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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J Jul 17. 2024

미니픽션 '초등 우정'



  재이는 새 일기장을 펼쳤다. 일기를 쓰려다 갑자기 무언가 특별한 것이 적고 싶어졌다.  

   

  ‘각오를 써보자.’     


  마침 새 학기라 멋진 표현을 쓰고 싶어졌다.     


  ‘친구와의 우정을 잘 지키자!’     


  ‘좋았어!’     


  잠시 생각하다 다음 칸에 한 줄 추가했다.     


  ‘특히, 다혜(별표)’     


  3학년이 되면서 재이는 다혜와 한 반이 되었다. 2학년 때도 종종 아이들과 같이 놀기는 했지만, 막상 둘만 같은 반이 되니 좀 더 특별한 느낌이 들었다. 게다가 방과 후 수업도 같이 듣게 되었다.     


 ‘다음으로 뭘 적을까…?’     


  재이는 고민하다 ‘착한 사람이 되자!’라고 썼다.     


  ‘역시 사람은 착해야지.’     


  쓰고 나니 왠지 뿌듯했다. 책에서도 착한 사람은 꼭 복을 받았다. 엄마, 아빠는 재이가 심부름하면 착하다며 머리를 쓰다듬어 주셨다. 그럴 때마다 자신이 참 괜찮은 사람 같다고 느꼈다. 재희는 글씨 주변을 컬러 펜과 스티커로 정성껏 꾸몄다.  다음날, 학교에 가니 다혜가 벌써 와있었다. 재이를 보고 크게 손을 흔들었다.     


  “우리 같이 화장실 가자.”     


  재이가 가방을 자리에 놓자마자 다혜는 기다렸다는 듯 재이의 손을 잡았다.     


  “어, 나 아까 갔다 왔는데”     

  “아이, 같이 가자~”     


  재이가 말했지만, 다혜는 벌써 손을 잡고 복도까지 나왔다.     


  “응, 그래.”

  (우리는 친구니까)     


  점심시간이 되었다. 밥을 다 먹고 재이가 다혜에게 학교 도서관에 같이 가자고 했다. 하지만 다혜는 가고 싶지 않다고 했다.     


  “우리 그냥 보드게임 하자.”     

  “어? 그…. 그래.”

  (그래, 우리는 친구니까.)     


  둘은 점심시간 내내 ‘젠가’, ‘우노’ 그리고 ‘여우와 탐정’ 보드게임을 하며 한참 놀았다. 하교 후 집에 돌아온 재이는 소파에 드러누웠다. 오늘따라 몸이 더 피곤했다. 다혜와 있는 게 싫지는 않지만, 왠지 끌려다니는 것 같았다.   

   

  ‘그래도 올해는 우정을 지키기로 했으니까….’      


  재이는 다짐하듯 마음을 다잡았다. 스스로 ‘착한 사람’이라고 다독였다.      


  ‘언젠가 큰 복으로 돌아올 거야.’      


  저녁이 되자 엄마가 재이에게 마트에서 두부를 사 오라고 심부름시켰다. 귀찮아서 쭈뼛거렸더니 좋아하는 젤리도 하나 사라고 허락해주었다.     


  ‘오예~ 2개 사서 하나는 내일 다혜랑 먹어야지~.’


  마트에서 젤리를 고르고 있을 때였다.     


  “오늘 친구들이랑 재밌게 놀았어?”     

  “응, 재이랑 놀았어.”     


  건너편 선반에서 귀에 익은 목소리가 들렸다.     


  '아, 다혜 목소리다.'     


  재이는 반가워 다혜 쪽으로 가려는데 품에 있던 젤리와 두부가 떨어졌다.     


  “뭐, 하고 놀았어?”     

  “공기놀이도 하고 보드게임도 했지.”     


  이제 와 다가가기 애매해진 재이는 멀뚱히 서 있는 꼴이 되었다.     


  “재밌게 놀았네, 우리 딸. 재이랑 아주 친하구나?”     

  “응, 재이랑 있으면 편해. 조금만 조르면 다 해주거든.”     


  ‘응?’     

  재이는 멈칫했다. 그 사이 다혜와 엄마는 계산대로 멀어졌다.      


  ‘조르면 다 해줘.’     

  ‘조르면 다 해줘.’     

  ‘조르면 다 해줘.’     


  돌아가는 길 내내 그 소리가 머리에 맴돌았다. 저녁으로 엄마가 좋아하는 소시지를 해주었지만, 입에 들어가지 않았다. 속상하거나 눈물이 나는 건 아니었다. 그냥 무언가 내어주고도 나머지조차 빼앗긴 느낌이었다.      

  자기 전, 일기를 적으려고 공책을 펼쳤다. 첫 장에 쓴 ‘우정을 지키자.’라는 글이 눈에 들어왔다. 갑자기 ‘우정’이라는 글자가 낯설었다. 사실 ‘우정’이 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혜와 지내는 시간이 즐거웠는지 다시 돌아보았다. 재이도 다혜처럼 마음이 편했는지도 생각해 보았다. 그러자 갑자기 화가 났다. 재이는 ‘특히, 다혜’라는 글자를 연필로 쭉쭉 그어 지워버렸다.  다음 날 아침, 1교시가 끝나자 다혜가 재이에게 말했다.     


  “화장실 같이 가자!”     

  “...”     


  대답이 없자 다혜가 이번에는 손을 잡으며 재이에게 조르듯 말했다.     


  “같이 가자~.”     

  “싫... 은데.”     


  재이는 용기를 내서 말했다. 목소리는 작고 떨렸지만, 의지를 담았다. 다혜는 잠깐 당황하는 듯싶더니 혼자 화장실에 갔다. 돌아와서도 재이의 눈치를 살피는 모습이었다. 2교시가 시작되기 전, 선생님께서 일기장을 제출하라고 하셨다.  재이는 일기장을 꺼내 펼쳤다. ‘착한 사람이 되자.’를 지우개로 살살 지우고 다시 썼다.   

  

  ‘할 말은 하고 살자!.’          


끝.

(원고지19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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