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절인연 (時節因緣)

- 헤어진 연인들을 위해

by Hi Mom

요즘은 연애 상담을 위해 정신과를 찾아오시는 분들도 많습니다.

아무래도 병원이다 보니 단순한 연애상담보다는 이별 후 큰 슬픔이 감당이 안되거나, 배신감이나 분노가 극심할 때, 연애를 하는 도중 경험하는 불안, 감정 기복들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오시는 경우가 많습니다.


사실 연애 관련 상담은 참 어렵습니다. 어렵다기보다 속이 터질 때가 많습니다. 가끔 본분을 잊고 "그런 연애하지 말아요"라고 참견했다가 진료가 끝난 뒤 수십 번 후회하기도 합니다. 연애라는 것이 둘 사이에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그 당사자들을 제외하고는 알 수가 없습니다. 한 사람의 일방적인 말만 듣고 울분을 토해서는 안 될 일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끔은 선을 넘고 앞에 앉아서 울고 있는 사람 편을 들고 맙니다.




저에게도 연애로 울고 웃던 시간들이 있었던 것 같은데, 이제는 로맨스 드라마도 별로 재미가 없고 남들의 연애사에도 시큰둥합니다. 이렇게 시간이 많이 흐르고 나서야 겨우 '그땐 뭘 그리도 불안해하고 힘들어했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흑역사의 절반 이상은 연애와 관련된 것들 같은데 올챙이 시절을 다 잊어버린 개구리가 되었습니다. 그러니 지금 한참 연애의 격렬한 감정에 휩싸여 있는 청춘에게 '다 지나간다' 라든가 ' 꼭 그 사람이 아니어도 괜찮다'라는 둥 그 어떤 말을 하여도 마음에 전-혀 와닿지 않을 것을 알기에 목구멍까지 올라온 말을 다시 집어삼킵니다.


연애만큼 내 맘대로 안 되는 것이 없습니다.

내 마음도 제멋대로이고, 상대의 마음은 더더욱 내 사정 밖의 일입니다.

그래서 ‘연애를 잘하려면 이런 사람을 만나야 한다 ‘ ’ 연애 잘하는 법’ 등 세상에 알려져 있는 많은 비책들은 그저 그렇게 하면 좋겠다일 뿐, 결국 내 마음이나 상대의 마음은 제 갈 길 따라가고 우리의 행동과 선택은 그 마음을 이겨내기가 참 어렵습니다. '좋은' 사람을 골라서 사랑하지 못하고, 정석 같은 연애를 하지 못하고 우당탕 흑역사들을 만들어내고 있는 자신을 탓할 필요가 없습니다.

시절 인연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모든 인연에는 적절한 때가 있다는 말이 이럴 때 참 위로가 됩니다.

이미 마음이 떠나간 누군가에게 매달리며 집착할 필요도 없고, 지금의 나의 선택이 잘못된 것은 아닐까 불안해하며 마음이 향하는 만남을 망설일 필요도 없습니다. 인연을 맺고 있는 동안에 그 관계에 최선을 다하는 것은 우리의 몫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둘의 마음은 서로 어긋날 때가 있고, 왜 하필 이때 만났을까 아쉬워하며 이별을 선택할 수밖에 없을 때도 많습니다.


결국 연애는 좋은 동반자를 찾아가고, 서로의 곁에 잘 머무를 수 있게 함께 애를 쓰는 과정입니다. 연애를 하며 인간 대 인간으로서 애정을 바탕으로 한 신뢰 관계를 유지하는 법, 타협하며 함께 삶을 살아가는 법을 배워갑니다. 그리고 그 수많은 시간을 함께 이어가며 곁에 머물게 된 사람 덕분에 우리의 인생은 제법 살아갈만한 것이 됩니다.


동반자를 찾아가는 길이 아름답기만 한 것은 아닙니다. 만남을 이어갈수록 나도 피폐해져 가고 상대도 힘겨워보이는 관계도 있고, 득이 될 것이 하나 없는 위험한 관계를 맺게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심지어 이런 상황에서도 시간이 한참 지난 후에야 그때 그 관계가 그다지 좋을 것이 없는 것이었구나를 깨닫게 됩니다. 그렇지만 그 시간들도 결국엔 지나갑니다. 아팠던 기억이 밑거름이 되어 나와 더 잘 맞는 사람과 안정되고 건강한 관계를 맺을 수도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인생에서 열정적인 사랑을 경험할 수 있는 시간은 그다지 길지 않습니다. 지금은 고통스럽게만 여겨지는 이 시간이 어쩌면 내 인생에서 가장 찬란하게 빛나는 한 때일 지도 모르니, 좀 더 만끽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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