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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쨈맛캔디 Jun 01. 2021

노트르담 대성당이 불탈 줄이야 - 망설이면 다음은 없다

2019년 1월 겨울, 우연히 프랑스 출장 기회가 생겼다. 새로운 팀을 맡은 후, 관련 업체들과 인사하고 논의하는 미팅이었다. 유럽은 영국 이외에는 방문한 적이 없어, 개인적으로 프랑스 방문은 큰 기대가 되었다. 파리하면 낭만과 로맨틱의 상징으로, 모든 사람들이 한 번쯤 꿈꿔보는 곳이기도 하다. 반갑게도 업체 위치가 파리에 위치하고 있었고, 일정 마지막 날에 일찍 미팅을 마치고, 오후에는 시내를 둘러봐도 좋겠다 싶었다. 생각만 해도 일석이조의 출장이 될 터였다.


문제는 같이 가는 멤버와의 사이가 조금 서먹하다는 것이었다. 내가 새로운 팀을 맡는 것을 별로 탐탁지 않게 생각하는 눈치였고, 들리는 이야기로는 이직을 준비 중이라는 소문이 있었다. 프랑스 출장으로 한껏 들뜬 나와 달리, 그 친구는 이번 출장이 그다지 내키지 않아 보였다. 겉으로는 서로 웃으며 이야기하다가도, 계속 대화를 이어가지 못하고 금방 끝나는 어색한 분위기가 반복되었다. 갈 때라도 편하게 가자 싶어 약속이라도 한 듯 비행기 좌석도 떨어져 앉았다. 어색한 분위기가 머쓱했지만 그런들 어떠리. 파리에 간다는데 이 정도는 감수해야지.


업체와의 미팅을 마친 후 오후 1시쯤 숙소로 돌아왔다. 이제 기다렸던 파리를 탐험하는 시간이다. 내가 심각한 길치이기도 했고, 낯선 곳을 혼자 돌아다니기보다 일행과 같이 가는 게 안전할 것 같다는 생각에 그 친구에게 문자를 보냈다. 실망스럽게도 한참 뒤에 온 답변은 피곤해서 좀 쉬고 싶다고 했다. 이런! 변수가! 파리를 혼자 둘러보는 건 계획에 없던 일이었다. 그냥 나도 호텔에 있어야 하나 순간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하지만, 이렇게 시간을 보내면 나중에 후회할 것 같았다. 그래! 세계적인 관광지인데, 설마 길을 못 찾겠어. 밖에 나가도 에펠탑은 시내 어디서든 보이니, 어떻게든 가겠지.


일단 에펠탑은 무조건 본다!


한 손에 파리 시내 지도를 들고 일단 길을 나섰다. 1월의 파리는 정말 추웠다. 혼자라는 생각과 차갑게 불어대는 칼바람에 나도 모르게 더욱 움츠러들었다. 그래도 무조건 간다! 버스 노선도를 찬찬히 살펴보고, 에펠탑을 경유하는 버스를 기다렸다. 운전사에게도 에펠탑을 가는지 물어보고, 혹시나 싶어 옆에 앉은 사람에게도 물어봤다. 2명 모두 그렇다고 했으니 맞게 탄 것 같다. 뜻밖의 나 홀로 여행이 두렵기도 하고 은근히 설레기도 했다.


창 밖으로 에펠탑이 점점 가깝게 다가왔다. 정거장에 도착하니 사람들이 우르르 내리기 시작했다. 그래도 옆 사람에게 여기가 맞는지 한번 더 물어봤다. 그러고 보면, 나도 막무가내이기도 하면서도 겁이 참 많다. 사진으로만 보던, 에펠탑을 직접 보게 된 것도 감동이었지만, 이곳을 내가 혼자 찾아왔다는 게 더 기특했다. 에펠탑에서 셀카도 찍고 이곳저곳 둘러보고 나니, 살짝 용기가 생겼다. 파리하면 빠질 수 없는 개선문, 콩코드 광장, 샹젤리제 거리 등 한 번쯤 들어봄직한 것들을 보러 바지런히 돌아다녔다. 파리는 도시 전체가 마치 거대 박물관 같았다. 마치 내가 중세시대로 돌아간듯한 느낌이 들 정도로 역사와 함께 살아 숨 쉬는 느낌이었다.  


