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8월 제주 한라산 등반기
백록담, 그건 중요하지 않아
해발고도 1,947m, 한국에서 가장 높은 산이라는 사실 하나로 등반의 이유는 충분했다. 일주일 전부터 제주도 날씨를 체크했는데, 장마철이 다 지난 8월 중순에 제주도는 열흘 넘도록 비, 비, 비였다. 이상하게도 개지 않는 일기예보를 볼 때마다 한라산 등반 의지는 더욱 확고해졌다. 태풍과 폭우가 몰아치지 않는 이상 무조건 올라야 한다는 마음의 소리는 커지고 있었다. 삼대가 덕을 쌓아야 선명한 백록담을 볼 수 있다며 날씨를 걱정하는 켈리의 목소리는 그다지 귀에 꽂히지 않았다. ‘백록담 따위야’ 나의 목적은 백록담 관망이 아니었다. 한라산 정상을 찍는 것이 전부였다. 일상이 팍팍하고, 순조롭지 않다고 느껴질 때 힘든 여행을 시도하거나 새로운 것들을 시도하려는 습관이 있었고, 이번 한라산 등반도 그중에 하나였다.
9.6km 성판악 코스, 누가 하급자 코스래?
다행히 한라산은 우리의 발길을 허락했다. 전날까지도 쏟아붓던 비는 등산 당일 말끔히 그쳐 우비를 준비할 필요가 없었다. 소요 시간은 길지만 완만한 경사로 첫 한라산 등반자들이 많이 찾는 성판악 코스로 오르기로 했다. 아침 7시, 한라산 관리자의 주의사항을 간단하게 듣고 등반을 시작했다. 시작한 지 약 한 시간, 800m까지는 크게 힘들지 않았다. “이 정도 속도와 난이도면 금방 오르겠는데?”라고 내뱉는 순간부터 본격적으로 ‘사서 고생길’ 이 열렸다. 역시 방심은 금물이고, 말은 함부로 내뱉는 게 아니었다. 30분이나 헐떡이며 걸었는데 100m도 나아가지 못할 정도로 속도는 현저히 떨어졌다. <진달래밭 대피소를 13:00 이전에 통과하여야 정상 탐방이 가능합니다>라는 플랜카드가 반복적으로 보일 때마다 누가 뒤에 쫓아오듯 마음은 조급해지고 있었다.
오전 10시, 하산하는 사람들은 고수일까, 중도 포기자일까
산 중턱을 통과했을 때부터 산에서 내려오는 사람들이 종종 보였다. 놀라서 시계를 보니 겨우 오전 10시가 지나고 있었다. 이들은 정상을 찍고 벌써 하산하는 것인지, 아니면 중도 포기자인지 감이 오지 않았다. 만약 후자라면 남은 산행길이 얼마나 더 곤욕스럽길래 포기하는 걸까 라는 두려움이 스쳤다. 그렇다고 하산하는 이들이 모두 중도 포기자라고 하기에는 몇몇은 등산 장비를 완벽히 갖추고 있었다. 그렇다면 이들은 최소 새벽 5시에 등반을 시작했을 것이고 왕복 소요 시간 6시간 미만인 초고수 산악인임이 분명했다. 하산하는 고수들 사이로 개량한복 차림에 머리에 삿갓을 쓰고 지팡이 하나로 내려오는 도인도 볼 수 있었다. 배낭 하나 메지 않은 그의 차림을 보는 순간 한라산을 밥 먹듯이 올라 이제 산의 정령이 된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산의 전령들에게 성판악 코스 따위는 오전에 산책하듯 다녀올 수 있는 여유로운 길이었다. 하지만 한라산 초행길인 우리에게 한라산은 무섭도록 험악했다.
드디어 정상, 고생했으니 잠시 안개를 걷어 줄게
역시 한라산은 명산이었다. 정상까지 약 한 시간 가량의 길목은 절세 경관이었다. 가파르게 쌓여 있는 계단을 하나, 둘 올라설 때마다 산은 더 아름다운 풍경을 보여줬다. 여기까지 오른 고생한 작은 인간들에게 주는 산의 선물 같았다. 마침내 정상에 도착했을 때 생각보다 많은 사람이 도착해 있었다. 우리는 잠시의 쉼 없이 백록담을 볼 수 있는 전망대 끝으로 다가섰다. 두꺼운 안개가 백록담을 포근히 덮고 있었다. 아무에게나 얼굴을 보여줄 수 없다고 말하는 백록담에 작은 인간들은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그런데 갑자기 세차게 부는 바람에 따라 안개가 비켜나고 백록담이 모습을 드러냈다. 움푹 파인 분화구에 푸른 물을 머금고 있는 조그만 백록담은 한라산의 손바닥이었다. 하늘과 가장 가까운 위치에서 손바닥을 내밀어 내리는 비와 눈을 언제나 묵묵히 받아내는 것 같았다.
