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로 선을 긋는다. 선이 모여 각을 이룬다. 각은 ‘서로’라는 합의하에 나선을 만들고 끝과 끝을 연결하며 구를 만든다. 그리고 벗어난 선은 지우개로 지운다. 구는 작은 조직을 단체를 공동체를 만들며 새까맣게 공간을 채운다. 틀밖에 공간은 넓다. 틀 밖으로 어디든 밟고 지나갈 수 있다. 하지만 선, 그 경계를 건너는 순간 밖에 있는 자는 힘들다. '벽'이 사라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경계 밖에 있는 자 , ‘자유’의 진동 폭은 크다. 스스로 결정할 수 있다. 하지만 그 또한 ‘나’라는 존재가 ‘나’를 인식하지 못한다면 구 안의 자들과 다르지 않다.
구 안에서 서성이며 밖을 보는 두 사람이 있다. "이건 나의 삶이 아니야."
어느 날 문뜩 자신을 자세히 들여다보니 한 가장이 되어 있는 아니 모든 이들이 그 사람의 어깨에 기댄 채 팔다리를 묶고 있었다. 삶이란 그런 거야 하며 지나왔다. 가족, 조직, 사회에서 각자 그 규칙으로 어쩜 예의적으로 서로 자신을 숨기고 살아간다. 교육을 통해 또는 이데올로기를 통해 남자는 이렇게 살아야 해. 여자는 이래야 해. 선 밖으로 나가는 건 자유다. 하지만 선 밖으로 나가는 순간 이단자로 몰릴 수 있다. 그러므로 그것을 감수할 수 있거나 감당할 힘이 있는 자는 언제든 나가도 된다. 한 사람은 그곳에서 나오려 시멘트 벽을 쇠망치와 정을 쥐고 쪼개며 나오려 했다. 하지만 이미 자신 또한 벽의 일부분이 되어버렸고 자신의 부분이 너무 컸기에 그 자리를 다른 것으로 대체할 수 없었다. 부수기는 너무 힘들었다. 부수기를 포기하고 벽의 일부분으로 들어갔다. 온전히 자신만의 '구'로 만들 수 없다는 거에. 하지만 그 또한 자신만의 '구'라고 생각하는 것을 만들면 되지 않을까 하며. 안에서의 삶은 ‘벽’이 있기에 삶이 힘들지만 아늑함을 순간 안겨줄 수 있으며 기댈 수 있다. 또한 날아오는 총알도 막을 수 있다. 혹여나 총알에 맞아도 '같이'한다는 거에 위료를 받을 수 있을 테니까.
또 한 사람은 해머를 들고 고민한다. 구 밖에서 사는 삶은 낭만적일 수 있다. 하지만 그 삶을 살아보지 않고 말한다면 아예 입을 다물어야 한다. 혼자 일어서야 한다. 황야를 뛰어본 적 없다. 걸어본 적도 없다. 그렇기에 ‘황야’가 얼마큼 거칠고 매서운지 모른다. 황야에서 자신의 황무지를 일구어 나가야 한다. 또한 경계 밖에서 자신의 뿌리를 내릴 토양을 찾아야 한다. 내가 살아갈, 서 있을 수 있는, 양분을 받을 수 있는 땅을.
경계의 안과 밖 그리고 존재성
해머를 들고 벽을 부수어라! 선을 지우고 삐딱하게 밖으로 나와 검은 발자국을 남기며 작은 지구를 도는. 붉은 흙을, 검은흙을 찾아야 하는 이제 또 다른 삶을 향해가는 존재에게 응원을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