어느새 밖이 어둑해졌다. 아무리 무모하다고 해도, 야간에 혼자 돌아다니는 것은 조금 위험할 듯싶었다. 그래, 다음에 또 보면 되지? 평생 파리에 한 번만 올 것도 아닐 텐데... 그런데, 한편으로는 이런 생각도 들었다. 그때는 그때고, 지금은 지금이지. 굳이 내가 지금 할 수 있다면, 다음으로 미룰 필요 없잖아?! 하고 말이다. 물론, 다음이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반드시 다음이 있을 거라고 가정하는 것 또한 막연한 바람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언젠가 있을지도 모를 기회를 기다리며, 지금을 낭비하고 싶지 않았다.



그렇게 생각하고 나니, 내게 지금 주어진 한 시간 한 시간이 너무 소중하게 느껴졌다. 동료에게 다시 연락을 했다. ‘몸은 좀 괜찮아졌어? 노트르담 대성당 갈 건데 혹시 같이 갈래?’ 나도 참 속도 없다. 그런데, 뜻밖의 답변이 왔다. ‘그래 같이 가자!’ 이 친구도 쉬고 나서 괜찮아졌는지, 한결 기분이 나아진 듯 보였다. 대성당까지 가는 길에도 어색한 대화를 주고받았지만, 참 신기하게 짧은 대화라도 계속 이어가다 보니, 그 어색함도 점점 편하게 느껴졌다. 무리하게 대화를 이끌어가지 않으면서, 서로의 적당히 거리를 찾아가는 것 같았다


드디어, 노트르담 대성당이다. 히야!! 에펠탑이 파리의 상징이라고 하지만, 노트르담 대성당이 주는 감동과 무게감은 압도적이었다. 이 대성당은 프랑스 가톨릭의 상징이자, 국가적인 행사가 치러지는 곳으로 유명하다. 종교를 떠나, 그 존재에서 뿜어져 나오는 웅장함에 감탄사가 절로 터져 나오고, 정교함에 숙연함마저 느껴졌다. 또 언제 올지 모른다는 생각이 자꾸 들어서 일까. 사진을 찍기에도 일분일초가 아깝게 느껴졌다. 최대한 직접 보며 충분히 감상하고 싶었다.


프랑스 노트르담 대성당. 그 웅장함과 정교함에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그 후 3개월이 지난, 2019년 4월 15일.


노트르담 대성당에서 화재가 발생했다는 믿을 수 없는 뉴스가 속보로 떴다. 두 눈을 의심했다. 정말 믿을 수 없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가 있지?!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곳이 이렇게 허무하게 타버릴 수는 없는 것이다. 시뻘건 화염이 성당을 금세라도 집어삼킬 것 같았다. 하늘로 치솟는 검은 연기를 그저 망연자실하게 바라볼 수밖에 없는 사람들 모두가 안타까움과 좌절, 허무함에 할 말은 잊은 듯했다. 언론 보도를 보니 목재구조는 남김없이 전소했다고 한다. 14세기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목조 천장 구조가 소실된 것이 특히 뼈 아픈 손실이라고 했다. 프랑스 정부가 서둘러 재건 계획에 대해 발표했지만, 우린 다시 예전의 노트르담 대성당을 볼 수 없게 된 것이다. 정말 역사적인 대 참사가 아닐 수 없다


그러다 문득, 3개월 전에 내가 그곳을 방문해 원래 모습을 볼 수 있었던 게 얼마나 행운이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 내가 ‘그냥 다음에 가지 뭐’하고 미뤄뒀더라면, 난 이 성당의 원래 모습을 영원히 보지 못하게 됐을 것이다. 할 수 있을 때 머뭇거리지 않고, 행동을 취하는 것의 중요성에 대해 새삼 깨닫게 됐다.


망설이면 다음은 없다.



그때 같이 있던 동료는 출장 후 몇 주 뒤 퇴사했다. 한동안 연락이 없다, 대성당 화재가 보도된 그날, 그 친구로부터 문자가 왔다. 너무 가슴 아픈 소식이라며, 그때 같이 가줘서 고맙다고 말이다. 이제 더 이상 그때의 그 동료도, 노트르담 대성당의 모습도 볼 수 없지만, 그때의 감동과 추억은 오래도록 기억될 것 같다.


노트르담 대성당 화재. 정말 너무나 안타까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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