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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요 Sep 23. 2015

북위 61˚

# 3  송네 피오르드


[베르겐 역 풍경]


이른 아침, 베르겐의 기차역은 사람들로 붐빈다  

붐빈다고 해도 고작 한국의 여느 시골 역 정도의 인파다. 

작은 아이에서부터 할머니까지 스키와 보드 장비를 한 아름 바닥에 쌓아놓았다. 겨울 레포츠를 즐기러 가는 모양이다.  


이 곳은 그리 질서적인 곳이 아니다. 

아무 곳에나 짐을 놓거나 무단횡단을 하는 이도 많았고 길거리엔 쓰레기도 많이 버려져있었다. 

깨끗한 나라일 것이라는 착각은 내 나라의 무질서함에서 오는 회의에서 비롯된 것인지(사실 요즘의 한국은 꼭  무질서하지만은 않다, 

가령 금연 같은 외려 질서를 주입하려는 정책적 강박이 커지는 추세다), 역시 선입견을 깨는 것은 직접 겪고 알아가는 방법 외에는 없는가 보다.



여독도 가시지 않은 채, 이른 아침에 일어나야했던 피곤함을 해결하기위해 역에서 현지산 초콜렛을 사들곤 미리 끊어놓은 *넛셀투어 티켓을 베르겐역 직원에게 보여준 후 보스(voss)로 가는 기차에 올랐다. 

  

 


                                    [넛셀투어 경로]

 

* I N F O : 넛셀투어 : 베르겐-오슬로 구간에 위치한 송네피오르드의 교통편을 묶어 판매하는 티켓  https://www.norwaynutshell.com 에서 검색, 구매 가능, 1인 한화 40만원 선

여름엔 넛셀로 투어하는 여행객들이 굉장히 많다고 한다. *역순으로 구입 가능   


 

[보스행 기차 밖 풍경]

아름다운 풍경이 기차에서 내릴 때까지 이어진다. 

창에서 눈을 떼기 힘들다. 

여독을 해갈하지 못한 몸이 의자에 붙어 녹아내려도 발갛게 충혈된 눈만은 창에 고정되어있다.


[보스의 풍경] 


넛셀투어의 첫 번째 정착역, 보스에 도착한다. 

이 곳에서는 구드방겐까지 버스로 이동한다. 

버스는 하나뿐, 어떤 버스인지 찾을 필요는 없다.

이 곳에서 길을 잃을 일도 없다. 

일직선으로 뻗은 피오르드 계곡에 길은 하나뿐, 

건물도 많지 않고 설령 길을 잃고 싶다면 산이나 숲으로 들어가야만 한다. 


[보스에서 구드방겐으로 가는 버스에서 본 풍경들]

  

버스를 타고도 아름답고 웅장한 풍경들이 계속되어 지루할 틈이 없다. 

버스기사들이 친절하게 내릴곳을 영어로 설명해주기도 하고(발음 유의) 

정착지가 대부분 방향이 한 곳이라 잘 못 내릴 일이 없어 

여행 초보인 나는 참 다행이다 싶었다.

 여행 베테랑에겐 길을 잃는것이 인도를 찾다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한 콜롬버스처럼 새로운 경로를 발견하는 흥미로 작용될수도 있지만

여행초보에겐 그것만큼 당황스러운 일도 없기 때문이다.  

머릿속으로 그렸던 길을 발로 밟아내며 가는 것, 

 '이 길은 안전하다' 라는 마음가짐이 때론 여행에 더 큰 즐거움을 부여하는 동력이 되기도 하니까.    

다시 얼마즈음을 달려 드디어 송네피오르드로 들어가는 페리를 탈 수 있는 곳, 구드방겐에 도착한다.



[구드방겐  전경]
[구드방겐의 산세]

 

[송네피오르드로 들어가는 입구, 구드방겐 풍경과 페리]

  

송네 피오르드의 깊은 계곡, 구드방겐. 

버스에 내려 넓게 펼쳐진 파노라마에 넋을 잃고 감상하고 있으니 그 사이로 배 한 척이 다가온다. 

플롬으로 가기 위한 페리호다.  

