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at. <돈의 속성>
최근 뉴스에서 한 유명인이 후배들을 위해 고깃집에서 큰 턱을 쐈는데, 계산서가 천만 원이 넘게 나왔다는 기사를 보았다. 본인이 기분 좋게 쐈다니 문제 될 일은 아니지만, 기사를 읽는 마음은 묘하게 씁쓸했다. 돈의 크기는 각자의 상황에 따라 다르고, 수억 단위로 버는 사람에겐 천만 원이 별것 아닐 수도 있다.
하지만 한국 사회에서 “내가 살게요”라는 말은 단순한 호의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누군가 그 말을 꺼내는 순간, 분위기는 금세 달라진다.
고맙게 받아들이고 가볍게 넘어갈 수도 있는 일이지만, 많은 경우 그 호의를 ‘최대한 활용해야 하는 기회’로 여기는 듯하다. 그래서 평소라면 시키지 않을 가장 비싼 메뉴를 주문하거나, 잘 마시지도 않는 술까지 곁들이는 모습을 쉽게 본다.
선의로 시작한 호의가 어느 순간 ‘호구 잡힌’ 기분으로 변질되는 것이다.
나 역시 한국에서 온 지인을 보고 놀란 적이 있다. 본인은 한 푼도 내지 않으면서 남이 사주는 자리에서는 마치 잔치를 벌이듯 행동했다. 그때 깨달았다. 이건 단순히 성격 문제가 아니라 ‘돈을 대하는 태도’의 문제라는 사실을.
경험상, 여유 있는 사람일수록 오히려 남의 호의를 존중하고, 덜 부담 주려 한다. 반대로 늘 부족하다는 감각 속에 살아온 사람은 순간적인 기회를 놓치지 말고 뽑아내야 한다는 식으로 반응하는 듯하다. 하지만 그런 태도는 결국 관계를 갉아먹고, 장기적으로는 돈과 기회가 모두 멀어지는 결과를 낳는다.
김승호 님의 책 <돈의 속성>에 이런 말이 나온다.
“남의 돈을 대하는 태도가 바로 내가 돈을 대하는 진짜 태도다.”
친구가 돈을 낼 때 더 비싼 것을 시키고 회식 때 술을 더 주문하는 행동은 내가 돈을 어떻게 보고 있는지를 알려주는 척도다. 세금이나 공금 같은 공공 자산을 함부로 하는 사람은 자신의 돈 역시 함부로 대하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세금으로 만든 모든 공공시설, 도로, 안내판, 행사, 의료서비스 등에는 내 돈도 일부 들어 있다. 친구와 번갈아 가며 사는 밥값에는 내가 낼 때만이 아니라 상대가 낼 때도 내 돈이 포함되어 있다.
내가 존중받으려면 먼저 존중해야 하듯 내 돈이 존중받으려면 남의 돈도 존중해줘야 한다
- <돈의 속성> by 김승호-
한국 사회에는 “본전은 꼭 뽑아야 한다”는 실용주의가 깊이 뿌리내려져 있는 듯하다. 뷔페에 가면 반드시 돈값 이상을 먹어야 하고, 쿠폰은 한 장도 남기지 말아야 하며, 누가 사준다 하면 ‘이왕이면 제일 좋은 것’을 시켜야 합리적이라는 논리가 작동한다. 물론 이런 태도는 치열한 생존 경쟁 속에서 길러진 생활의 지혜일 수도 있다.
하지만 호의와 배려마저도 ‘최대한 활용해야 할 자원’으로만 취급된다면, 결국 남는 건 관계의 피로와 신뢰의 균열이다.
진짜 중요한 건 결국 배려다. 누군가의 호의를 받았다면, 그저 고맙게 여기고 적당히 받아들이는 것이 관계를 지켜주는 가장 현명한 태도다. 돈은 다시 벌 수 있지만, 한 번 잃어버린 신뢰는 쉽게 돌아오지 않는다.
누군가의 호의를 받았다면, 그저 고맙게 여기고 적당히 받아들이는 것이 관계를 지켜주는 가장 현명한 태도다. 돈은 다시 벌 수 있지만, 한 번 잃어버린 신뢰는 쉽게 돌아오지 않는다.
순간의 만족보다 함께 나눈 시간의 따뜻함을 기억하는 것, 그것이 돈보다 훨씬 큰 가치를 우리 삶에 남기는 법 아닐까.
+ 물론 꼭 한국 사람들만 그렇다는 뜻은 아니다. 다만 미국에 살다 보면 더치페이가 일상화되어 있어서, 누군가가 “쏜다”라는 문화 자체가 거의 없다. 그래서 상대적으로 한국에서 경험하는 ‘호의 뽑아먹기’가 더 크게 느껴졌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당연히 모든 한국인들이 그렇다는 건 아니니, 이 점은 오해가 없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