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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버들 Aug 08. 2022

책꽂이 그 사이에


빨강 책 표지가 찢어져 있다. 

겉표지와 그리고 몇 겹의 하얀 종이. 언제 사라졌는지 알 수 없다. 찢어진 몇 겹의 종이는 오랫동안 창문을 열고 있었다는 듯. 그 틈으로 검은 글씨들이 흘러나온다.  도드라져 책갈피 그 끝을 둥그렇게 말고 있다. 자주 봤던 책이다. 또한 잊힌 책이기도 하다. 책갈피 속 비밀장소로 사용했던 빨강 책.     


맨살이 드러난 채 활자들이 나를 보고 있다. 찢어짐 그 사이에서.

그 시간을 측정하려 하지만 내 손안에 쥐어진 것은 없다. 장맛비처럼 거침없이 쏟아졌던 시간과 열정이 간혹 검은 활자로 이렇게 남겨진 것들이 있다. 하지만 글을 읽다 보면 낯설다. 이제 나의 시간이 나의 기억이 아닌 다른 이의 글처럼 느껴진다. 그때의 감정이 낯설다.      


고개를 좀 더 경사지게 돌리지만 보이는 것은 

1, 2의 숫자. 책과 책의 겹 사이로 암벽을 탄다. 손가락에 힘을 주며 암벽을 타지만 쳐다보면 항상 그 자리이다. 그러다 가끔 깎아진 어두운 벼랑을 만난다. 그 지점에서 머뭇거리면서 벗어나지 못한다. 그러다 벼랑 위를 왜 올라가야 하는지 방향을 잃어버릴 때가 있다. 목표와 목적을 까먹은 채.  돌돌 말려 하얗게 앉아 있다.      


여전히 붉은 표지는 어디로 간지 모르고 검은 활자가 쏟아진다. 1, 2 숫자와 함께, 내 손이 이동하기를 바라며 마음이 스멀스멀 올라오는 시간. 장맛비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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