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에 나는 둥지를 틀었다
맨 처음 이곳은 잡초와 빽빽한 나무들로 길을 찾을 수 없었다. 사람 키만큼 자란 풀들이 땅의 주인인양 언덕을 지키고 서 있었다. 풀과 돌들이 깔린 쓸모없는 황무지 같은 산골짜기는 바람에 흔들리며 조금은 쓸쓸하게 조금은 낭만적으로 느껴졌다.
집에서 제법 먼 강원도 어느 산골짜기에 내가 서 있다. 무성한 억새풀과 나무들 사이에 서서 산 아래를 내려다본다. 왜 이곳에 와있는지. 왜 이곳에서 휴식의 시간을 보내려고 하는지. 왠지 이 땅을 일구고 싶어졌다. 척박한 땅에서 자라나는 풀. 풀은 매서운 추위에도 눈밑에 숨어있다 햇볕이 들며 다시 일어난다. 풀처럼 강해지고 싶었다. 풀과 나무들을 둘러보며 이곳을 가꾸어 보기로 했다.
산 경계선 끝자락에 100년 된 살구나무 한그루가 있다. 오래된 만큼 줄기와 가지가 비틀어져 있는 거무스름한 살구나무. 왠지 나무 뒤에 무서운 할머니가 숨어 있을 것만 같은 무서운 느낌이 들었지만 살구나무는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상상을 했다. 나무 아래 벤치를 놓고 그 벤치 위에서 느긋하게 오후를 보내는 나를. 하지만 나의 상상은 경계측량과 함께 선 밖으로 밀려나고 말았다. 10월 어느 날, 매력으로 와닿던 살구나무는 옆 땅 정지작업으로 인해 무참히 굴착기로 뽑아졌다. 오래된 물건에는 정령이 깃든다는 옛말이 있다. 그래서일까. 살구나무가 뽑아지던 날, 10월 말인데도 불구하고 바람이 불면서 눈이 세차게 내렸다. 도깨비가 심통을 부리는 듯. 그들은 날씨 변화로 인해 작업을 더 이상 진행할 수가 없었다. 옆 땅 사람들은 눈길로 인해 차를 두고 산 아래로 걸어 내려가야만 했다. 그 이후 제법 몸통이 큰 살구나무는 가지가 잘린 모습으로 입구 쪽에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우리보다 더 깊숙한 산자락에 사는 노부부는 그 나무가 마음에 들었나 보다. 100년 된 살구나무는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그렇게 그들의 정원에 한 가구로 자리하게 되었다. 이제 꽃과 열매를 볼 수 없는.
3월 초, 산골짜기 길을 따라 올라갔다. 계곡은 아직 눈이 채 녹지 않아 겨울의 잔재가 남아있다. 하지만 얼음 밑으로 흘러가는 물소리는 봄처럼 경쾌했다. 갯버들의 흔들림, 회색빛 풀사이로 초록의 풀들이 얼굴을 내민다. 물소리를 들으며 구불구불한 길을 따라 500m 고지로 향했다. 여기는 산속임에도 널찍한 평지가 있다. 아마도 오래전에 살았던 화전민이 개간을 했을 것이다. 이곳은 동서남북 산봉우리가 둘러싸여 있는 형상으로 가운데는 둥지 모양처럼 보인다. 그래서 나는 이곳을 '산골짜기 둥지'라고 부르기로 했다. 둥지는 새로운 시작을 알린다.
산속엔 정적마저 없다
비를 품지 않은 메마른 불모의 천둥이 있을 뿐
산속엔 고독마저 없다
금 간 흙벽 집들 문에서
시뻘겋게 성난 얼굴들이 비웃으며 으르렁댈 뿐
만일 물이 있고
바위가 없다면
만일 바위가 있고
물도 있다면
물
샘물
바위 사이에 물웅덩이
다만 물소리라도 있다면
매미 소리도 아니고
마른 풀잎 소리도 아닌
바위 위로 흐르는 물소리가 있다면
티티새가 소나무 숲에서 노래하는 곳
뚝뚝 똑똑 뚝뚝 또로록 또로록
하지만 물이 없다
(중략)
산속의 이 황폐한 골짜기
희미한 달빛 속에서 풀들이 노래하고 있다
무너진 무덤들 너머 성당 주위에서
단지 빈 성당이 있을 뿐 단지 바람의 집이 있을 뿐
성당엔 창이 없고 문은 삐걱거린다
마른 뼈들이 사람을 해칠 수는 없지
단지 지붕마루에 수탉 한 마리가 올라
꼬꾜 꼬꾜 꼬꾜
번쩍하는 번개 속에서 그러자 비를 몰아오는
일진의 습풍
- T.S 엘리엇, 「황무지-5장 천둥이 한 말」 부분.
어느 날 감기도 걸리지 않는 건강한 나의 신체에 갑자기 발견된 병은 '물이 없다'는 말처럼 사형선고와 같았다. 황무지 같은 괴로움과 슬픔. '물'을 찾는 행위와 같이 희망을 찾아야 했다. 황폐한 자연에서 "풀들이 노래하고 있다." 수탉 한 마리가 지붕마루에서 울자 물기를 머금은 바람이 불어온다. 이 밀려오는 습풍에서 다시 시작하는, 찾는, 미래의 희망으로 다가가기 위해 이곳에서 다시 시작한다.
불모지 같은 산골짜기 둥지를 일구기 위해 무수히 널려 있는 돌을 줍고 풀을 베었다. 산속에서 큰 기계 없이 작은 도구들로 땅을 일구는 것은 쉽지 않다. 한 번에 트랙터와 포클레인 등 큰 기계로 정지작업을 하면 좋겠지만 우리는 산 형태를 바꾸고 싶지 않았다. 산 일부분은 밭으로 활용하기 위해 돌을 걸려내기 시작했다. 흙보다 돌이 더 많이 눈에 띄었다. 작은집(농막) 앞에 움직임을 자유롭게 하기 위해 강가에 가서 넓적한 돌을 주워 바닥에 깔았다. 땅에 박혔던 돌을 버리고 그 자리에 또 다른 돌을 채웠다. 밭에 있는 무수한 돌들을 한 곳에 모았다. 흙에서의 노동은 처음이었다. 그래도 어쩔 수 없다. 이제 흙과 친해져야 한다. 계속해서 쌓인 돌들을 보며, 돌의 활용도를 생각해본다. 재료로 무기로 또는 자연의 일부분으로 있는 돌. 같은 돌이면서 같은 돌이 될 수 없다는 모순이 발생한다. 의미 없는 것을 없을 것이다. 쌓여 있는 일부분을 화로담으로 활용했다. 엉성하지만 새로운 것을 해본다는 성취감은 큰 즐거움으로 다가왔다. 주말마다 가서 우리는 가꾸고 또 가꾸었다. 산골짜기 둥지는 조금씩 변하기 시작했다. 자연에서 소박하게 먹을 만큼만 수확하고 남은 시간은 여유롭게 낭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