뜻밖의 위로 3

by EJ

“하하하”


주영이 웃음을 터트렸다.

“그만해”


재이가 주위를 살피며 낮게 쏘아붙였다. 사람들로 가득한 카페 안이었다.

“미안, 미안. 너무 웃기잖아. 어떻게 차에 신발을 두고 내려.”


“몰라”


얼음이 가득 찬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차가움이 입에서 목으로 그리고 가슴 전체로 퍼졌다.


“나로 돌아온 것 같았어.”


“응?”


“어제 말이야. 맨발로 길을 걷는데 그게 그렇게 싫지 않더라.”

“뭐야, 뜬금없이”


주영은 어이없다는 듯 다시 웃었다.


“그나저나 언니, 왕자님 보러 한 번 더 가야겠어.”

“뭐?”


다음 날 오전, 재이는 서류를 챙겨 스튜디오로 갔다. 시내에는 관광객으로 보이는 외국인들이 종종 보였다. 그 사이를 걷다 보니 정장을 한 재이가 오히려 어색해 보였다. 건물 안은 촬영이 한창이었다. 배우는 조명 아래에서 무언가 말하고 있었다. 잠시 후 ‘컷’하는 소리가 들렸다. 그제야 매니저를 물어가며 찾았다.


“여기 서류를 드리러 왔습니다.”


“네 감사합니다.”


돌아선 재이의 눈에 의자에 앉아 쉬고 있는 배우가 보였다. 머뭇머뭇하다 용기를 내어 다가갔다.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그가 얼굴을 들며 인사에 답했다. CF에서 본 듯한 예쁜 웃음이었다.


“지난번엔 감사했어요.”


“네?”

남자의 대꾸에 재이가 당황했다.

“누구시라고 하셨죠?”


“아...”


자신에게 선명한 순간이 이 사람에게는 사라진 기억일 거라고 생각 못 했다. 생각을 못 했다는 사실이 더 창피하게 느껴졌다.


“아닙니다. 그럼 이만.”


“아!”


그제야 남자가 무언가 생각난 듯 내뱉었다. 재이는 그대로 뒤돌아 나갔다.

우당탕


출입구에 그만 구두 굽이 끼었다. 사람들의 시선이 느껴졌다.

“괜찮으세요?”


누군가 말했다. 재이는 돌아보지 않고 뛰듯이 나왔다. 한쪽 구두 굽은 이미 떨어져 나가 있었다. 어정쩡하게 걷다 근처 벤치에 앉았다. 주변을 보니 남산으로 올라가는 길목이었다.


‘뭐가 그렇게 창피했던 걸까…?’


그제야 생각났다. 서두를 일도 아니었다. 한때의 위로가 당시의 자신에게 너무 큰 의미로 과장되어 버렸을 뿐이다.


‘어딘가 의지하고 싶었던 걸까…?’

멍하니 한쪽 굽만 달린 구두를 내려다보았다. 한낮에 맨발로 걸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결국 바닥에 쳐내어 나머지 굽도 떼 내었다. 그대로 남산 방향으로 걷기 시작했다. 잔잔한 바람이 간지럽히듯 불어왔다. 마음이 편안해졌다. 어느새 서울타워의 넓은 광장이 보였다. 평일인데도 사람들은 짝을 이뤄 앉아 있었다. 사진을 찍거나 커피를 마시며 여유를 즐겼다.

‘이런 삶도 있었지.’


고등학생 시절의 자신이 생각났다. 친구들과 놀기 위해 이곳에 오기도 했지만, 미술학원에서 그림으로 마주한 사진 속 남산과 주변 풍경에 대한 기억이 더 짙게 남아있었다. 오랜 시간 바라보고 고민하고 그려냈던 시간이어서 그런 듯했다.


“오늘 휴가 내야 할 것 같아요.”


회사에 전화를 하고 카페에 들어가 자리를 잡았다. 이 풍경을, 이 순간을 좀 더 누리고 싶었다.

‘내려가는 길에 편한 신발을 사야겠다.

그리고

오랜만에 물감과 스케치북도 찾아봐야지.’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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