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의 12년, ‘케이팝 데몬 헌터’, 그리고 <렛뎀 이론>
‘케이팝 데몬 헌터스’ OST ‘골든’의
작곡가 겸 가수 이재는
11살에 SM에서 연습생 생활을 시작했다고 한다.
새벽엔 연습실 불을 가장 먼저 켰고,
밤엔 마지막으로 나올 정도로
누구보다 성실하게 살았다고 한다.
소녀시대, 슈퍼주니어, 샤이니 등
내로라하는 스타들의 바로 옆에서 뛰었지만,
정작 데뷔라는 문은 끝내 열리지 않았다.
무려 12년동안 말이다.
이재는 솔직하게 말했다.
“SM과 나의 아이디어, 결이 맞지 않았다.”
당시 SM은 깨끗하고 맑은 보컬 톤을 선호했지만,
그녀는 두텁고 낮은 목소리, 178cm의 큰 키,
서양적인 얼굴형과 카리스마가
강한 분위기를 가진 사람이었다.
한국 여자아이돌에게 기대되는 전형적 이미지는
CD만큼 작은 얼굴, 여리여리한 실루엣,
밝고 맑은 목소리다.
하지만 이재는 이 틀과는 분명히
다른 결을 가지고 있었다.
실력은 뛰어났지만
‘한국 걸그룹의 프레임’ 안에는
쉽게 들어가기 어려운 사람이었다.
솔로로 데뷔하기에도 한국 시장은
‘아이유처럼 맑고 사랑스러운 여성 솔로’가 아니면
버티기 어려웠을 것이다.
그렇다고, 그룹으로 들어가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옆에 누구를 세워도 조화롭기보다
그녀의 강렬함이 먼저 튀어 보였기 때문에
결국 어울리기 어려운 오래된 연습생으로
남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미국 시장은 완전히 달랐다
한국이 ‘소녀시대’의
화사하고 정교한 아이돌 이미지를 선호한다면,
미국 시장은
비욘세, 리아나, 샤키라, 테일러 스위프트처럼
퍼포먼스, 카리스마, 개성 있는 보이스,
압도적인 존재감을 갖춘
여성 아티스트들을 주목한다.
한국에서 “조금 과하다”고 평가받는 특징들이
미국에서는 오히려 “무대를 찢는 힘”이 되는 셈이다.
그렇기에 더 이해된다.
한국 시스템 안에서 이재가 마주했을
수많은 좌절과 벽,
그리고 어린 마음에 새겨졌을 상처들이.
12년의 연습생 생활을 끝내고
계약 해지 후 택시에서 쏟아낸 눈물.
폭우 속에서 “나는 부족한 사람인가”라며
자신을 미워했던 감정들.
K팝 시스템 자체가 원망스러웠다는 고백들이
참 안타깝게 느껴졌다.
하지만 인생의 아이러니는 늘 그렇게 나타난다
그때는 절벽처럼 보이던 실패가,
시간이 지나면 자신만의 길로 이어지는 통로였음을
알게 되는 순간이 찾아온다.
그리고 마침내,
2025년 이재는 넷플릭스 애니메이션
<케이팝 데몬 헌터스> OST ‘골든’의
주인공 목소리가 되었다!!!
12년의 시간이
마침내 세계를 향해 빛으로 터져 나온 순간이었다.
그래서인지 그녀의 라이브 무대는
그녀의 목소리뿐 아니라,
그 뒤에 쌓인 서사까지 함께 울려 퍼지며,
더 큰 감동을 준다.
우리의 모습도 이재의 이야기와 크게 다르지 않다
회사에서도 비슷한 경험을 한다.
아무리 노력하고, 성장하고, 인정받으려 해도
‘결이 맞지 않으면’ 기회가 오지 않는다.
보스의 취향, 조직의 스타일, 회사 문화와
내가 맞지 않는다면,
실력이 부족하지 않아도 내 목소리는 묻히기 마련이다.
그러다 보니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자신을 탓하게 된다.
“내가 부족한가?”
“내가 더 바뀌어야 하나?”
“왜 나는 선택받지 못하지?”
하지만 이재의 이야기는 이렇게 말한다.
문제는 미운 오리새끼가 아니라,
오리가 잘못된 자리에 서 있었다는 것일 수 있다.
문득, <Let Them Theory>책에서 들려주는
지혜가 떠오른다.
(렛뎀 이론 - 인생이 ‘나’로 충만해지는 내버려두기의 기술 by 멜 로빈스)
사람들이 나를 싫어하거나 무시한다면 그냥 두세요.
Let Them.
그들이 나를 틀렸다고 생각해도 그냥 두세요.
Let Them.
그곳에 에너지를 쏟아
나를 억지로 바꾸려고 애쓰지 말고,
대신 Let Me.
나는 내가 갈 길을 선택하고,
나를 원하는 곳으로 향하세요.
나를 ‘맞지 않는다’고 말하던 자리에서는
쉽게 날개를 펼 수 없다.
하지만 나를 이해해주고,
나를 원하는 곳에서는
숨겨져 있던 강점이 단숨에 빛을 낼 수 있다.
이재가 마침내 자신만의 꽃을 피웠듯,
우리도 적절한 타이밍과 장소에서
반드시 빛날 순간이 찾아온다.
그러니, 스스로를 자책하지 말자.
우리가 실패라고 여긴 순간들은
사실은 '노는 판을 바꿔야한다는 신호'일 뿐이다.
이재가 12년의 긴 밤을 지나
‘골든’으로 세계를 울린 것처럼,
우리도 우리가 빛날 무대가 따로 있다.
열심히 했는데도 안 될 때,
“내가 틀렸다”가 아니라
“내 자리가 아니었다.”
그리고 더 당당하게 말하자.
Let them.
And let me go where I shine.
(그들이 어떻게 생각하든 그대로 두고,
나는 내가 빛나는 곳으로 가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