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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쨈맛캔디 May 29. 2021

'내가 나에게 주는 선물'의 함정

토닥토닥, 고생했어! 수고한 나에게 내가 주는 선물


보통 선물이라 함은, 내가 다른 사람에게 감사의 표시로 주는 것을 말한다. 그런데, 언제부터 우리 사회에 ‘내가 나에게 주는 선물이란 말이 유행처럼 번지는  같다. 평소에 갖고 싶었던 명품이나 고가의 상품을 구매하거나, 고급 레스토랑에서 비싼 음식을 주문하고는, 자신을 위한 특별한 ‘선물이라고 말한다.


스스로를 사랑하는 마음과 자존감을 높이기 위한 행동처럼 보이지만, 한편으로는 소비를 부추기는 심리를 ‘선물 포장해 합리화하는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식구나 지인들을 위한 상품을 구매했으면, 거기서 멈추지 말고, 당신을 위해서도  구매하세요하는 마케팅 전략에 혹하는 것은 아닐까 싶었다.


선물에는 상대에 대한 뭔가 특별함이 담겨 있다. 그래서,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나에게 주는 선물이 그저 흔한 싸구려 제품이   없다. 마치 나의 수고와 자존감 또한  상품의 값어치만큼 떨어지는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나에게 주는 선물이란 태그가 붙게 되면, 나도 모르게   과감해지는  같다. 뭔가 자주 있는 기회도 아니고, ‘내가 이렇게 고생했는데  정도도 한번 못해하는 보상심리가 주저 없이 지갑을 열게 한다. 보통 액세서리 가게에서 2-3 원짜리 귀걸이를  때도 망설여지던 , 나를 위한 선물이라고 하면, 최소 10배는 비싼 티파니(Tiffany) 귀걸이 정도는 돼야 뿌듯해진다.


결국, 소비 가격만큼  자존감이 결정되는 셈이다.


셀프 선물이란 말을 조금  들여다보면 여러 함정이 있다. 스스로에게 주는 선물이 수고에 대한 보상이라면, 그동안 살아온 일상의 삶은 고통과 억눌림이란 말인가? ‘오늘은 특별한 선물이라고 선을 긋는 순간, 기존의 삶과 벽이 생기는  같다. 그래서, 기존에 하지 않았던  특별한 보상을 바라게 된다.


예를 들어, 식단을 조절하며 다이어트를 꾸준히 해오던 사람이, 어느  ‘수고한 나에게 주는 선물이라며 떡볶이, 라면, 치킨, 맥주를 잔뜩 시켜서 먹는다. 그렇게 의미를 부여하는 순간, 그날은 평소보다 폭식하게 되고, 그동안의 절제는 물거품이 된다. ‘하루는 괜찮겠지라는 흔들림을 ‘선물 합리화하는 것이다.  순간만은 어느 누구도 그동안 수고한 나에게 감히 태클을   없도록 말이다. 마음껏 폭식한 날이 선물이라면, 그동안 식단 조절과 다이어트를  날은 ‘선물이 아닌  돼버린다.


멀리 보면, 당신의 인생에서 정말 선물인 날은 ‘스스로에게 선물을 하지 않은 들의 축적임에도 말이다.


문제는 ‘나에게 주는 선물 중독되는 경우다.  년에 나에게 주는 선물을  번이나 해야 만족이 될까?  일탈과 달콤함에 한번 빠지면 횟수가 점점 늘어나게 되고, 결국 일상과 특별함의 경계가 모호해진다. 오히려, 다시 일상의 평범함으로 돌아오려니 허무함마저 느껴지기도 한다.


주변에 한분은 수고한 스스로에게 셀프 선물이라며, 매번 출장을 갔다  때마다 명품가방을 사온다. 출장의 횟수가 늘어나면서, 그녀의 명품백은 엄청난 컬렉션이 되어갔다. 자기를 위한 선물로 포장하지만, 결국 자기의 수고를 남에게 과시하려던 것은 아니었을까. 이번 출장의 수고는 최소 ‘루이뷔통 신상백정도는 됐다고 말이다.


차라리 스스로에게 조금  솔직해지면 어떨까. ‘내가 나에게 주는 선물이라고 일탈을 포장하며 합리화하기보다는, 잠시 ‘휴식 취하는 시간이라고 인정하는 것이다. 지금까지도  해왔고, 앞으로도 계속 잘해나가기 위해, 잠시  템포 쉬어가는 재충전의 시간으로 말이다. 자신을 사랑함으로써 자존감을 올리는 방법이 반드시 물질적 소비와 연결될 필요는 없다.  이상 ‘토닥토닥, 너무 고생한 나에게 주는 선물 같은 낯간지러운 메시지의 함정에 속지 않았으면 좋겠다.


 삶에 있어, 오늘만 특별한 날이 아니라, 어제도, 오늘도, 그리고 내일도,  일상이 나에겐 모두 선물 같은 날이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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