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좋은생각> 2021년도 9월호에 선정돼 글이 실렸답니다. 경품으로 안마기를 받아 엄마께 선물로 드렸어요! 일석이조네요^^
이유는 알 수 없으나 “딸 낳은 엄마는 비행기를 탄다"는 말이 있다. 우리 엄마는 딸이 셋이다 보니, 주변에서 비행기를 세 번 타겠다는 말을 자주 하곤 했다. 그리고 놀랍게도, 그 말이 현실이 됐다. 지금 딸 셋 모두 해외에서 살고 있으니 말이다. 큰 언니는 캐나다에, 나는 미국에, 막내 동생은 스위스에 살고 있다. 일부러 그런 것도 아닌데, 세 딸 모두 세계 각지에 떨어져 살게 됐다. 엄마가 한번 뜨면, 지구 한 바퀴를 돌아야 세 딸을 만날 수 있는 것이다.
한국이 하루를 마감할 시간이면, 미국과 캐나다는 아침이 밝아오고, 스위스에 해가 떠오르면, 미국과 캐나다는 해가 진다. 시차가 있다 보니, 우리 식구들은 주로 카톡이나 라인 메신저로 문자나 영상통화를 한다. 가족 그룹 창은 각 국에 있는 딸, 사위, 손자, 손녀의 일상을 담은 소식과 사진들로 늘 분주하다. 혹 여행이라도 간 집이 있으면, 이국적인 풍경과 아이들 사진으로 그룹 창은 도배가 된다. 문자와 사진, 이모티콘으로 기쁜 소식, 재밌는 이야기, 안타까운 소식을 전한다. 덕분에 아침에 일어나면 밤 사이에 온 메시지를 확인하는 게 하루 일과가 됐다.
직장 다니랴, 애들 챙기랴, 집안일을 하다 보면, 하루가 어떻게 가는지 모르게 정신없이 흘러간다. 그러다 문득 궁금한 게 있거나 목소리가 듣고플 때면 한국에 계신 엄마, 아빠에게 연락을 한다. 한참 이야기를 나누고 난 후에야, 아차! 한국은 새벽 2시였음을 깨닫는다. 살짝 미안한 마음이 들지만, 서로 시간을 맞추기 힘드니 어쩔 수 없다 생각했다. 그런데, 가만 생각해보니 반대로 엄마가 미국 시간으로 밤늦게 전화 거는 일은 없었다. 나중에서야 그 비법을 알게 됐다. 바로 엄마에게는 ‘특별한 시계’가 있었던 것이다.
오랜만에 한국 부모님 댁을 방문하였을 때다. 식탁 한편에 놓인 세 개의 시계가 눈길을 끌었다. 어디선가 사은품으로 받은 듯한 소형 시계 세 개가 일렬로 정렬돼있었다. 재밌는 것은 세 개의 시계가 가리키는 시각이 제 각각이다. 가만 보니, 시계 중앙에는 ‘스위스’ ‘미국’ ‘캐나다’로, 각 국의 이름이 적혀 있다. 마치, 은행 벽에 걸린 세계 시계 전광판 처럼 말이다. 다른 점이 있다면, 멋진 디지털 시계가 아니라, 볼펜으로 꾹꾹 눌러 쓰인 국가명이 각각의 소형 시계 위에 조그만 견출지로 붙어 있었다. 다름 아닌, 딸들이 있는 국가 시간을 한눈에 보기 좋게 세팅해 놓은 것이다. 순서도 큰딸, 둘째딸, 작은딸 순서다. 엄마의 센스에 큰 웃음이 터졌다. 그리고, 순간 가슴이 뭉클해졌다.
칠순을 넘기신 엄마의 시간은 아직도 우리를 향해있던 것이다.
엄마는 식탁에 앉으실 때마다 각 국의 시간을 확인한다고 하셨다. ‘지금 첫째랑 둘째는 애들 저녁 준비하고 있겠구나. 셋째는 한 밤 중이겠네’ 하면서 말이다. 우리 세 딸이 어디에 있든, 엄마의 마음은 항상 우리를 향해 있던 것이었다. 마치 나침반의 바늘이 늘 한 곳을 향해 있는 것처럼 말이다. 한국에 같이 살면서 옆에서 많이 챙겨드리지 못한 것이 늘 미안한 마음이 든다. 그래서일까. 세 딸 모두 약속이라도 한 듯, 가족 그룹 창에 더 많은 이야기를 남기고 사진을 올리는 것도 이 때문일 것이다. 멀리 떨어져 있다는 생각이 들 틈이 없도록 말이다.
나도 언젠가 우리 아이들을 위한 두 개의 시계가 필요할지도 모르겠다. 엄마가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언젠가 하나의 시계로 우리 가족 모두 함께 할 날을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