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답노트
2015년 1월 어느 무렵, 하얀 설원에서 조그만 점하나 가 되어 걸어 보고 싶다는 어처구니없는
낭만적 생각으로 처음 찾아간 그곳에는, 도착하자마자 끝없이 쏟아지는 눈들에 경이로움을 지나
무섭기까지 했었던 기억들이 머릿속에서 사라지거나 지워지지 않고 그렇게 저렇게 머릿속 어느
골짜기에 숨어 있다가, 해마다 찾아오는 겨울이 되면, 간혹 툭하고 어깨를 스치며 지나치는 길손처럼
한 번씩 스쳐가곤 했었다. 그래서일까?...
굳이 갈 일은 없었는데, 무언가에 끌리듯 홋카이도 대설산(다이세츠 산) 중턱에 있는 곳까지 다녀왔다.
8년 전은 내 나이 60이 되던 해이다.
그동안의 내 삶이, 그때 어느 순간, 마치 어느 노랫말 가사. 버람처럼 왔다가 이슬처럼 가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을지도 모르겠다. 가슴 한쪽이 뻥 뚫려 형용하기 어려운 공허감에 사로잡혀 있었을 것이다.
열심히 무언가를 쫓으며 열심히는 살은 것 같은데, 지나고 보니 처음 시작했을 때와 별반 달라진 것도 없다는
느낌이 가슴을 초라한 느낌으로 채워버렸는지도 모르겠다.
아무도 걸어간 자국이 없는 하얀 눈밭을 걸으면서, 지나온 발자국들을 되돌아보고 싶었던 마음,
그게 가능하다면, 달라질 것은 없다 하더라도 한 번쯤은 그래보고 싶은 순간이었을 것이다...
이번 일정도 별반 특별한 것들은 없었다.
하루 종일 눈 내리는 설원을 달리면서, 차창밖으로 떨어지는 눈빨들을 바라보면 달렸고, 숙소에
도착하면 벌거벗은 몸을 온천물에 담그고 앉아 있을 뿐이었다.
혹시라도 했던 어떤 생각은커녕, 머릿속 오답노트에 지나간 날들에 대한 어떤 기억들도 되새김질이
되질 않았었다. 지나간 시간들은 이미 사리지고 없는 것들이어서, 해마다 되돌아오는 계절처럼
반복되지 않음을 어이 모르겠는가...
인생이란 시간은 어쩌면 여름 한낮 자게 되는 낮잠 속 꿈일런지도 모르겠다.
기억 속에만 머물러 만져지지도 보이지도 않는 지나간 내 인생의 시간들처럼, 지금 이 순간들이
곧 그렇게 되어 갈 것이다.
그저 살아있음에, 누군가를 사랑할 수 있음에 감사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