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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버들 Jun 08. 2022

닭은 식용입니까

검은 닭이 거실 안을 돌아다닌다. 붉은 벼슬이 찰랑거리는 검은 닭과 산책을 나간다. 아파트 뒤쪽 야산으로. 사람들은 물어본다.    

 

“어머, 닭 키우세요,”

“어디서 키워요.”

“똥은 어떻게 처리하나요.”

"암탉이에요."

“알은 낳나요.”     

"와, 그럼 집에 수컷이 있나요."


그럼, 대답한다.

“ 네, 베란다에, 패드에, 네, 네,  아니요,  혼자서도 낳아요.”     


딸은 어릴 적부터 동물 키우는 것을 좋아한다. 동물 좋아하는 아이가 있다면, 다른 집도 비슷하지 않을까 한다. 키워본 동물들도 다양하다. 우리 집은 다른 동물 중 새와 인연이 깊다. 이상하게 앵무새와 닭을 자주 키운다. 얼마 전까지 11살의 앵무새가 있었다. 앞에 있던 앵무새들은  갑자기 심장마비로, 병이 걸려서 그리고 순식간에  달려온 고양이가 채 가서. 지금의 앵무(뚱이)는 11년째 함께 했다. 며칠 전 노화로 인해 생명을 다 했다. 새도 편히 잠을 자면서 갈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지금 의자 옆에 편히 두 다리를 펴고 누워 있는 검은 닭(청계)은 8개월 된 아이이다. 거의 기절한 것처럼 누워있다. 가장 편한 자세이다.      


부화기에서 태어난 닭. 그래서 부모가 누구인지, 관심이 없다. 검은 닭은 청계 종이며 부화 기계에서 부화가 되었다. 작은 초란에서 태어나, 세 번의 위기를 견뎠고 살아남았다. 그리고 지금 내 옆에 누워있다. 좀 전에 차돌박이와 갈빗살을 먹고 행복해 있다. 고급스러운 음식을 주는 것이 아닌 남다 남은, 조금은 생각을 해서 소량의 고기를 주었다. 이 아이는 매일 또는 이틀 간격으로 을 낳는다. 짝이 없어도 알을 낳는다. 다만 무정란일 뿐. 알은 알이다. 달걀, 그것도 청란. 우리는 거의 하루 건너 신선한 달걀을 얻는다.    

  

키우기 전에 몰랐다. 달걀 하나 낳을 때 이렇게 아파하는지. 알을 낳기 전 두 시간 전부터 이 아이는 배앓이를 한다. 두 시간 시끄럽다.  어쩜 이 아이만 그렇게 소리를 지르는지 모르겠다. 이렇게 첫 달걀은 제대로 맛을 못 느끼며 먹었다. 어떻게 나온 줄 알기에. 지금은 그래도 맛있게 먹으려고 한다. 다행히 전보다 배앓이를 적게 하는 것 같아 민원 걱정은 안 해도 될 것 같다. 수탉은 새벽부터 우렁차게 큰 소리를 내지만 암탉은 알 날 때만 조금보다 조금 더한 닭소리를 낸다. 수탉의 소리와는 다르다. 그리고 몇 번의 힘을 주며 알을 낳고 난 후 언제 그랬냐 싶을 정도로 조용히 돌아다닌다. 이제 소리를 들으면 배고픈지, 알을 낳으려고 하는지, 서러운지 어느 정도 알 수 있게 되었다.      


닭(보름)은 제법 기억력이 좋다. 한 달 전부터 딸은 일부러 일주일에 서너 번 산책을 간다.  어느 날 산책을 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안고 있던 닭을 내려놓았다. 그런데 희한하게 알아서 집으로 가는 방향으로 가는 것이었다. 그대로 지켜보며 따라갔다. 복슬복슬한 엉덩이를 흔들며 아파트 몇 동을 걸쳐 가면서 방향도 틀고 아파트 엘리베이터 앞에까지 갔다. 신기했다. 닭머리가 나쁘지 않다는 게 증명되었다. 그 이후도 계속해서 집으로 가는 길은 혼자서 아파트 엘리베이터까지 간다. 계단도 겅중겅중 가볍게 뛰면서.  집으로 돌아온  귀염둥이 검은 닭 보름이는 소파에 누워 자기가 가장 좋아하는 천 위에서 몸을 비비며 잠을 잔다. 하나 더 보름이가 좋아하는 것은 목욕이다. 목욕 후의  잠, 꿀맛인듯 행복하게 잔다.


 집으로




치맥. 치킨과 맥주, 떼어놓을 수 없을만큼 인정하는 조합. 특히 국가의 스포츠가 중계될 때 국민의 함성과 함께 불티나게  사라져 가는 음식. 치킨은 국민의 음식이 되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닭은 오래전부터 인간과 같이 살아왔다. 지구의 다른 가축을 합한 것보다 그 수가 더 많다고 한다. 그만큼 많이 사육되고 있고 식용으로 먹고 있다.  물론 나도 먹는다. 다만 그리 좋아하지는 않는다는 것뿐. 그런데 이렇게 살아있는 동물을 키우다 보면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닭대가리라고, 불명예적인 말을 듣는 닭이 그리 머리가 나쁘지 않으며 감정도 가진다는 것이다. 같이 사는 사람이 자신의 감정을 못 읽어줘 그것에 대해 얘기하면 서럽게 표현한다는 것을.  


어느 한 부분의 감정의 교류 그리고 눈빛. 닭뿐만 아니라 소, 돼지 기타 여러 동물.

고기를 먹으면서. 동물 - 가축 - 식용 - 물건으로 가볍게 취급된다. 어쩜 당연시되는 순환적 사슬구조에서 우리는, 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물복지에 대해 한번쯤 생각해봐 할 것 같다. 다른 시선으로 다른 태도로 생각하다 보면 좀 더 행복한 동물복지가 이뤄지지 않을까.  물질세계는 모두 구체적이고 개별적인 존재이다. 있음의 존재이다. 그 있음은 살아있는 존재가 되기도 한다.  


                                                

                                       문신, << 닭장>>, 1950년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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