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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요 Sep 09. 2015

북위 60˚

#1 노르웨이 베르겐 





작은 집, 모아놓은 돈, 좁은 욕조, 책과 메모장, 냉장고. 

그리고 곁에서 모자람을 채워줄 연인.

사는 동안 필요한 것은 이미 곁에 충족되어 있는데 이곳에서의 나는 매번 부족의 불평 안에 갇혀있었다. 

크게는 자신의 두 발로 세계를 누비는 용감한 모험가를 동경하거나 

작게는 먼 곳으로 유학 간 친구라도 부러워하며 

미약하나마 대항해시대 따위의 게임으로 유랑에 고픈 욕망을 해소하곤 했다. 


어렸을 적 가족의 죽음을 몇 번 겪은 이후로 나는 무척 겁 많은 인격으로 자라났고 

여행해보고 싶었던 곳은 단지 상상으로만 해결하곤 했다. 

용감한 경험은 죽음으로 이어질 수 있으며, 그것은 단순한 목숨의 상실이 아니라 

곁에 있는 사람들에게 슬픔을 안기게 되는 노파심에 기인해서였다. 

이 점은 내 두 발목을 묶고 긴 시간 동안 위도 38도 안에서 안전한 삶에 안주하도록 만들었다. 


이제 서른둘, 

나이를 양껏 먹은 만큼 속도 겉도 단단해진 탓인지 비좁아진 두 발목의 끈이 풀렸다. 

위도 38.

서른둘이 되도록 그 위로는 벗어나 본 적 없다. 

조금 더 위로는 60년 전에 갈려진 땅이 있고 더 위에는 춥고 메마른 땅의 연속이라는 이야기만

어떤 다큐멘터리에서 보았던 것 같다. 

춥고 메마른 땅. 

아직 나는 그 땅으로는 갈 자신이 없다. 


겁 많은 인격에 용기를 부여하기 위해 선택한 곳은 

춥지만 비옥하고 안전한 땅.

북극권의 나라, 북유럽이었다. 

[노르웨이 항구도시, 베르겐 근처에 위치한 섬]



 베르겐은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공항에서 출발하는 경유편을 타고 갈수있다. 

* INFO : 한국 인천->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 KLM항공 편도 10시간, 가격 한화 80만원 정도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공항-> 베르겐,  편도 2시간 30분,  20유로

               유럽경유로 베르겐 도착시 입국심사를 받지않아도 된다. 


 

비행기에서 바라본 노르웨이의  첫인상은 한국 남해의 다도해와 무척 닮아있었다. 

피오르드에서 갈라져나온 많은 섬들, 그 안에 띄엄띄엄 지어져 있는 집. 그리고 그 사이, 곧게 뻗은 침엽수림들. 

낯선 이국땅의 채도 낮은 풍경이 스쳐 지나갈 무렵 믿을 수 없을 만큼 작은, 하지만 조용하고 쾌적한 공항에 드디어 발을 딛었다. 


나는 경제 상위권, 선진국, 문명인 이란 말을 좋아하지 않는다. 

자본에도 관료제가 적용된 듯, 이런 말에서 풍기는 기운은 과시에 지나지 않는 물질만능주의에서 나온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단어를 선호하는 사람들이 이 나라의 경제를 모르고 왔다면 '아마도 큰 공항을 지을 수 있는 경제력이 없는  나라'라고 

생각해버렸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1인 GDP 세계 2~3위의 경제대국인 노르웨이에서 마음만 먹는다면 충분히 크고 화려한 공항을 지을 수 있었을 텐데 

이 곳은, 기차역인 서울역보다도 한참 더 작았다. 


불필요하게 크고 화려한 것을 배제하고 필요한 만큼만 추구할 것. 

이 나라의  첫인상 이었다. 



[베르겐 공항에 설치되어있는 AERO KLUBB(노르웨이 에어로 클럽)의 글라이더]



[공항 밖에서 대기하고 있는 베르겐으로 가는 버스편]* visa카드로 바로 결제 가능, 가격 100NOK

  

[버스 창밖으로 보이는 베르겐 풍경]   
[베르겐에 위치한 호수]


베르겐 SENTRUM 정류장에서 호수와 광장을 끼고 걸어가면 피오르드와 노르웨이 해협을 끼고 있는 항구로 갈 수 있다. 

