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슬픔을 품은 우울
그리고 뭉크의 가장 유명한 그림, 절규.
뭉크의 작품 중 가장 표현력이 강한 작품으로 잘 알려져있다.
"두 친구와 함께 산책을 나갔다. 햇살이 쏟아져내렸다.
그때 갑자기 하늘이 핏빛처럼 붉어졌고 나는 한 줄기 우울을 느꼈다.
친구들은 저 앞으로 걸어가고 있었고 나만이 공포에 떨며 홀로 서 있었다.
마치 강력하고 무한한 절규가 대자연을 가로질러가는 것 같았다. " -뭉크
누구도 쓰지않던 사선 구도, 색의 배합, 인물의 표정, 간략화된 화법,
이 모든 것이 공포와 절규에 물든 이 그림을
더 강력하게 보이게 만든다.
뭉크는 이처럼 보는 이들의 감정을 자극하여 자신의 인생관을 회화로 표현한 작가이다.
지금의 현대 예술에서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개인성, 의외성, 독창성이
놀랍게도 무려 백 년이나 시대를 거스른, 뭉크의 그림에서 숨 쉬고 있다.
흔히 미술관을 '화이트 큐브' 라고 하는데 그것은 미술작품을 타성의 개입없이
제대로 즐길 수 있도록 미술관의 벽을 흰색으로 칠하는 경우에서 비롯되었다.
그래서 대부분의 미술관 벽은 흰 색이지만 이 곳엔 독특하게도 빛을 최소화하고 검은색으로 벽을 만든 '블랙 큐브' 관이 존재했다.
그림에만 최소한의 빛을 쏘아 더 집중력 있게 관람할 수 있도록 만든 효과를 노린것 처럼 보였는데 밤과 어둠을 좋아하는 나로서는 신선한 충격이었다.
고흐의 그림을 비롯한 인상주의 화가들의 그림이 이 블랙큐브관에 전시되고있었는데
어둠과 잘 어울리는 그림들이라 인상주의 그림들을 더 인상깊게 감상할 수 있다.
밑으로 내려다 볼 수 있는 선반에도 그림에만 빛이 들어오게끔 설치가 되어있었는데
토끼 스케치인것 보니 르네상스 화가 '알브레히트 뒤러'의 그림 같았다.
정확하지 않아서 구글검색을 해봤는데도 나오지 않았지만
검은 배경에 개걸스럽게 웃고있는 토끼를 그린 선들이 기묘한 분위기를 자아내어
블랙큐브가 선사하는 장점이 충분하다는 점은 확실했다.
뼛속까지 공돌이인 그가 찍어둔 '닐스 구스타브 벤첼'의 명화.
이 그림에서 자신의 모습을 보았다나 뭐라나.
공구에 둘러싸여 무언가에 매진하고 있는 그림 속 남자의 모습에서
현재 초전도체 분야에서 연구원으로 일하고 있는 그의 모습을 엿볼 수 있긴 했지만
피식, 하고 웃음이 나오기도 했다.
그가 말한 부분에서 프랑스 구조주의 철학자이자 비평가인 롤랑 바르트가 정립한
현대 미술에서 중요시하는 개인성으로 읽는 해석, '푼크툼'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푼크툼이란 '찌름'을 뜻하는 라틴어로서 같은 작품을 보더라도
일반적으로 해석하는 의미나 작가가 의도한 바를 그대로 느끼는 것이 아니라
관객이 자신의 개인적인 경험에 비추어 지극히 개인적으로 작품을 받아들이는 것을 말한다.
자신의 경험에서 오는 강한 인상과 감정.
아마도 오늘 그는 이 그림을 통해 그림이 아니라 자신을 들여다보는 특별한 경험을 한것이리라.
노르웨이의 9월, 가을 들판과 전통의상 뷰나드를 입고있는 여인들을 담은 그림.
이 그림을 통해서 과거 노르웨이 풍경을 엿볼수 있다.
여행해 본 바, 이때의 노르웨이와 지금의 노르웨이는 크게 달라진 것이 없는 것 같다.
자연과 여유, 목가적 성향을 중요시하는 그들에게서
현재 무분별한 개발로인해 미세먼지같은 여러 문제점에 시달리고있는 우리나라를 비춰본다.
누구의 그림인지 알 수는 없지만 과거 노르웨이 풍경을 담은 그림이다.
실제로 보면 실제 노르웨이 풍경만큼이나 정말 어마어마하게 아름답다.
빠질 수 없는 인증 샷.
미술관을 오르내리는 계단이나 전시장 밖에도 이런 대형 그림들이 전시되어있다.
노르웨이 피오르드를 항해하는 스칸디나비아 뱃사람들의 역동적인 모습이 그림에 담겨있다.
초연한 자연을 담아 우리나라 문화인 강강수월래 또는 둥글게 둥글게를 하고있는듯한
노르웨이인들의 모습을 담은 그림 앞에서 또 인증샷 찰칵.
공부를 하러 온 미술 전공으로 보이는 어떤 학생들 외엔
평일이라 그런지 관람객이 거의 없어 한산한 분위기에서 편히 관람할 수 있어 좋았다.
오슬로 시내로 가면 뭉크의 선생님이자 '아픈 소녀'를 그렸던 크리스티안 크로그의 전신 동상을 만나볼 수 있다. 오른손엔 붓을 들고 왼손엔 스케치북을 들고 있는 생각보다 풍채가 좋고 배가 불룩 튀어나온 그의 모습에서 화가의 모습보다는 왠지 먹는 것과 술을 좋아하는 동네 아저씨같은 친근한 면모를 느낄 수 있었다.
또 한 번, 한국적인, 지극히 한국적인 인증 사진.
기억을 더듬어보면 80년대, 우리가 어렸을 적 유행했던 사진첩.
그곳에 보면 인증사진이 대부분을 이룬다.
한때 눈에 화려한 개념사진을 좇으면서 인증사진을 폄하하기도 한 나였었지만
나이를 먹고 담백한 것을 점점 선호하게 된 이후부터
정직하게 찍힌 사진이, 80년대 사진첩에나 꽂혀있을법한 사진들이 좋아지게 되었다.
이런 인증사진이야말로
'내가 여기에 있다' 라는 것을 담백하고 또 정직하게 알려주는 초상과 풍경의 조합이니까.
'지금 우리는 노르웨이, 아니 스칸디나비아 반도 예술의 정점에 서있다.'
라는 것을 이 사진으로 증명해본다.
과거 그렸던 그림에 비해서 무언가 빈 듯하고 화려하지 않으면서도
어설픈듯한 내가 요즘 그리고 있는 그림들.
여행하면서 시간이 날때마다 아끼는 동생이 손 수 만든 수첩에다
또 계속 그려왔던 유화 캔버스에다 인상적이었던 풍경을 조금씩 조금씩 그려나가고 있다.
난 이 그림들이 좋다.
화려하고 아름답고 눈에 보기좋은 그런 그림이 아닐지라도 나만이 표현할 수 있는, 나의 세계가 담겨있는 이 그림들이. 언젠가 음울함을 그려내어 비난받아도 계속해서 자신의 색을 정립해나간 뭉크의 그것처럼 남들이 뭐라고해도 나 또한 계속해서 내 세계를 구축해 나갈 수 있기를.
그 세계가 낡고 후미지고 남들이 가지않는 외로운 길 위에 있을지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