페리를 타기까지는 약 20분 정도의 시간이 있으니 그 시간동안 

협곡이 마을을 끼고 넓게 펼쳐진 아름다운 마을, 구드방겐의 풍광을 즐긴다. 



[구드방겐을 떠나는 페리]

 

드디어 페리는 구드방겐을 떠나 넛셀투어의 클라이막스, 송네피오르드의 협만안으로 들어선다.

배는 생각보다 크나 여행객들은 많지않다. 

노르웨이 여행 성수기인 여름시즌엔 이 배가 무척 혼잡하다고 하니 참고하자. 


[항해 경로, 위성사진으로만 보아도 무척 아름다울 것임을 알 수있다]
[커피와 미스터리 컵라면]

  

페리 안에선 따뜻한 커피와 간식류, 특히 한국인 '이철호'씨 가 만든 컵라면' 미스터 리'를 맛볼수 있다.  

미스터리는 노르웨이 컵라면 분야 점유율 무려 1위의 컵라면이다. 

건더기도 실하고 맛도 깊어 여태껏 먹은 어떤 컵라면보다 무척! 무척 맛있었다. 

무엇보다 내 입맛에 잘 맞지않는 노르웨이 음식들 사이에서 단연코 빛나는 구원투수가 아닐 수 없다. (한화 2천원 정도이니 맛별로 두개 먹을 것을 추천한다!)



[ 페리 안의 모습]


페리 안은 이렇게 투명한 아크릴로 되어있다. 

덕분에 따뜻한 배 안에서도 피오르드의 웅장한 풍광을 즐길수 있어서 좋았지만 

무언가 디스플레이로 영상을 보는 찝찝한 기분이 들어 배 밖으로 나갔다.   

피오르드를 가르는 차갑고 상쾌한 바람, 찰랑이는 물소리, 배의 묵직한 진동,   

익숙하지만 아주 낯선 여행지의 공기를 폐 깊숙이 들이마시며 느릿한 속도로 지나가는 풍경을 보고 있으면 

세포 하나하나 깨어나 풍경과 내가 밀접하게 맞닿아 있는 기분이 든다.  

드디어 이 낯선 곳에 내가 두발 딛고 존재하고 있다는 생각.

몽롱함에 꿈같던 며칠이 현실로 와 닿는다.  


[페리 밖에서의 연인들]
[페리 위에서 본 송네 피오르드 풍경]

 

페리는 마치 쇄빙선처럼 얼음을 깨고 나아간다. 

솨악솨악 부서지는 소리. 

넋을 잃고 바라보는 사람들의 환성. 

피오르드 협곡에서 얼음이 부서지는 소리. 

이가 시릴 정도의 차가운 공기. 

낮게 뜬 태양. 

어렸을 때부터 해왔던 어드벤처 게임이 발전되면 이런 감각일까. 

영화 반지의 제왕에나 나왔을법한 협곡들이 이어지며

비현실적 체감의 중간에서 실체감의 상실은 커진다. 

아무리 현실에 닿아 이제 제대로 여행하는 기분이 든다고해도

이 곳의 풍경은 도무지 현실같지않다.  


[페리 위에서 본 송네 피오르드 풍경들]

 

빙하가 침수하여 생긴 좁고 깊은 만의 지형을 일컫는 피오르드. 

그중 송네 피오르드는 길이만 해도 200km가 넘는 노르웨이에서 가장 긴 협만이다. 

예이랑게르 피오르드, 뤼세 피오르드 등 여러 피오르드 지형이 노르웨이에 형성되어 있지만  

그중에서 송네 피오르드가 가장 크고 깊고 웅장하다고 알려져있다. 

수심의 깊이만 해도 무려 1,300m에 이르는 곳이 있을 정도로 깊다. 



약 수십억 년 전, 빙하기 때 형성된 이 곳. 


협만 곳곳 장엄한 풍경으로 새겨져 있는 침식의 오랜 역사를 

내 두 발을 내리고 도무지 믿기지 않는 표정을 하고선 

두 시간의 항해를 빌어 더듬더듬 확인해 나간다. 



[비슷해보이지만 각기 다른 모습을 보여주는 피오르드 협곡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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