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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풍경이 되는 사람이고 싶다.

여행사 직원의 개별 여행

by 은덩

우리 여행사는 휴가가 많았다. 합치면 한 달 정도. 그리고 해외 출장을 다녀오면 하루 휴가가 주어졌다. 바쁜 시기가 오기 전에 봄, 겨울로 장기 여행을 하는 것이 우리 직원들의 일정의 룰이었다.


2016년 3월, 그야말로 자유부인이던 시절 일본 휴가를 기획하게 되었다. 오키나와 왕복 항공권을 싸게 구입했었나???!! 일본은 자주 가던 곳이라 특이한 곳에 가보고 싶었던 건지 아니면 여행사 직원의 도전정신이었는지..... 남들 다가는 오키나와는 맛만 보고 모험심을 부려 일본 열도의 최남단 아에야마 제도까지 가보기로 했다.

대만하고 더 가까운 곳이다

짧은 오키나와 본토 여행을 마치고 드디어 동양의 하와이라고 하는 야에야마 제도로 이동하는 날, 이동에 반나절이 걸릴 것이란 예상과 달리 역시 여행이란 예측이 불가능한 법. 아침 일찍 길을 나섰지만 비행기 타고 배 타고 하다 보니 결국 어둑어둑 저녁밥 먹을 때쯤 이리오모테 섬 숙소에 도착하고야 말았다.


우리나라의 울릉도 혹은 독도쯤 되는 그곳엔 외국인 여행자들을 찾아보기가 힘들었고, 그래서 오로지 일본어만 가능한 곳이었다. 순전히 나의 무모함과 남편의 짧은 일본어 실력으로 헤쳐나갈 수밖에...

이리오모테 섬에서는 민숙이라는 곳에서 숙박을 하게 되었는데 우리나라의 게스트하우스처럼 식사와 액티비티를 모두 제공하는 매우 합리적인 곳이었다.


이리오모테 섬의 대표적인 액티비티, 맹그로브 투어에 참여하게 되었다. 구성원은 일본인 부녀와 우리 부부 그리고 스텝 2명이었다. 자기 덩치만 한 커다란 배낭을 메고 앞으로 갔다가 뒤로 갔다가 바삐 움직이며 꼼꼼하게 설명을 해주는 것은 물론 중간중간 사진까지 찍어주는 가이드 켄, 여행 후에 사진 CD까지 만들어 준다는 이야기에 빙그레 웃음이 났다.

한방에 성공한 사진. 이 사진만 보면 행복하다. 젤 오른편이 가이드 켄

그뿐만이 아니었다. 숲 트레킹 후에 도착한 폭포 앞에 자리를 잡더니 배낭에서 주섬주섬 살림을 꺼내놓는다. 휴대용 버너, 코펠, 그릇 등을 꺼내더니 국수를 삶고 페트병의 육수를 데워 뚝딱뚝딱 오키나와 전통 국수를 만들어내었다.

"오~~ 우리 인솔자보다 훨씬 낫다~~" 그 정성에 감복해 꽤 양이 많았던 국수를 남김없이 국물까지 해치웠다.

진정 자유로운 시간이었다. 한대 장만하고싶었다

산에서 내려와 가진 휴식시간, 이번에도 배낭 속에서 버너와 코펠을 꺼내더니 물을 끓이기 시작했다. 소박한 작은 접시에 과자까지 담아서 차와 함께 정갈하게 나누어주는데 그 정성과 세심함이 감동적이었다. 물론 상황은 다르지만 미얀마 일출 때 손님들을 위하여 준비했던 티타임 장면이 오버랩되면서 나도 접시에 간식까지 준비했어야 했나? 괜한 경쟁심이 발동되기도 했다. (우리는 일출이나 일몰 시 뜨거운 물 보온병에 커피, 차 등의 티백과 종이컵을 준비하곤 한다).

크래커에 잼까지 올려주다니....크...역시 세심하다..

오키나와&아에야마 여행은 유독 함께했던 사람들 기억이 많이 난다. 능숙하고 친근하게 우리를 안내해준 이리오모테 섬의 가이드 켄, 더듬더듬이었지만 우리와 교류하려고 애썼던 일본인 부녀, 한류에 푹 빠져있었던 타케토미 섬 게스트하우스의 여주인장, 아시가키 섬에서 스노클링을 할 때 외국인인 우리 둘만을 위하여 특별히 함께했던 영어 가이드 등등.

나중에 우리 아들 액티비티할 정도로 크면 이리오모테섬에 꼭 다시 가보고싶다..

아름다웠던 타케토미섬

오키나와&아에야마 여행을 앞두고 읽었던 책에서 내 머리와 마음을 강렬하게 때렸던 구절..'여행을 다니며 항상 염두에 두는 것은 그 지역의 풍경을 내 것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누군가와 만나야 한다는 것이다. 누군가를 만나고 그 사람을 좋아하게 되었을 때 풍경은 비로소 펼쳐지고 깊이가 생긴다'


나도 언젠가는 내 나라 풍경 좋은 어느 곳에서 그 누군가가 되어보고 싶은 작은 꿈을 키워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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