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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쨈맛캔디 Feb 11. 2022

좀비로부터 살아남은 자들이 알고 있는 한 가지

ft. 넷플릭스 <지금 우리 학교는>

넷플릭스에서 당당하게 글로벌 1위를 기록하고 있는 <지금 우리 학교는>이 화제다. 좀비가 퍼진 학교에 고립되어 살아남기 위한 아이들의 처절한 사투를 그린 이야기다. 탄탄한 시나리오와 연출, 특히 학교를 배경으로 한 점이 기존 장르와 차별을 보이며, ‘좀비물에 새로운 생명을 불어넣고 있다'는 호평이 쏟아지고 있다.


무엇보다 이렇게 큰 인기를 끌며 많은 공감을 얻는 이유는 위험한 상황에 처했을 때 보여주는 아이들의 선택과 행동에서 삶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다루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성숙하지 않은 아이들이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위험한 상황에 처했을 때
이 아이들이 선택하고 행동하는 것들을 보면서
어른답고, 인간답다는 게 무엇인가를 고민할 수 있는 이야기이다.

- 이재규 감독, 인터뷰에서


몰려드는 좀비들을 피해 학생들은 방송실로 음악실로 과학실로 피한다. 밖에는 좀비들이 가득하고 한번 물리면 좀비가 되어버리는 위태로운 상황이 계속된다. 일단 몸을 피하기는 했지만, 구조대가 언제 올지, 아니 과연 오기는 할지 알 수가 없다. 학교 밖은 어떤지, 좀비가 없는 안전한 곳은 어딘지 정보 또한 부족하다. 당장은 교실 안이 안전해 보이지만, 이곳에서 오래 버틸 수 없다는 것은 모두 알고 있다. 생존 영화에서 늘 그렇듯, 밖으로 나가야 한다는 그룹과 안에서 구조대를 기다려야 한다는 그룹의 갈등과 딜레마가 발생하게 된다.


머물 것인가 vs. 나갈 것인가. 힘든 질문이다. 목숨이 걸려있다면 더욱 그렇다.





아이들의 갈등과 논쟁을 보면서 문득 < 누가 내 치즈를 옮겼을까?, Who moved my cheese > 책이 떠올랐다. 상황은 다르지만, 점점 바닥을 보이는 치즈 창고를 보면서 새로운 치즈를 찾아 떠나야 한다는 그룹과, 상황이 변화될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는 그룹이 갈등한다는 점에서는 일맥상통한다. 여기서 '치즈'가 상징하는 것은 현재 자신의 삶, 즉 생활의 보장인 동시에 안정적인 미래와 행복이다.


하지만, 아쉽게도 현실은 치즈가 바닥나고 있다는 것이다. 그들이 지금 할 수 있는 것은 텅 빈 창고를 헤매며, 현실을 확인하는 것 밖에는 아무것도 없다. '왜 나에게 이런 일이 발생하지?' 하며 좌절과 분노에 책임을 돌리기도 한다. 이때 두려움을 떨쳐내고 과감하게 밖으로 나서자는 그룹에게, 가만히 있자는 그룹이 말한다.

 

- 나는 이곳이 좋아, 편해. 다른 곳은 몰라. 다른 곳은 위험해.

- 난 이제 너무 늙었어. 길을 잃고 헤매는 멍청이가 되고 싶지 않아.

- 조만간 누군가가 다시 치즈를 제자리로 가져다 놓을 거야.

- 만일 다른 곳에 있다 해도 우리가 찾을 수 없으면 어떻게 할 거야?


이때 변화를 선택해서 끝까지 살아남은 그룹이 알고 있는 한 가지가 있다. 바로 두려움 때문에 아무 일도 하지 않는 것이 더 위험하다는 것을 말이다. 여기서 이 두 그룹의 근본적인 차이가 발생한다.


생존자들은 더 이상 가만히 앉아서 '누가 내 치즈를 옮겼을까?' 하는 어리석은 질문을 하지 않는다. '왜 좀 더 일찍 자리를 박차고 나서지 못했는가?' 하는 후회를 떨치고 과감하게 한 발을 내딛는다. 물론 기존에 있던 곳에 대한 평온함과 친근함이 그리울 수 있고, 선택에 후회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들은 알고 있다.


'두려움을 없앤다면 성공의 길은 반드시 열린다'는 것을.


변화에 신속히 적응하라.
사라져 버린 치즈에 대한 미련을 빨리 버릴수록
새 치즈를 보다 빨리 찾을 수 있다.

Adapt to change quickly.
The quicker you let go of old cheese,
the sooner you can enjoy new cheese

- <누가 내 치즈를 옮겼을까?>  by 스펜서 존스


오랜 역사를 통해 증명되었듯이 살아 있는 것은 움직인다. 죽어 있는 것은 움직이지 않는다. 문제는 살아있으면서 움직이지 않으려는 것이다. 인생은 변하고 계속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 원하든 원치 않든, 우리도 그렇게 해야 살아남을 수 있다.


새로운 치즈를 향해 달려 나가려는 친구가 운동화 끈을 질끈 묶으며 머뭇거리는 친구를 향해, 아니 우리를 향해 말한다.  


'자, 이제 미로로 떠날 시간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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