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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아이슬란드의 인연

아찔한 출장의 기억

by 은덩

여행사 재직 시절... 매년 여름 아이슬란드 출장을 가는 것이 큰 즐거움이었다. 폐 속 깊숙이 들어오는 청량한 공기, 원시처럼 파란 하늘, 끝없이 펼쳐지는 생경한 풍경, 신선한 음식들... 한국의 뜨겁고 습한 여름을 피해 그곳으로 가는 핀란드 항공을 타는 것이 그 얼마나 큰 복이었는지 또 새삼 느끼게 된다.

아이슬란드 여행은 자연감상이 주 일정이기 때문에 현지 가이드가 없었다. 인솔자가 현지 가이드의 역할까지 함께하는 것이다. 2013년 처음으로 아이슬란드 출장을 갔었던 그때의 기억이 생생하다. 급박하게 아이슬란드 인솔을 배정받고 일주일 만에 그곳으로 떠나는 비행기 안에서 얼마나 떨었는지 모른다. 나는 심각한 방향치이기 때문이다.

여름이면 아이슬란드를 뒤덮는 루핀꽃

아이슬란드에서 길은 하나라고 걱정할 것 없다고 선배들이 단단히 교육을 시켜줬지만.. 레이캬비크 공항에 도착한 순간 이미 머릿속이 새하얗게 되어버렸던 것 같다. 믿을 건 아이슬란드 기사뿐인데 이분이 우리를 이상한 곳에 내려줘서 어디인지도 모를 곳을 한 시간이나 25명의 손님들을 끌고 헤맸던 생각을 하면 지금도 등줄기가 서늘하다.

4번째 아이슬란드 출장 때였다. 현지에 도착하니 마치 영화배우같이 생긴 기사 마그누스가 미팅 보드판을 들고 서있었다. 그리고 나를 반겨주는 원시 그대로의 청정한 공기. 시작이 좋았다.

아름다운 해변가 마을 비크

한가롭게 검은 해변을 산책할 때 사고가 터지고 말았다. 갑자기 밀려든 파도가 우리를 덮친 것이다. 마치 갈고리처럼 할퀴러 오는 파도를 피하려다가 손님들 대부분이 넘어지고 그중 한 분이 손목을 다치고 만 것이다. 상태를 보니 아무래도 부러진 것 같았다.

다이아몬드 해변

혼자서 이 사태를 어찌 수습해야 하나. 여행은 계속 진행되어야 하고 이 분은 병원에 가야 하는데... 그때 우리의 친절한 기사 마그누스가 물심양면으로 나를 도와주었다. 미리 병원 응급실에 연락도 해주고 내가 손님들을 인솔하는 사이 환자 손님을 케어해주기도 하고, 일정이 모두 끝난 뒤에도 버스로 병원을 왔다 갔다 해주는 등, 게다가 의기소침해 있는 나에게 용기를 북돋아주는 정신적 멘토의 역할까지....

마그누스가 아니었다면 나는 진짜 그 낯선 곳에서 울어버렸을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그와의 인연이 시작되었다. 그 이후의 여름 아이슬란드 여행에서의 나의 기사는 무조건 마그누스였다. 생각도 비슷하고 대화도 잘 통하고 진짜 신기한 일이었다. 남편이 없었다면 진지한 만남을 가질 수도 있었을 것 같다. 하지만 의외로 나는 보수적인 편이라 마그누스와 나는 그냥 아이슬란드에서만 만나는 소울메이트인 걸로...

잘 지내고 있는지 오늘은 그에게 페이스북 메시지를 한번 보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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