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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쨈맛캔디 May 25. 2021

‘마운틴 듀’가 아닌 ‘닭백숙’할머니를 기대했는데...

영화 ‘미나리’ vs. ‘집으로’  감상평

Covid-19로 인해 일제히 극장이 셧다운 됐다가, 최근 백신의 확대와 함께 점진적으로 오픈하는 모습이다. 드디어 우리 동네 극장도 다시 재개장 됐고, 무엇보다도 상영작 중 한국영화 <미나리>가 있어 너무나 반가웠다. 팬데믹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미나리>는 올 한 해 주요 영화제를 휩쓸었으며, 특히 미국 골든글로브 시상식에서 최우수 외국어 영화상을,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윤여정 씨가 한국인 최초로 여우조연상을 수상하는 쾌거를 기록했다. 정말 대단한 소식이 아닐 수 없다. 1년 만에 극장을 갈 수 있다는 것도 감격스러운데, 심지어 한국영화 <미나리>를 보러 가다니!! 극장으로 향하는 발걸음이 설렘을 넘어 뭉클한 감동으로 다가왔다.




<미나리>는 잔잔한 여운이 남는 영화였다. 하지만, 너무 기대가 컸던 탓일까? 영화를 본 후의 느낌은 뭔가 2% 부족했다. 이민자의 삶, 종교의 역할, 가족의 의미, 할머니와 손자의 사랑 등 여러 주제들이 녹아 있었지만, 그렇다고 어떤 주제도 뚜렷이 각인되지 않았다. 특별히 흠잡을 것도 없지만, 그렇다고 강한 인상을 주지 못한 느낌이다. 이것저것 조금씩 담아 놓은 뷔페 식당 같은 느낌이랄까. 대개 가족애를 다룬 영화는 곳곳에 눈물 훔칠만한 장면들이 나오기 마련인데, 충분히 울 준비를 하고 왔음에도 불구하고 <미나리>를 보는 내내 코 끝 찡한 감동의 눈물은 나오지 않았다.


영화 <미나리>. 이민자 가족의 삶과 가족애를 다룬 영화다.


기대를 크게 했던 윤여정 씨의 연기도 특유의 유머와 말투가 살아 있을 뿐, 그다지 신선하게 다가오진 않았다. 아마도 내가 그녀의 연기에 익숙하기 때문일지 모르겠다. 철없는 할머니 역할로 손자와 티격태격하는 모습이 웃음을 선사하지만, 콩글리시나 문화 차이에서 오는 웃음이지, 한국 할머니 특유의 희생과 헌신에 오는 감동을 느끼기에 충분치 않았다. 한 평생 한국에서 살다가 손자를 돌보러 낯선 이국땅에 오신 할머니의 모습이, 마치 미국 LA 코리아타운에서 몇 년은 사신 교포 느낌이 들었다.


‘스티븐 연’씨나 ‘한예리’씨의 연기도 크게 흠잡을 것은 없지만, 혼자 농장을 꾸리고 물을 길어가며 생활하는 이민자의 고단한 삶을 보여주기에는 아쉬웠다. 햇볕에 그을려진 거친 피부라던가, 자기를 돌볼 새도 없이 삶에 찌든 헝클어진 모습보다는, 단정하게 화장하고 귀걸이를 하고 있는 모습이나 얼룩 하나 없는 깔끔한 옷차림이 몰입을 방해했다. 하루하루가 전쟁 같은 삶이 소품과 배우들의 모습에서 시각적으로 디테일하게 느껴졌더라면 더 좋았을 것 같다.