노르웨이는 남한의 약 4배나 되는 면적을 가지고 있음에도 인구는 500만에 불과하다. 

적은 인구밀도와 여유로운 국민성, 또한 피오르드와 같은 아름다운 풍경, 풍부한 자원, 

복지 위주의 정치로 인해 살기 좋은 나라로 자주 선정되기도 한다. 

하지만 빅맥지수 13,000원이라는 비싼 물가는 여전히 여행자의 부담요소로 자리 잡고 있다. 

하지만 여행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는 현지 생산된 신선한 재료로 만든 요리를 맛보는 것.

무엇보다 바람한점 없이도 추운 이 곳 날씨와 장시간 비행으로 인해 지쳐있었던 나는 

베르겐에 도착해 버스를 타고 빠르게 도시를 가로지른 후, 몸을 녹이고 허기를 달래기 위해 항구 가까이의 한 식당에 자리를 잡았다. 

[베르겐지역 맥주인 한자맥주와 레스토랑 음식들]

  


물가가 비싸기로 유명한 나라라 훨씬 비쌀줄 알았지만

 맥주1잔에 80크로네(한화 1만원), 음식 150크로네(한화 2만원)인 아주 부담스럽지 않은 수준이었다. 

무엇보다 맛과 양이 훌륭했다. 

해산물을 곁들인 리조또는 150 크로네, 로컬 맥주인 '한자'는 80 크로네, 한화로 각각 2만, 1만 원 선이었다. 1인 1회 음식 비용 2~3만 원. 

유럽 경제 침체로 인한 유로 가치 하락이 아니었으면 아마 여행하는 내내 편의점 음식만 먹어야 되었을지도 모른다. 

아니, 불행하게도 이곳은 편의점도 많이 없을뿐더러 그마저도 저녁 일찍 문을 닫는다고 한다. 

다행히도 음식은 이 곳에서 갓 잡아 올린 재료를 사용해 무척 맛있었고 서빙하는 사람도 친절했다.

하지만 현지 물가 수준을 체감하며 춥지만 비옥하다 여겼던 이 땅은 소비자의 편의보다 

생산자의 여유가 중요시되는 땅인 것 같아 예상보다 더 춥게 느껴졌다.   

소비자의 편의를 생산자의 여유보다 중요시하는 한국에서 온 나는 적응하기가 쉽지 않으리란 서늘한 예감 또한 들었다. 

.  

[베르겐 항구의 여유로운 모습]

 













[AUGUSTIN 호텔]  

노르웨이에서 묵은 첫 숙소. 

항구와 조금 떨어진 곳에 위치한다. 

긴 비행에 지친 나를 쉬게할 첫 숙소의 인상, 다행이 과하지않고 아늑했다.  

노르웨이 전통 문양이 새겨진 가구들도 전시되어 있었는데 우리나라 전통 나전칠기 자개 가구와 비슷해서 묘한 흥미를 불러 일으켰다.  

영향을 주고받음. 

비슷한 시기에 만들어진 전통 문화는 아무리 먼 거리라도 서로 주고받은 영향이 있었음을 

이렇게 시각적으로 드러난다.    

이 아늑하고 전통을 가진 숙소에 짐을 풀고 정리를 하며 도시를 돌아볼 채비를 하며 

달뜬 몸과 마음을 진정시킨 후 베르겐을 둘러보러 밖으로 나갔다.   


* INFO : AUGUSTIN 호텔, 1박에 700크로네, 조식포함 한화로 하루 10만원선. 깔끔하고 아늑한 숙소.     

              베르겐 시내와 접근성이 용이한데도 조용한 편이다. 

              아쉽게도 치약과 같은 것은 주변 마켓들이 일찍 문 닫는 편이고 로비도 1회용만 구비해두니 챙겨가는것이 좋다.


