳을 여행했을 것이다. 방콕 여행에서 가장 소중한 것은 지원이와 함께하는 시간이기에, 모래알 같은 인내와 투쟁은 기꺼이 감내하고 추억으로 삼으면 그만일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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