문득 2002년도 한국에서 개봉한 영화 <집으로>가 떠올랐다. 서울에서 온 7살의 철없는 손자가 TV도 없는 산골 외할머니 집에 와 살면서 벌어지는 좌충우돌 에피소드를 담은 영화다. <미나리>와 배경 설정만 다를 뿐, 가족애와 외할머니와 손자의 사랑을 코믹하고 감동적으로 그린 점에서 일맥상통하다. 당시 영화 <집으로>를 본 사람들은 대개 별 기대 없이 봤다가, 실컷 박장대소하기도 하고 결국 눈물 콧물 쏙 빼고 돌아온 기억이 있을 것이다. 지금은 성인이 된 ‘유승호’씨의 능청스러운 아역 연기와 진짜 할머니 같은 일반인 ‘김을분’님과의 찰떡궁합이 그야말로 관객들을 들었다 놨다 했다.


2002년 개봉한 영화 <집으로>. 할머니와 손자의 사랑을 아름답게 그린 영화다.


할머니와 손자의 알콩달콩 에피소드들이 아직도 생생하다. 특히 <집으로>의 명장면으로 꼽히는 ‘닭백숙’ 씬은 지금도 큰 웃음을 선사한다.

상우 :   (애교를 살살 부리며...)
             할머니~~~ 할머니~~~
             나 치킨 먹고 싶어~~ 할머니... 꼬꼬댁~
             캔터키 후라이드 치킨!!
             꼬꼬댁 몰라? 꼬꼬댁 (닭 흉내를 낸다)
             (할머니 잠시 후 백숙을 가지고 들어온다)
              내가 언제 닭을 물에 빠트리랬어?
              난 안 먹어...!!
              할머니 혼자 다 먹어~ 치킨! 치킨!
              캔터키 후라이드 치킨 달란 말야!
              할머니 미워! 미워~ 미워~~~
              (엉엉 울음을 터뜨리는 상우)

- 영화 <집으로> 중


할머니의 한없는 손자에 대한 사랑과 헌신에, 손자 상우도 점점 마음의 문을 열고 정이 쌓이게 된다. 할머니가 아파 드러눕자 할머니 밥상을 차려주는 장면이나, 집으로 돌아가기 전날 밤 편지 쓰는 법을 가르쳐드리며 "할머니, 아프면 편지 종이만 보내. 그럼 내가 달려올게"라고 말하는 장면, 눈이 침침한 할머니를 위해 바늘구멍의 실을 길게 미리 꽂아놓는 장면에서는 참았던 눈물이 왈칵 터져 나온다. 지금도 영화 <집으로>의 장면 하나하나가 가슴에 한켠에 추억처럼 남아 있다.




영화 <미나리>에 대한 평단의 극찬이 이어지고, 전 세계 주요 시상식에서 74관왕에 오른 작품이다 보니 너무 기대가 컸던 것 같다. 봉준호 감독은 "노스탤지어에 젖지 않는 영화라 더욱 좋았다. 그 거리감이 영화를 빛나게 한다"라고 했지만, 반대로 나처럼 뚝배기에 푹 우려낸 진하고 구수한 고향의 맛을 기대한 사람에게는 아쉬움이 남는 영화였다.


손자에게 탄산음료인 ‘마운틴 듀(Mountain Dew)’를 가리켜 ‘산(마운틴)에서 길러온 이슬 물(듀)’을 가져오라고 하는 <미나리>의 할머니보다는, '캔터키 후라이드 치킨'이 뭔지 모르지만 본인이 아는 최고의 닭요리인 닭백숙을 손자에게 정성스레 내놓는 <집으로>의 할머니에게 더 정이 가는 건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아마도 나의 과거 경험이 '닭백숙' 할머니와 더 가깝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문득 19년 전에 나온 영화 <집으로>가 그때 개봉되지 않고, 지금 2021년 미국 영화제에 출품되었다면 어땠을까하는 상상을 해본다. 윤여정 씨가 오스카상을 수상했듯이, 김을분 할머니와 손자 역의 유승호 씨도 할리우드의 레드카펫을 밟지 않았을까. 영화 <기생충>에 이어 <미나리>의 수상을 계기로, 보다 한국적인 영화들도 북미 시장에 많이 소개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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