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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켈리랜드 May 28. 2021

당신에겐 볼펜을 거꾸로 잡고 자판을 칠 진지함이 있는가

‘한강’ 작가의 글쓰기에 대한 단상

몇 년 전 언론에서 아시아인 최초이자 최연소로 ‘한강’ 작가님이 ‘맨부커 상(Man Booker Prize)’을 수상했다는 기사를 접했다. 나에게는 조금 생소한 상이었고, 처음 기사를 대충 읽었을 때, 책 이름이 ‘한강’인가 했더니 작가 이름이었다. 책 <채식주의자, The Vegetarian> 도 건강 관련 에세이라고 생각했지 소설일 것이라 생각지 못했다. 으레 상 받은 책이나 영화는 너무 진지하고 지루하다는 편견을 가지고 있었다. 당시 그런 오해와 무관심으로 스쳐 지나갔다가, 뒤늦게 이 책을 접한 후 받은 충격과 감동이 지금도 생생히 남아있다.


<채식주의자>는 다소 얇은 책이라 가볍게 읽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한 장 한 장 넘길 때마다 문체나 메시지가 정말 강렬하게 다가왔다. 뭐랄까, 아이스 아메리카노인 줄 알았는데, 진하고 뜨거운 에스프레소를 마시는 느낌이랄까? 처음에 소파에 반쯤 누워 읽다가, 어느새 자세를 곧추세우고 저절로 이마에 주름이 지어지게 만드는 책이었다. 이야기 서사도 충격적이지만 작가의 살아있는 섬세한 묘사가 가시덤불처럼 휘감겨왔다. 클라이맥스에서는 그 강렬함이 극에 달해 마치 뾰족한 가시에 손가락이 찔리는 따끔함이 느껴지는 것 같았다. 책을 다 읽은 후 알 수 없는 얼얼함이 느껴졌다. 우와! 이 작가 대체 뭐지?!


소설 <채식주의자>의 국문/영문 판. 말 그대로 ‘탄탄하고 정교하며 충격적인 작품’이였다.



<채식주의자>를 완독 후, <82년생 김지영>을 읽었다. 이 책은 오히려 기대했던 것과 달리,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마시는 기분이었다. 이미 강렬한 에스프레소를 마신 직후여서 인지, 그저 밋밋하게만 느껴졌다. <82년생 김지영> 또한 좋은 책이지만, 당시 내 관심은 ‘한강’ 작가에 대한 호기심이 더 컸던 것 같다. 서둘러 완독 후, 한강 작가의 다른 책을 검색해봤다. 그리고 바로 <소년이 온다>를 읽어나갔다. 역시나! 이 책 또한 강하고 진한 여운이 남는 책이었다.


어떻게 이런 글을 쓸 수 있지? 원래 타고난 글쓰기 재능을 갖고 있겠지 싶었다. 그러다 책 안에 연애편지처럼 수줍게 적혀있는 ‘작가의 말’을 접하게 됐다.


“컴퓨터 대신 손으로 썼다. 손가락의 관절들이 아팠기 때문이다.
백지 한 장을 채우기 전에 손목이 아파 계속할 수 없게 되자, 더 이상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눈물도 나오지 않을 만큼 나는 지쳐버렸다.
볼펜을 거꾸로 잡고 자판을 두드릴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한 것은
그렇게 2년 가까운 자포자기의 시간을 보낸 뒤였다.”

(중략)
다시 2년의 시간이 지난 지금,
다행히 이 글은 노트북 컴퓨터의 키보드를 열 손가락으로 두드려 쓰고 있다.
만의 하나 다시 손을 앓게 되더라도 예전처럼 부대끼지는 않을 것이다.
단련된다는 것, 감사한다는 것의 의미를 이제 조금은 알 것 같다.

- 소설 〈채식주의자〉 작가의 말 중에서


이렇게 재능이 있는 작가도 쓰고 지우고,  쓰고 지우는 과정을 수도 없이 반복했던 것이다. 손가락 관절이 아파서 키보드 자판을   없을 정도로 말이다. 눈물조차 나오지 않을 정도로 지쳤을 ,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어 졌을 , 다시 일어나 볼펜을 거꾸로 잡고 자판을 두드렸다는 부분에서 절로 숙연함이 느껴졌다. 작가의 글쓰기와 작품에 대한 진지함이, 어쩔  없이 포기해야만 하는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기어이 다른 방법을 찾아내어 스스로를 다시 일으켜세우게 만든 것이다.


내가 휙휙 넘겼던  책의  문장을 위해,   페이지를 완성하기 위해, 작가는 끊임없이 고뇌하고 참아내는 인고의 시간을 견뎌낸 것이다. 그런 시련들을 통해 이제는 ‘단련된다는 , 감사할  있다는  의미를 깨달았다는 작가의 말에서, 그녀가 웅크렸던 고치를 벗어나 화려한 날개를 펼치는 나비처럼 느껴졌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 삶에도 ‘볼펜을 거꾸로 잡고 자판을 칠 정도’의 진지함이 있는가. 실패하고 쓰러지더라도, 아니 그건 어쩌면 불가능한 도전일지라도, 스스로 다시 그 자리로 돌아와 한번 더 도전하게 만드는 것 말이다. 남들이 보기엔 우둔해 보일지라도, ‘그만하면 됐다,’ ‘다음 생에 하면 되지’라는 말에도 굴하지 않고, 내 모든 것을 바쳐서 하고픈 것이 있는지 반문해본다. 그리고, 그게 무엇이 되었든 모든 것을 걸고 도전할 준비가 되었는지 말이다.


나중에 찾아보니, 맨부커 상이 노벨문학상, 프랑스의 공쿠르 문학상과 함께 세계 3대 문학상의 하나라고 한다. 늦었지만 수상을 다시 한번 축하하며, 그녀의 글쓰기의 진지함에 대해 깊은 존경을 표하고 싶다. 벌써부터 그녀의 다음 책이 기대된다. 그리고, 나의 진지한 도전도 결실을 맺을 수 있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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