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다. 내 사진 앨범을 아무리 뒤져도 나의 20대에는 비키니 입은 사진이 한 장도 없다. 그것을 이제야 깨달았다는 것도 놀랍다. 비키니를 꼭 20대에 입어야 할 필요는 없지만, 인생에서 가장 젊고 푸르른 시절, 감히 입어볼 생각조차 못했다는 것이 지금 돌이켜보면 참 서글프다.
먼저, 바닷가에 갈 여유가 없었다. 삼면이 바다에 둘러싸였다고 바다를 볼 수 있는 기회가 많은 건 아니다. 지금 생각하면, 기차 타고 몇 시간만 내려가면 되는데, 그때는 동네를, 서울을 벗어나는 것이 큰 일처럼 느껴졌다. 또한, 아무런 목적 없이 그저 바다를 보기 위한 여행을 하기엔 시간과 비용의 지출이 컸다. 바다에 갈 일이 없으니, 수영복 입을 일이 없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바닷가나 수영장에 갔다고 하더라도, 감히 비키니를 입을 생각은 하지 못했다. 과감한 노출은 사회적 통념에 어긋난다는 생각에서다. 또한, 내 몸매가 외부로 드러내기엔 충분치 않다는 자아 검열도 한몫했다. 비키니는 연예인이나 모델 같은 몸매를 지닌 사람들이나 입는 것이라 생각했다.
스터디, 학업, 학원, 아르바이트... 나의 20대는 늘 바쁘고 분주했다. 내 주변 친구들 모두 그렇게 살았고, 나름의 충분한 이유들이 있었다. 하지만, 비키니 사진 한 장 없는 20대는 아무리 생각해도 참 아쉽다. 다른 사람 신경 안 쓰고, 아니 오히려 시선을 즐기며 과감히 시도해보았더라면. 두려워하지 말고 마음껏 도전을 즐겼더라면. 내가 부족하다고 생각하지 말고, 이미 충분하다고 스스로를 더 사랑했더라면 어땠을까. 그것이 꼭 비키니가 아니어도 말이다.
어느덧 시간이 흘러, 아기 둘을 낳은 40대 아줌마가 되었다. 20대 때보다 더 크고 건장하지만, 이제야 자신 있게 비키니를 입는다. 아니, 비키니만 입는다. 알고 보면 원피스보다 비키니가 몸매를 더 커버해준다는 사실이 아니어도, 내가 입고 싶으면 입으면 된다. 주말이면 캘리포니아 햇살이 따뜻한 비치에 누워 일광욕도 즐기는 여유도 갖는다. 내가 비키니를 입든 말든, 알고 보면 아무도 나에게 신경 쓰지 않는다. 70대가 되어도, 내가 입고 싶다면 그냥 입으면 된다.
비키니 사진 한 장 없는 나의 20대에게 속삭여주고 싶다. 참 부지런히 열심히 살았다고. 그리고, 이젠 다른 사람 눈치 보지 말고 맘껏 하고 싶은 것을 하라고. 부끄러운 흑역사로 기록되더라도, 도전이 많은 삶이 나중에 추억할 것도 많을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