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책은 없다
책을 읽는다는 것은 누군가의 말에 귀 기울이는 일이기도 했다. 다양한 목소리를 듣다 보니 이전에 거부감을 가졌던 책에도 너그러워졌다. 일본 철학자의 책인 줄 알고 집어 든 ‘세이노의 가르침’이 그중 하나였다. 의외로 저자는 필명을 쓰는 자수성가한 우리나라 사람이었다. 내용은 주로 부자가 되는 법을 알려주는 조각 글의 모음이었는데 욕에 가까운 말과 직설적인 충고가 꽤 있어 처음에는 당황해 읽기를 멈췄다. 그러다 어느 순간 책까지 내게 된 이 사람의 생각이 궁금해 끝까지 펼쳐보았다. 다 읽고 그의 글들이 얼마나 탐욕스러운지 신나게 비판해 주겠다는 작정도 있었다. 청소년 시기에 아버지의 죽음으로 집안이 어려워지고 주변의 도움으로 시작한 사업이 실패한 뒤 여러 번 죽음을 시도했던 상황이 안타까웠다. 표현은 거칠지만, 자신처럼 어려운 환경에서도 인생을 개척하고 싶은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고자 하는 부분도 있음을 알게 되었다. 그 사람의 인생을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었다.
새로움이 열리자, 반대로 내가 멀리하는 것들도 생겼다. 텔레비전이었다. 자극적인 상황설정이나 화면 때문만은 아니었다. 엄청난 사건 사고가 몇 분 뒤 해결되고 한 사람의 좌절이 한 번의 다짐으로 극복되는 것이 무례하게 느껴졌다. 나 또한 내 인생이 그처럼 쉽게 해결되길 간절히 바랐던 적이 있었다. 하지만, 현실은 잠시의 안도와 기쁨일 뿐 대부분 기나긴 힘듦의 연속이고 결론이 나지 않는 하루의 연결이었다. 행복한 결말이라 부른들 단정할 수 있을까?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신데렐라, 백설 공주 안 부러워하며 결혼한 ‘나’였지만 어제의 달콤했던 신혼 시절이 지나자, 아이를 키우고 양가 부모를 챙기며 각자 하루의 책임을 다해내느라 지쳐버린다. 응원하기는커녕 비난하는 일들이 더 많아졌다. 우리의 부딪힘을 불행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서로의 최선을 알기에 오히려 자연스러운 삶이라 말하고 싶다.
계산과 억측을 줄이고 꼭 쥐고 있던 손을 펴기로 했다. 주변이 있는 그대로 보이고 주변 사람에 관한 관심도 커졌다. 매일 보는 사람들과의 대화에서 질문이 많아졌다. 아는 엄마가 말해주는 아이와의 갈등은 아이가 요즘 말을 안 듣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그 안에 한 살 두 살 때의 아이 모습이 그리운 엄마 마음이 있고 어린 시절 자신의 엄마와 겪었던 갈등이 있었다. 이전까지는 매일 보던 똑같다고 여겼던 동네 엄마들은 원래부터 엄마가 아니었고 태어날 때부터 선생님이 아니었다. 내가 그랬듯이 열 살, 스무 살의 다양한 모습과 그 시절을 겪어낸 기억이 담겨 있다. 우리는 어쩌다 이곳에서 인연이 닿아 함께 하는 걸까. 나의 진심이 담긴 질문들에 모두 각자의 대답을 해준다.
사람을 아는 것은 책 한 권을 읽는 것과 같다. 나는 오늘 이 사람의 인생 몇 페이지를 읽게 된 것인지 생각해 본다. '나'라는 이야기도 책의 어디쯤 온 것인지 궁금하다. 똑같은 책이 없듯 나는 내 이야기로써 빛나야겠다.
* 이 글은 2023년 성북구 평생학습 동아리 지원사업을 받은 '엄마의 글쓰기' 모임에 저자가 쓴 글입니다. 해당 글을 오디오 북으로도 만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