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리커리어 Aug 05. 2020

과거와 미래의 친구

과거, 현재, 미래의 ‘나’가 같이 살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현재를 살고 있지만, 가끔 과거의 ‘나’가 한 번씩 찾아온다. 멋있는 모습으로 오는 것이 아니라, 초라하고 힘이 빠진 모습으로 온다. 그 친구는 늘 변함없는 모습으로 오는데, 이제 오지마라고 해도 기억 속에서 맴돌고 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현재의 ‘나’는 엉뚱하게도 미래의 ‘나’를 찾고 있다. 삼각관계도 아닌데 현실의 결핍과 불만에 대한 이야기도 나누고, 멋있는 친구를 만나보고 싶어 한다.   

   

그런데 미래의 ‘나’는 잘 보이질 않는다. 길을 몰라서 못 오는 것인지, 확신이 없어 그런지 얼굴이 희미해 잘 보이질 않는다. 서로 직면하면 짜증이나 만남을 피하고 있든지, 아직 현재의 ‘나’와 미래의 ‘나’가 서로 분리되지 않아 하나의 모습일 수도 있다. 그래도 과거의 친구는 날씨가 꾸질 한 날이면 빚쟁이가 돈 받으러 온 것처럼 막걸리 사달라고 조른다. 언젠가 화창한 봄날에 미래의 친구가 다가와 인사를 해도 처음 보는 사람처럼 지나칠 수 있다.      


순간 속에는 과거, 현재, 미래가 같이 공존한다. 미래의 친구는 항상 옆에 있는데 발견하지 못할 수 있다. 혹자는 미래의 친구가 필요하냐고 질문을 할 것이다. 그냥 충실하게 살다 보면 원인과 결과에 따라 미래는 결정되는데 굳지 집착할 필요가 있나? 허상을 키울수록 욕심과 불일치로 스트레스 받는데 단순하게 사는 게 낮지 않을까? 그리고 현재의 ‘나’ 보다 미래의 친구가 희망도 없고 보잘것없이 보일 경우는 찾아서 어찌할 건데? 그냥 현실에 충실하자.

        

그래도 나는 미래의 친구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자신과의 대화는 과거의 친구만 하는 것인가? 미래의 친구에게도 질문하고 서로 협업을 할 수 있다. 그 친구들이 잘났든 못났든 무엇이 문제인가? 서로에게 격려하고 배우면서 발전 방향을 모색하면 된다. 그렇다고 친구들에게 집착하거나 너무 무거운 부담을 지울 생각은 없다. 그리고 무엇이 되어야 한다는 이미지를 요구하고 싶지 않다. 모든 가능성의 방향을 열어 놓고 마음을 닫지 않으면 된다.    


친구들 간에 마음의 저항, 즉, 에너지의 소모가 없을 때 가장 이상적인 모습이다. 물이 흘러가듯 과거, 현재, 미래가 자연스럽게 연결되어 가는 것이다. 그러나 계속 생각이 변하기 때문에 친구들 간에도 원망하고 실망스러운 모습을 보일 수도 있다. 서로 갈등할 때도 있겠지만, 그 차제도 ‘나’라고 인정하고 받아들일 때 서로 연결되고 끊어지지 않는다. 만약, 서로서로가 단절이 되면 ‘나’라는 존재를 불신하게 되고, 어둡고 긴 시간 터널에서 길을 잃어버린다.      


결론적으로 과거의 ‘나’를 인정하고, 최선을 다한 것에 감사해야 현재가 흔들리지 않는다. 그리고 미래의 ‘나’를 가꾸고 키우지 않으면, 지금 모습이 결국 미래의 모습이다. 친구에게 계속 가치를 부여하고 생명력을 불어넣어야 그 친구들을 볼 수 있다. 현재의 노력들이 쌓여 미래 모습을 만드는 것은 당연하기에 하루하루에 집중하는 것이 맞다. 그렇지만, 성장한 미래의 ‘나’는 거꾸로 현재와 과거 모습을 변화시킬 강한 영향력이 있다는 것도 알아야 한다.   


- ReCareer   

작가의 이전글 계속 닦아야 빛이 난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