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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제생맥주 Nov 25. 2021

의료인이 병원을 운영해야 하는 이유


항소심 두 번째 변론기일


오늘이 마지막이길 바라는 마음으로 출석을 했다. 상대방이 이번 기일까지 베트남 법인의 재무제표를 제출한다고 하였지만 제출하지는 않았다.


'원고, 재무제표를 내기 어렵나요? 1심 때도 안 낸 것 같은데..'


'판사님, 저.. 재무제표를.. 꼭 내야 할까요? '


'흑자가 났는지 적자가 났는지 알 수 있으려면 증거를 내셔야 하지 않을까요?'


'다른 나라 재무제표여서..'


'번역해서 볼 수 있으니 제출해주세요.'


어쩔 수 없이 재무제표 제출을 위해서 재판은 속행이 되었다. 


재판과는 별개로 나와 이변호사는 의료법 위반 고소를 준비하기 시작했고, 임 씨는 오 씨에게 재판 외 미팅을 한 번 더 요청했다. 자꾸 미팅을 하는 것이 정보를 캐려는 것 같아 불안했지만, 모든 것이 협상으로 가는 길이기를 믿고 다만 오 씨에게 실언하지 말 것만 주의했다.


미팅에서 임 씨는 오 씨의 지분 매입을 위해 원하는 금액을 물어봤고, 오 씨는 10억 가량을 제시했다. 대회 말미쯤에 임 씨는 의료법 위반 고소 건이 어느 정도 진행되었는지에 대해 큰 관심을 보였다고 했다. 오 씨는 나의 조언대로 이번에는 분명한 정보를 주지 않았다.


그리고 오 씨는 지분 매입에 대해서 상대방에게 일주일 뒤까지 협상 안을 마련해서 달라고 했다. 


'조사받기 싫으면 협상을 하면 될 걸, 협상도 지지부진한데 고소장 제출했는지만 물어보는지 모르겠어요'


'임 씨 퇴사한다더니, 그것도 아닌가 보네요?'


'다 헛소리였나 봐요'


오 씨는 임 씨의 연락을 일주일 동안 기다렸고, 임 씨는 연락이 없었다. 결국 고소장을 제출했다.






우리나라에서 의료인이 아닌 사람은 병원을 운영할 수 없다.


의료법 제33조

②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자가 아니면 의료기관을 개설할 수 없다. 이 경우 의사는 종합병원ㆍ병원ㆍ요양병원ㆍ정신병원 또는 의원을, 치과의사는 치과병원 또는 치과의원을, 한의사는 한방병원ㆍ요양병원 또는 한의원을, 조산사는 조산원만을 개설할 수 있다.  <개정 2009. 1. 30., 2020. 3. 4.>

1. 의사, 치과의사, 한의사 또는 조산사

2. 국가나 지방자치단체

3. 의료업을 목적으로 설립된 법인(이하 “의료법인”이라 한다)

4. 「민법」이나 특별법에 따라 설립된 비영리법인

5. 「공공기관의 운영에 관한 법률」에 따른 준정부기관, 「지방의료원의 설립 및 운영에 관한 법률」

에 따른 지방의료원, 「한국보훈복지의료공단법」에 따른 한국보훈복지의료공단


제87조(벌칙) 제33조 제2항을 위반하여 의료기관을 개설하거나 운영하는 자는 10년 이하의 징역이나 1억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우리나라에서 의사라는 직업은 돈을 많이 버는 전문직이라는 인식이 강하다. 이는 다른 나라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질병이 창궐하는 시대에 의료인은 수익성도 수익성이지만, 자신을 어느 정도 희생해가며 공익에 집중할 것을 나라로부터 요구받는다. 그래서 그들은 코로나 치료 병동을 제공하고, 백신 주사를 놓는 업무에 동원되기도 한다. 그래서 우리는 의료인의 노고에 감사하고 그들이 받는 노동의 대가가 어찌 보면 적다고도 생각한다. 


나라가 어려울수록 공익에 신경 쓰는 의료인의 존재는 너무나도 소중하다. 이렇듯 의료인은 공익성이 강한 직업인데, 만약 의료인이 아닌 자가 병원을 운영하게 되면 수익성에만 집중할 수 있고, 그러다 보면 의료인의 처우가 악화되어 실질적으로 의료질이 떨어질 수 있는 문제가 있다. 그래서 의료법은 의료인이 아닌 자의 병원 운영을 금지하고 있는 것이다.


오 씨는 의료인이 아님에도 의료기관을 개설하여 운영하였고, 현재는 한국의 병원을 베트남 투자법인과 함께 운영하고 있다. 그리고 의료법 제33조 제2항을 위반하면 상당히 높은 수준의 처벌을 받게 된다.


의료법 위반 고소를 위해 오 씨는 실질적으로 A 투자법인이 모든 결재단계에 개입한 정황 등의 자료를 모아 왔다. 이제 남은 건 명의를 대여해준 의사 정 씨의 자백이었다.


'정 씨가 자백을 해주실까요?, 처벌이 크게 나올 수도 있는데..'


오 씨도 정 씨가 자백을 하지 않을 것을 두려워하였다. 오 씨가 병원에 나온 적은 거의 없기 때문에 증거는 다양하게 있었지만, 스스로 자백을 해준다면 더할 나위가 없었다. 


오 씨는 정 씨를 만났고, 정 씨는 처음에는 강하게 거부를 하였는데, 오 씨가 여러 날 동안 간곡히 설득을 한 끝에 자백을 승낙했다. 정 씨의 마음이 바뀌기 전에 경찰에서 참고인 진술을 받는 것이 필요했다. 


나는 수사관에게 전화해서 참고인 조사 날짜를 잡아놓았다. 수사관은 조사가 많았는지 3주 뒤로 조사 일정을 잡아놓았다. 


그 사이 상대방은 베트남 법인의 재무제표를 제출했고, 우리는 이를 번역해서 회계법인에 신빙성 검토를 의뢰했다.


참고인 조사 이틀 전


밤늦게 전화가 왔다.


'변호사님. 정 씨가 돌아가셨다는데요. 방금 사모님께 연락이 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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