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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버들 Jul 20. 2022

집중의 시간, 몰입하다.

   

그렇다.

각자 그 시간들이 있다. 각기 다르게 또는 비슷하게. 똑같다고는 할 수 없다. 감정의 온도가 다르기 때문이다.

한때는 학업에, 그 누구에게 사랑이란 이름으로,  온 에너지를 쏟아 양육에, 나에게 또는 음악에, 글과 문장에 그리고 쓰기 그러다 멍 때리기. 함께하는 시간에 시간을 빼거나 더 한다. 시간은 직선으로 나아가고 있다. 어쩜 직선이 아닌 타원의 고리 안에서 돌고 도는지도 모른다. 반복되다 어느 지점에서 그 지점에 나에게 크게 다가와 그곳에서 부풀어 또 다른 타원과 직선의 시간을 만드는지 모른다.  

    

작년에 딸아이가 아팠다. 지금은 좋아졌고 다시 원래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 나 또한 그랬다. 그때 누군가에서 작은 꽃 화분 칼랑코에를 받았다. 일 년이 지나 그 화분은 이제 하나가 아니다. 꽃 화분은 세 개가 되었다. 물론 그대로 방치했다면 지금 이 자리에 없을 것이다. 동물이든 식물이든 생명을 가지고 있다. 느낌의 차이가 다를 뿐.  특별히 관심을 주지 않았다. 다만 식물이 죽는 것을 보면 마음이 좋지 않을 뿐이다. 베란다에 있는 몇 가지의 다육이에게 물을 주면서 같이 함께 물을 주었다. 그러다 잎과 줄기를 이용해 작은 화분에 옮겨 증식시켰다. 그러다 보니 베란다가 조금은 풍성해졌다.      


이처럼 무언가에 집중의 시간을 가지게 되면 싫든 좋든 결과물이 나온다.

집중의 시간을 생각한다. 무언가 집중한다는 것은 그만큼 자신의 에너지를 쏟는 것이다. 이왕이면 좋은 긍정적인 시간이 좋다. 지난 시간은 이미 과거이다. 결과물이 어찌 되었든. 지금의 시간에 집중하고자 한다. 산중 '바람의 언덕’에서 작은 공간에 모든 것을 쏟고 있다. 내 마음대로 칠하고 자르고  옮기고 새로운 환경을 만들고 있다. 혹 작은 건축물이 해체된다 해도 지금의 행동에 만족하고 있다.


그 사이에 나는 오랜 친구들과의 시간을 과거로 보냈다. 아무래도 좋지 않은 결정일 것이다. 그 친구들에게 ‘미안하다’라고 전하고 싶다. 나이가 들면 친구가 꼭 필요하다고 누군가 이야기한다. 이것은 결코 끝이 아니다. 아직 앞으로의 시간이 있기 때문이다.  


집중의 시간을 가지고자 하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 나의 에너지가 그러길 바란다.

누구는 이런 행동에 대해 독선이라고 한다. 어쩜 맞는 말이다. 나이가 들었음에도 아직 모르는 게 많다. 앞으로의 시간이 어떻게 변화할지 모른다. 하지만 몰입의 시간이 필요하다.



처마 끝 떨어지는 물방울 하나

직석으로 줄을 타고

지면으로 떨어지는

거울 속

폭죽 터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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