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왜 이렇게 술에 관대할까

: 예능과 드라마가 만든 ‘술의 감성화’

by 쨈맛캔디

한국만큼 술에 관대한 나라가 또 있을까?


술은 성인이 된 뒤 스스로 책임질 수 있는 선택이고, 속 깊은 이야기를 쉽게 꺼내지 못하는 관계라도 술 한잔 들어가면 마음을 터놓게 된다는 말이 있다. 취한 상태의 솔직함을 ‘진짜’라고 믿는 문화, 그래서 어느 모임에서든 술은 거의 필수처럼 따라 붙는다.


문제는 이 친숙함이 어느새 과하게 정상화되었다는 점이다. ‘한두 잔’이 아니라 밤새도록 ‘마셔라 마셔라’를 외치는 분위기, 예능과 드라마, 광고 속에서 반복되는 술 장면들은 너무 자연스러운 일상의 풍경처럼 자리 잡았다. 더는 개인의 취향이 아니라 사회 전체가 술을 부추기는 듯한 공기가 만들어진 것이다.


직장생활을 해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안다. 술 잘 마시면 쿨하고 매력 있는 사람으로 인정받고, 반대로 술을 못 마시면 분위기를 못 맞추는 사람, 눈치 없는 사람, 심지어 사회성이 부족한 사람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이 문화는 학교 MT나 직장 회식 같은 제한된 공간을 넘어서 각종 예능, 드라마, 유튜브 등으로 확장되며 더욱 자연스럽고 깊숙하게 일상에 스며들었다. 우리는 그 변화가 얼마나 빠르고 광범위하게 이루어졌는지도 모른 채 받아들이고 있다.


요즘 방송을 보면 출연자들이 술을 직접 제조해 마시거나 혼자 와인을 따고 맥주 몇 병을 비우는 장면이 자주 등장한다. 이런 모습은 “운치 있고, 삶을 즐길 줄 아는 어른”처럼 포장되지만 그 뒤에는 항상 술 PPL이 따라붙는다. 문제는 이런 콘텐츠를 아이들까지 아무 제약 없이 본다는 것이다. 신기하게도 담배는 엄격하게 규제하면서 술은 왜 이렇게 관대한 것일까?



드라마 속 술 장면은 특히 여성 캐릭터에게서 더 자주 등장한다. 낮에는 똑부러지고 프로페셔널하지만, 밤에 술이 들어가면 갑자기 귀여워지고, 애교가 늘고, 남자 주인공에게 기대고 장난친다. 마치 낮의 모습은 가식이고, 취했을 때가 진짜 모습이라는 듯한 이미지다. 술 앞에서 전문성마저 어린아이처럼 축소되는 모습이 반복되면서 이 프레임은 어느새 ‘한국 드라마의 문법’처럼 굳어졌다. 성인 여성이 술 취해 소파 위를 뛰는 장면이 ‘무해한 매력’으로 소비되는 것이 과연 자연스러운 일일까?


더 근본적인 문제는 술이 용서의 도구가 된다는 점이다. “술 마셔서 그랬대.” “취해서 실수한 거겠지.” 우리는 술을 이유로 화를 내도, 민폐를 끼쳐도, 헛소리를 해도 이해해준다. 문제는 이 관대함이 일상적 실수를 넘어 범죄 영역까지 이어진다는 것이다. 술을 마셨다는 이유로 ‘심신미약’이 적용돼 형량이 줄어드는 현실. 자신의 행동을 통제하지 못한다는 걸 알면서도 술을 마신 것인데, 왜 가중처벌이 아니라 감형이 되는 걸까? 이것이 한국의 모순된 관대함을 가장 명확하게 보여준다.


방송 또한 이 문화를 강화한다. 취한 상태로 촬영하는 것이 다른 직업에서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지만, 방송에서는 웃고 떠들고, 얼굴이 빨개지고, 말을 더듬는 모습을 그대로 내보내며 오히려 “일을 즐겁게 하는 모습”처럼 미화한다. 시청자는 이에 점점 둔감해지고, 술을 마시는 것이 너무 자연스러운 일처럼 받아들이며, 화면 속 술잔 하나에 다시 술이 당기기도 한다. 하루 한 병, 매일 한 병을 ‘멋진 일상’으로 여기는 순간, 사회 전체가 조용히 알코올 소비를 장려하는 구조가 된다.



결국 문제는 술 자체가 아니라 술을 둘러싼 한국 사회의 태도다. 미디어의 반복, 사회적 압력, 관대한 제도 등이 얽혀 한국을 ‘알코올 관용 국가’로 만들었다. 어느새 술은 일상의 일부를 넘어 문화적 규범이 되었고, 술 없는 선택지가 오히려 더 낯설어졌다.


술을 악으로 규정할 필요는 없다. 다만 지금의 과한 관대함은 분명 돌아봐야 한다. 적당한 규제와 균형, 술 없는 시간과 술 없는 콘텐츠가 자연스러운 선택지가 될 수 있는 사회. 이제 우리는 질문해야 한다.


“왜 이 정도까지 술에 관대해야 하지?”
“정말 이게 건강한 문화인가?”

지금이야말로 한국 사회가 술을 소비하는 방식을 다시 바라봐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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