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켈리랜드 Sep 08. 2021

한 발자국도 물러서지 않으면 벌어지는 일

아이에게 닥터 수스의 < The Zax > 책을 읽어주었다. 북으로 가려는 Zax (North-Going Zax)와 남으로 가려는 Zax 가 사막 한가운데서 맞닥뜨렸다. 그리고, 서로 우기기 시작한다. 당신이 내 길을 막았으니 먼저 비키라고. 하지만 둘은 양보할 기색이 전혀 없다. 자기가 먼저 왔고 당신이 내 길을 막고 있노라며 언쟁을 시작한다. 다양한 이유로 자신이 옳다고 주장한다. 


그러길 몇 시간, 며칠… 몇 주일이 지났지만, 그들은 여전히 그 자리에서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않고 대치하고 있다. 심지어, 몇 년이 흘렀다. 이제 사막 주변에는 도로가 생기고, 빌딩이 들어서고, 차들이 다니고 있다. 하지만 그 둘은 여전히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않고 싸우고 있다는 내용이다. 짧은 내용이지만 많은 것을 생각하게 했다.


자기가 옳다고 믿는 그 둘은 서로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않았다.



그동안 모든 게 변했고, 변하고 있다. 단, 그들만 빼고.



그들 스스로 자기가 옳다고 우기며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않는 동안 무슨 일이 일어났을까?


그들만 빼고 모든 것이 변했다.


그들은 자기 아집에 빠져 주변이 변하는 것을 보지 못했다. 아니, 보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오로지 상대방에 대한 분노로 눈과 귀가 멀어버린 것이다. 자신만의 세상에 갇혀서, 자신이 옳다는 굳은 의지와 신념으로 말이다. 만약, 한 사람이라도 옆으로 한 발자국만 움직였다면, 그들은 서로 계속 가던 길을 갈 수 있었을 것이다. 더 멀리 앞으로 나아갈 수 있었을 것이다. 단지 한 발자국만 움직였다면, 그들 주변에 나 있는 수많은 길들을 볼 수 있었을 것이다. 그들만의 수백, 수천 가지의 새로운 길을 만들어 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에게 양보란 있을 수 없다. 양보는 내가 아닌 상대방이 나에게 하는 것이라 생각했을 것이다. 상대방을 다른 생각, 다른 방향으로 걷는 존재로 보지 않고, 잘못된 길을 가는 사람, 내 길을 방해하는 사람이라 비난하면서 말이다. “감히 내 자존심을 건드려? 네가 뭔데?” 하는 경멸의 마음이 가득 찬 곳에 양보와 타협이 들어설 자리는 없다. 그렇게 수십 년이 흘러갔다.


어리석은 우화처럼 들리지만, 우리는 주변에서 이런 경우를 흔치 않게 볼 수 있다. 만나면 으르렁 거리며 싸우는 부부간의 갈등, 물과 기름처럼 절대 섞이지 못하는 시어머니와 며느리의 갈등, 쳐다보기도 싫은 이웃과의 갈등이 그렇다. 가정, 이웃에서 뿐 아니라 직장에서도 흔히 볼 수 있다. 의견차로 인해 혹은 내 승진에 방해가 됐다는 이유로, 몇 달, 아니 몇 년간을 서로 말도 섞지 않는 부장, 이사님들도 있다. 


이념이나 종교에 적용해보면, 그 갈등의 골은 참으로 넓고도 깊다. 좌파, 우파의 이념 갈등으로 얽히고설킨 정치 갈등의 역사는 수십, 수백 년을 넘어선다. 서로를 거짓 믿음이라 비난하는 종교 갈등은 이미 수천 년을 넘어 지금도 세계 곳곳에서 계속되고 있다.


이 책이 주는 교훈은 명확하다. 그래서 무엇을 얻었는가.


그들은 그 자리에서 한 발자국도 나아가지 못했다.



작가의 이전글 천재도 200% 의 준비가 필요하다고?!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