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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숲에도 꽃은 핀다(6)

삼포 가는 길

by 김은집

왜? 갑자기 생각이 났는지는 모르겠다.

그것도 새해 첫날 아침, 봉지 커피 한잔을 타서 마시던 도중에 말이다.

황석영 작가의 삼포 가는 길이라는 소설을 읽었던 적이 언제였는지 기억조차 없다.

소설의 내용조차 이제는 가물가물하고, 그저 탈탈 털린 영혼을 가진 세명의 유랑자가

인생의 마지막 종착지로 삼포라는 곳을 찾아가는 여정의 이야기로 기억된다.


어쩌면 모든 것이 끝났다고 생각했었던 적이 있었다. 그때 나이가 겨우 사십 대 중반이었다.

할 줄 아는 게 월급쟁이가 전부였던 시절, 오랫동안 해왔던 일을 그만두고, 회사라는 울타리를

벗어나 , 황량한 들판에 버려진 것 같은 느낌으로 2001년이 시작되었던 때였다.


그리고 그 후 이십 년이 훨씬 지났고, 그때의 기억은 그저 지나간 수많은 과거의 시간들 중 하나가

되었을 뿐이다. 운이 좋았다. 힘든 시절의 기억이 그저 한 때의 회상으로 남겨 놓을 수 있게 되었으니

말이다.


잔잔한 바람처럼 어느 날 갑자기 찾아들었던 허전함이 있었다.

그 허전함 속에 녹아 있었던 무상함 때문에 힘들었던 시간들이, 점점 무뎌지고 담담해지는 시간들로

변해갔었다. 한 줄 두줄 낙서를 쓰듯이 마음을 써 보는 연습을 했었다. 나도 모르는 내 마음의 실체를

찾아서, 마치 삼포를 찾아가는 유랑자들처럼 말이다.


세상에 대한 원망, 분노 그리고 질투를 내려놓았다. 오로지 자신의 본모습을 객관적으로 그리고

거짓 없이 마주쳐 보려는 자세를 유지하려고 하고 있다.


어느 날부터, 글을 써 보는 게 힘들게 느껴지고 있는 중이다.

원래는 내 얘기를 쓰고 싶어서 시작은 했는데, 쓰다 보니 이건 아닌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세명의 유랑자가 삼포를 찾아가는 도중에 길을 잃고 우왕좌왕하는 것처럼, 길을 잃고 있는

중이다.


비록 소소하고 평범한 일상일지라도, 세상에 또는 사람들 마음속에 이로론 이야기를 쓸 수만 있다면

그러고 싶을 뿐이다. 눈에 보이는 세상의 들판이 온통 하얀 눈으로만 덮여 있어서 동서남북 방향을

구분할 수 없다 할지라도, 그 하얀 눈밭길을 뽀드득뽀드득 밣으며, 뒤에 오는 누군가를 위해 발자국을

남길 수만 있다면, 나의 삼포 가는 길이 그리 춥지 만은 않을 것 같은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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