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우리는 여전히 백인들의 박수를 기다리는가

by 쨈맛캔디

요즘 유튜브나 방송을 보면,
한국 음식을 처음 맛본 외국인의

깜짝 놀라는 리액션 동영상들이 자주 올라온다.


매운 불닭볶음면에 눈이 커지는 순간,
설렁탕이나 김치찌개 한 숟가락에

한국인보다 더 깊이 감탄하는 표정,
심지어 한국 가수의 노래를 듣고

감동의 눈물을 흘리는 서양인들까지.


그런 장면을 보고 있으면 기특하기도 하고,
이른바 ‘국뽕’이 차오르며 마음이 묘하게 뜨거워진다.
그래서인지 이런 영상은 늘 높은 조회수를 기록하고,
훈훈한 댓글이 가득 달린다.

역시 “국뽕”콘텐츠만큼

사람을 기분 좋게 하는 것도 없다.




그런데 이 ‘인정의 순간’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영상 속 주인공도, 기사 속 인터뷰이도

대부분 금발, 백인, 서양인이라는 점이다.
유튜브 쇼츠는 물론, 해외 행사 취재에서도
마이크와 카메라는 거의 예외 없이 서양인에게 향한다.


정작 K-Pop과 K-Food의 실제 주요 소비층은
필리핀, 베트남 등 동남아시아, 인도, 중동, 남미 등
다양한 문화권의 젊은 세대들이다.
‘한국 문화를 실제로 소비하는 세계’와
‘한국 미디어가 보여주는 세계’ 사이에는
분명한 간극이 존재하는 듯 하다.


아니면, 어쩌면 그 영상들은
우리가 인정받고 싶은 대상에게 인정받는 순간을
더 강렬하게 담아내는 장치일지도 모른다.
칭찬도 ‘듣고 싶은 사람’에게 들으면 훨씬 더 짜릿하듯이



그래서 자연스럽게 이런 질문이 생긴다.
왜 우리는 여전히 백인의 놀람과 칭찬을 가장 강력한 인정처럼 받아들일까?


아마도 오랫동안 서구 중심 세계 질서 속에서 익숙해진
“백인의 평가 = 국제적 기준”이라는 공식을
우리도 모르게 내면화해왔기 때문인지 모른다.


선진국이 우리를 인정해줘야 비로소
글로벌 무대에 ‘정식으로’ 설 수 있다고 느끼는 마음.

이 심리는 해외 무대에서 더 뚜렷하게 드러난다.

한국인이 발표를 마치면
우리는 가장 먼저 서양 청중의 반응을 확인한다.
그들의 박수와 표정이

성과의 증명처럼 느껴지는 것이다.




결국 그 안에는
외부의 평가를 통해 스스로를 증명하려는

오래된 마음의 습관이 숨어 있는 듯 하다.
타인의 박수가 들려야만
우리의 가치가 더욱 선명해지는 듯한 감정 말이다.


그러나 서양, 특히 백인의 기준에 맞춰야

주류가 된다고 믿는 순간,
우리는 스스로를 중심에 두지 못하고
오히려 주변부에 놓아버리게 된다.


그리고 무엇보다 위험한 건,
그 과정에서 진짜 글로벌 시장에서 펼칠 수 있는

더 큰 기회들을 놓친다는 점이다.


결국 중요한 것은 균형이다.
서양인의 인정을 갈망하지 않으면서도,
특정 타깃만을 향한 문화가 아니라
진짜 ‘전 세계’를 품을 수 있는 시선을 갖는 것.


그 자리를 찾아가는 과정이야말로,
어쩌면 K-문화가 이제 걸어야 할
다음 단계의 여정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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