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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요 Sep 13. 2015

북위 60˚

#2 노르웨이 숲





내가 태어나고 사춘기를 보낸 땅, 포항의 시골 '공당'이란 곳.

산이 둘러싸인 분지 지형으로 고려 이후 집성촌이 형성되고 난 후, 왜군의 침입도, 625 전쟁 여파도 겪지 않아 오래된 유적과 아름답고 비옥한 자연이 잘 보존된 곳이다. 봄에는 진달래가 무성한 숲과 힘들이지않고 오를 수 있는 산, 여름엔 반딧불이가 날던, 가을엔 마당에 노란 볍씨가 무성하고 겨울 밤, 자다 일어나 방문을 열면 밤새 내린 눈이 소복이 쌓여있던 곳. 지금 생각해보면 자연의 특혜를 받은 그곳에서 자연의 소중함이 무엇인지도 모른 채 당연하다 여기며 유년시절을 보냈다.

그땐 숲이 없는 마을은 생각할 수 없었고 정원 없는 집은 상상할 수 없었지만 나이를 먹고 도시로 나와 그것의 부재가 흔하다는 것을, 그래서 소중하다는 것을 뒤늦게 알게 되었다.


현재 그곳의 산림은 지난 정권 때 산업단지 조성이 확정되어 개발로 스러져 가고 있다.




노르웨이에 도착하면 먼저 확인하고 싶은 것은 숲이었다.

비단 내가 자란 곳뿐만이 아니더라도 현재 한국 곳곳에 일어나고 있는 자연과 터전 위에 시멘트를 세워 올리는 발전의 방법이 과연 이로운 것인지, 문명을 발전시키는 게임을 하면서 숲과 산의 필드를 없앨 때마다 께름칙하였던 뜻모를 이유와 노르웨이의 숲이 얼마나 울창하길래 하루키의 풍성하게 야한 소설 제목이 '노르웨이의 숲'인지도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노르웨이 숲 속의 침엽수림들



노르웨이는 국토 대부분이 산지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남부의 평지 이외에는 평야가 거의 없다. 고생대부터 중생대까지 조성된 스칸디나비아 산지의 툰드라를 제외한 삼림 면적은 전 국토의 27%다. 중남부엔 침엽수림이, 북부에는 한대낙엽수림이 분포한다. 이 곳의 울창한 삼림이 지금까지 잘 보존되어 올 수 있었던 이유는 자연을 아끼고 그 안에서 살아가길 바라는 국민성도 있으나 노르웨이 연안에서 굉장한 양의 석유 매립지가 발견되고 나서부터 굳이 산림을 개발하여 발전할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처럼 산림개발의 필요 유무는 국토에 매립된 자원의 풍부함과 그것을 이용한 발전에 따라 좌우되기도 하며 산림을 소유한 나라 경제 수준과 국민 의식 수준에도 귀결된다.


내가 태어나고 자란 나라는 좁은 국토 안의 높은 인구밀도, 적은 자원 매장량, 분단국가의 불안함, 반도 국가의 보안 취약성 등 산림을 개발하지 않으면 발전하기 취약한 조건하에 놓여있다.

우리나라의 사정과는 반대인 이 곳의 보존 유리한 특혜.

자연의 개발은 문명 발전의 필수요소라던 누군가의  말.

아이러니한 답들이 부딪힌 채 나는 더 깊은 숲으로 걸어들어갔다. 



플뢰위엔 산 속의 숲


피부로 확인한 노르웨이의 산림은 벌목된 부분도 순리의 일부처럼 여겨질 정도로 울창했다. 아니 울창하다 못해 거대했다.

걸어도 걸어도 끊임없이 세워져 있는 나무, 이끼, 작은 계곡들. 이따금 보이는 눈 덮인 산들.  

이들이 내뿜는 산소를 맡고 나무 사이로 비스듬히 스며드는 볕을 보며 유년의 어느 때처럼 다시 자연의 당연함을 누렸다.


 

플뢰위엔 산과 울리켄 산의 전경



전망이 트인 곳엔 앉아서 볼 수 있도록 마련해놓은 벤치가 있었다.

벤치 위에 앉아 쉬고있으니 구차한 질문들은 옅어지고 지금 이 순간을 놓치지 말고 스스로 살피라던 법정스님 책의 한 문장은 또렷해진다.



숲의 기능은

아름다움 외에도 무척 많지만 사실 이것만으로도 충분한 필요가치가 있다.

아름다움의 뜻은 단순히 보는 것에 그치는 단어가 아니라

균형과 조화, 그리고 그것에서 비롯되는 이로움이기 때문이다.



이 곳의 숲은

아름답다.



다리가 아플정도로 걷고나서야 비로소 얻은 단순한 답이다.

 


깊은 숲 내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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