삐딱하게, 부수어라

by 장버들


자로 선을 긋는다. 선이 모여 각을 이룬다. 각은 ‘서로’라는 합의하에 나선을 만들고 끝과 끝을 연결하며 구를 만든다. 그리고 벗어난 선은 지우개로 지운다. 구는 작은 조직을 단체를 공동체를 만들며 새까맣게 공간을 채운다. 틀밖에 공간은 넓다. 틀 밖으로 어디든 밟고 지나갈 수 있다. 하지만 선, 그 경계를 건너는 순간 밖에 있는 자는 힘들다. '벽'이 사라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경계 밖에 있는 자 , ‘자유’의 진동 폭은 크다. 스스로 결정할 수 있다. 하지만 그 또한 ‘나’라는 존재가 ‘나’를 인식하지 못한다면 구 안의 자들과 다르지 않다.




구 안에서 서성이며 밖을 보는 두 사람이 있다. "이건 나의 삶이 아니야."


어느 날 문뜩 자신을 자세히 들여다보니 한 가장이 되어 있는 아니 모든 이들이 그 사람의 어깨에 기댄 채 팔다리를 묶고 있었다. 삶이란 그런 거야 하며 지나왔다. 가족, 조직, 사회에서 각자 그 규칙으로 어쩜 예의적으로 서로 자신을 숨기고 살아간다. 교육을 통해 또는 이데올로기를 통해 남자는 이렇게 살아야 해. 여자는 이래야 해. 선 밖으로 나가는 건 자유다. 하지만 선 밖으로 나가는 순간 이단자로 몰릴 수 있다. 그러므로 그것을 감수할 수 있거나 감당할 힘이 있는 자는 언제든 나가도 된다. 한 사람은 그곳에서 나오려 시멘트 벽을 쇠망치와 정을 쥐고 쪼개며 나오려 했다. 하지만 이미 자신 또한 벽의 일부분이 되어버렸고 자신의 부분이 너무 컸기에 그 자리를 다른 것으로 대체할 수 없었다. 부수기는 너무 힘들었다. 부수기를 포기하고 벽의 일부분으로 들어갔다. 온전히 자신만의 '구'로 만들 수 없다는 거에. 하지만 그 또한 자신만의 '구'라고 생각하는 것을 만들면 되지 않을까 하며. 안에서의 삶은 ‘벽’이 있기에 삶이 힘들지만 아늑함을 순간 안겨줄 수 있으며 기댈 수 있다. 또한 날아오는 총알도 막을 수 있다. 혹여나 총알에 맞아도 '같이'한다는 거에 위료를 받을 수 있을 테니까.


또 한 사람은 해머를 들고 고민한다. 구 밖에서 사는 삶은 낭만적일 수 있다. 하지만 그 삶을 살아보지 않고 말한다면 아예 입을 다물어야 한다. 혼자 일어서야 한다. 황야를 뛰어본 적 없다. 걸어본 적도 없다. 그렇기에 ‘황야’가 얼마큼 거칠고 매서운지 모른다. 황야에서 자신의 황무지를 일구어 나가야 한다. 또한 경계 밖에서 자신의 뿌리를 내릴 토양을 찾아야 한다. 내가 살아갈, 서 있을 수 있는, 양분을 받을 수 있는 땅을.




경계의 안과 밖 그리고 존재성

해머를 들고 벽을 부수어라! 선을 지우고 삐딱하게 밖으로 나와 검은 발자국을 남기며 작은 지구를 도는. 붉은 흙을, 검은흙을 찾아야 하는 이제 또 다른 삶을 향해가는 존재에게 응원을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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