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넛 하나에 이러지 맙시다!
5살 꼬마가 다니는 발레학원 옆 코너에 도넛 가게가 생겼다. 어찌 그냥 지나칠 수 있겠는가. 수업을 마치고 꼬마와 함께 도넛 가게에 들렀다. 스페인 아줌마로 보이는 분이 반갑게 맞아주셨다. 알록달록 형형색색의 도넛을 본 꼬마는 신이났다. ‘나 저 무지개색 도넛 할래, 아냐! 저기 빨간 크림 도넛이 좋겠어, 아냐! 미니 도넛 먹을래.’ 꼬마의 최종선택을 기다리며 잠시 딴짓을 했더니, 아줌마가 꼬마가 후보로 말한 것들을 모두 한 상자에 집어넣고 계셨다.
깜짝 놀라, 내가 한두 개만 살 꺼라고 서둘러 만류했다. 그러자, 그 주인아줌마가 말하길 아이가 너무 이뻐서 그냥 주고 싶다는 것이다. 발레복 입은 것도 너무 이쁘고, 자기 사촌 중 한 명이 한국인이랑 결혼해서 가족들도 생각난다고 말이다. 계속 우리 꼬마와 한국인들에 대한 이런저런 칭찬과 일화들을 쏟아내셨다. 이분의 친절과 다정함에 내가 너무 오버해서 반응한 것 같아 순간 미안해졌다. 아이 칭찬 앞에서 부모는 한없이 너그러워지기 마련이다.
마음을 바꿔, ‘그럼, 도넛 한 상자 (보통 12개가 한 세트다) 담아주세요’라고 주문했더니, ‘물론이죠’하면서 금세 한 상자 가득히 도넛을 담아주셨다. 그러고는 ‘아이가 너무 이뻐 그냥 지나칠 수 없어, 도넛 3개 보너스로 넣었다’며 한껏 부풀어 오른 상자를 꾹꾹 누르며 건내주셨다. 참 정이 많으신 분이구나~ 싶었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친절함에 기분 좋게 집으로 돌아왔다. 덕분에 저녁 메뉴가 도넛이 됐지만 말이다.
반전은 저녁에 카드 내역 영수증 메일을 확인하면서 였다. 그 도넛 가게에서 도넛 한 상자값 외에도, 무료라며 선심 쓴 도넛 3개 값을 몰래 추가한 것이다. 설마 내가 영수증을 확인할 것이라 생각지 못한 것 같다. 세상에나! 이런 꼼수를 쓸 줄이야! 당황스러움과 함께 배신감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그때 나눈 이야기들이 모두 상술이고 거짓이라는 생각이 드니 분노가 치솟았다. 내일 전화해서 따질까 했지만, 비록 무료는 아니었지만 보너스로 도넛을 준 것도 맞고, $3 다시 돌려받는다고 기분이 좋아질 것 같지 않았다.
무엇보다 사탕발린 말에 훌렁 넘어가, 덜컥 도넛 한 상자를 구매하고, 영수증도 제대로 확인 안 한 내가 바보 같았다. 그분의 친절에 대해 기분 좋게 보답하고 싶었던 마음도 컸던 것도 사실이다. 적당한 친절은 당신의 하루를 기분 좋게 하고, 관계를 강화시킨다. 하지만, 내가 한 가지 잊은 게 있었다.
과잉 친절 뒤에는 무언가 숨은 의도가 있다는 것이다.
이는 회사나 여러 모임에서도 마찬가지다. 누군가 당신에게 적당한 선을 넘는 친절을 보인다면, 살짝 의심해보는 것이 좋다. 당신이 원하는 이야기, 듣고 싶은 이야기를 장황하게 늘어놓는 사람도 마찬가지다. 숨은 의도가 있는 과잉 친절은 결국 진심이 결여된 행위일 뿐이다. 진심에서 나오는 친절이 아니면, 차라리 안 하고 안 받는 게 낫다. 그러고 보니, 상대에게 칭찬받기를 기대하는 것도 참 의미 없는 일인 것 같다. 어차피 영혼 없는 말잔치일 뿐일 테니.
이제 다시는 그곳에 가지 않을 것이다. 그곳은 달랑 도넛 3개에 충성고객이 될 뻔한 고객을 잃은 것이다. 매번 그곳을 지날 때마다 나쁜 기억이 떠오를 것 같다. 분명 꼬마는 또 가자고 할 텐데, 이걸 어떻게 설명해주지? 이래저래 참 씁쓸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