   

[브리겐 역사지구로 가는 베르겐 시내, 대부분의 식당과 숙소가 이 곳에 있다]


[베르겐 항구에 위치한 13 ~ 16세기 한자무역의 중심지였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지구 브리겐]

 

[브리겐 내부의 목조 건물과 여유로운 풍경]


[브리겐의 트레이드 마크, 한자동맹의 최대 무역품이자 한때 이 곳을 먹여살린 생선 '대구' 의 목조장식]
[브리겐 안에 살고있는 '노르웨이 숲' 종의 고양이(한국의 길고양이와 같다)]

 

베르겐은 영국의 런던, 벨기에의 브뤼지와 더불어 과거 한자 무역의 중심지였다. 

한자 무역은 중세 북유럽의 상업권을 장악했던 독일 도시들과 외국에 있는 그들의 상업집단이 교역의 이익을 지키기 위해 창설한 조직인데 

후엔 신항로의 발견으로 쇠퇴의 길을 걸었다.  

베르겐의 항구 옆 구석구석엔 과거에 번화를 누렸을법한 그때의 목조건물단지 '브뤼겐'이 길게 늘어서 있어 

흡사 중세로 돌아간 듯한 기분을 느끼게 했다.  

이곳은 1979년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몇 번 화재가 났던 것 외엔 잘 관리되고 있었는데 

낡은 목조건물 사이로 들어오는 볕을 여유롭게 쬐는 여행자들과 주민들의 풍경이 유독 눈에 들어왔다. 


여유. 

내가 나고 자란 땅에서 여유란, 일을 그만두고 백수가 되어 무작정 쉬는 것에 빠져있을 때 느낄 수 있는 불안감을 동반한 휴식.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일하지 않으면 미덕이 아닌 양 직장을 얻었을 땐 충분한 휴가도 없이 일, 집, 일, 집을 반복해야만 했다.  

왜 타지에서 타인의 여유를 보며 그들의 편안함을 전가받는지, 

내가 그토록 원하던 것은 이들처럼 마음도 몸도 햇살 아래 맡기고 하릴없이 볕을 쬐는 여유란 걸. 

문득 여행자의 입장이 되어 익숙함과 멀어져야만 자신을 이해할 수 있다는 누군가의 말, 

여행을 통해 당신은 당신의 이야기를 가장 잘 들어주는 섬세한 타인이 될 수 있을 거란 김경주 시인의 이야기가 떠오른다. 



[플레위엔 산으로 올라가는 모노레일]


브뤼겐 건물 옆 교차로를 지나면 자그마한 역이 있는데 플레위엔 산으로 올라가는 모노레일을 탈수 있는 곳이다. 

역무원에게 간단하게 표를 끊고 올라갈 수 있다.(1인 한화 1만원 선)

모노레일 표면은 투명한 아크릴로 되어있어 베르겐의 아름다운 풍경을 감상할 수 있다. 

현지인들은 이 모노레일로 출퇴근까지 한다고 한다. 


 

[플레위엔 산의 풍경]


여유로운 도시 풍경을 뒤로하고 플뢰위엔 산으로 가는 모노레일에 몸을 실었다. 

해발 320m의 낮은 산이지만 이 곳에선 베르겐의 전경이 한 눈에 들어왔다. 

피오르드 사이를 오가는 배들과 보트를 타는 사람들, 

영상 1~2도의 날씨에도 볕을 쬐며 카페나 언덕에 앉아 담소를 나누는 연인들, 

그리고 하나씩 점등되는 노을색의 조명들...


아스라이 물드는 노을을 보며 시차로 인해 정신을 잃어갈 때쯤 

대서양 어딘가에서 시작됐을듯한 차가운 바람이 얼굴에 닿는걸 느낀다.  

낯설지만 익숙함이 배어있는 감촉. 


그 감촉에 안심한 나는 발목에 주저흔처럼 남아있던 끈 자국을 말끔히 없애고 

소박하고 조용한, 그리고 이익보단 개인의 여유를 중요시하는 이 도시에 

며칠 동안 안식할 닻을 놓는다.    

[플뢰위엔 산 전망대에서 바라본 베르겐 항구 전경과 일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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