한라산 NPC이자 악령, 까마귀
정상에 도달하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렸기 때문에 하산을 서둘렀다. 성판악 보다 코스가 짧고 경치가 좋은 관음사 코스를 선택했다. 관음사 길은 하산 시작부터 계단이 많고 가팔랐다. 이미 근육통이 시작된 다리와 발목은 걸음을 내디딜 때마다 고통을 호소했다. 스틱은 두 손으로 짚고 4개의 다리로 움직였으나 다리의 고통은 전혀 나아지지 않았다. 5분 거리가 10분이 걸릴 만큼 달팽이 걸음이었다. 정상에서 먹은 점심은 어디로 사라진 건지 체력은 바닥이었다. 간신히 붙잡고 있는 정신력 마저도 까마귀들이 방해했다. 산 곳곳에서 힘겨워하는 인간들을 비웃듯 까악거렸다. 흡사 지옥으로 인도하는 악령 같았다. 어떤 의미로 울어 대는지 알 수 없는 까마귀의 괴성은 유난히 귀에 거슬렸다. 심지어 쉼터 곳곳에 까마귀 모형까지 있었다. 이로써 한라산의 상징은 까마귀이고 까마귀는 한라산의 NPC 같은 존재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실제 까마귀들은 너무 커서 무서웠고, 괜히 까마귀 모형만 스틱으로 툭툭 때리며 화풀이를 했다.
거의 울기 직전, 극한에 도달해서야 끝이 보인다.
틈새 없이 빽빽한 산길은 아무리 내려가도 끝이 보이지 않았다. 수많은 등산객이 나를 앞질러 갔다. 극도로 예민해져 까마귀는 물론 앞질러 가는 사람들의 대화 소리나 음악 소리에도 짜증이 났다. 바람 한점 불지 않아 체온까지 오르고 있었다. 온몸이 뜨겁게 느껴지고 온정신이 날카로워진 나는 극한을 마주했다. 거의 10년 만에 느끼는 고통이었다. 적정 거리로 앞서가던 켈리도 더 이상 보이지 않았고 산에 혼자 덩그러니 남은 기분이었다. 날은 벌써 어둑어둑하고 끝을 알 수 없는 막막함에 산이 점점 무서워졌다. 구조요청용 위치 번호 표시판을 볼 때마다 포기의 유혹이 솟구쳤다. 눈물이 핑 돌기 시작할 때쯤 갑자기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비를 맞으니 몸에 열이 내리고 컨디션이 한결 나아졌다. 그리고 멀리서 차 경적과 사람들의 목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극한을 경험하고 나서야 끝을 볼 수 있었다. 괴로워하는 작은 인간을 위한 큰 산이 내주는 자비였다.
한라산의 위대함에 겸손해지는 마음
호텔로 돌아와 작살 난 다리를 두드리며 멍하게 TV를 봤다. 다음날 일정은 당연히 사라졌다. 켈리와 나는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아무데도 갈 수 없다는 사실은, 제주도를 오기 전 한라산 등반을 계획하며 산을 얕잡아봤던 나의 오만함을 반성했다. 한라산은 위대했고 자비로웠다. 하루에도 수십 번씩 바뀌는 날씨의 변덕을 다 받아냈다. 그리고 매일 개미처럼 오르는 작은 인간들의 발길질도 조용히 포용하고 있었다. 힘들다며 산을 향해 투덜거리는 건 작은 인간들 뿐이다. 우리는 다시 산을 타지 않기로 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이글을 쓰는 순간 한란산이 그리워진다.
마음의 쉼이 필요한 이들에게
한라산이 그리운 이유를 하나로 단정 짓기는 어렵다. 높이 오를수록 펼쳐지는 아름다운 경관이 머릿속에 맴돈다. 잠시 쉬어 가는 길목에서 마주친 산 바람의 촉감이 아른거린다. 하지만 가장 큰 이유는 달리 있다. 당장 주저앉고 싶은 극한의 고통에서 오히려 고요해지는 마음, 거대한 산 앞에서 사소해지는 걱정거리, 대다수의 사람들은 일상속에서 불편한 마음과 걱정을 하나씩 가지고 있다. 한라산 품속에서 등반이라는 행위 하나로 고통과 희열을 동시에 느낀다. 한라산 등반은 육체적 고통을 수반하지만 동시에 마음의 평화를 느낄 수 있다. 마음의 쉼이 필요한 작은 인간들에게 한라산은 언제나 열려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