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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숲에도 꽃은 핀다.(연재)

2. 양철지붕의 기억

by 김은집

간 밤에는 조금 열어 둔 창문틈을 통해,

가을을 몰고 오고 있는 구월 비가 내리고 있음을 빗소리로 알게 해 주었다.

하늘에서 내려와 지붕 위에 닳고 처미밑으로 떨어지는 빗물 소리를 듣는 것이

쉽지 않게 된 것은, 콘크리트로 만들어진 아파트와 성능 좋은 방음창들 때문일 것이다.


밤새 내리는 빗물 소리를 자장가 삼아서 잠이 들 수 있었던 시절을 가진 기억들 때문인지,

빗소리를 듣고 있노라면, 머릿속 가득 그 소리로 채워지고 마음은 어느새 잔잔하게 흘러가는

한 줄기 강물처럼 되고 만다.


요즘에는 어디를 가도 양철로 지붕을 만든 집들은 거의 찾아볼 수가 없는 세상이지만,

나의 유년 시절에는 그런 집들이 제법 있었다. 양철지붕을 가진 집에서 태어 낳고, 그 지붕아래서

유년의 기억이 아직까지도 살아 있다.


비가 내릴 때, 양철 지붕은 빗소리를 타악기가 만들어 내는 소리들로 바뀌고, 그 소리들은 귀를 통해

심장을 두드리며 머릿속을 깨끗하게 비워 주는 듯한 요술을 부린다.


여름 한낮 툇마루 앉아, 양철지붕을 타고 떨어지는 빗물 소리, 밤새 그 지붕을 마치 타악기를 다루듯

강약을 가지고 떨어지곤 하든 빗소리들에 대한 기억들은, 침으로 잊히지도 않고 비가 올 때면

나를 일순간에 그리로 데려갈 때가 많다.


할머니가 돌아가신 후, 밤에 내렸던 양철지붕 위 빗물 소리에 잠이 깨었던 적들이 여러 번 있었던 것 같다.

유년에 고향을 떠난 후에는 더 이상, 양철지붕 위에 내리는 빗물 소리를 들어 본 적은 없다. 지금도

그 비슷한 소리를 듣고 싶을 때는, 느닷없이 기와지붕을 가지고 있는 사찰을 들려 보게 되는 이유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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