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일에 정신을 빼앗겨 갈팡질팡하거나 정신을 흐리는 일이 없게 되었음을 뜻한다는 불혹.
2023년 새해에 나는 40살이 되었다. 불혹이라는 말의 뜻이 무색하게도 그 어느 때보다 혼잡한 새해를 맞이하는 기분이 드는 건 올해부터 바뀌는 나이계산법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어찌 되었든 새 나이계산법이 아니었다면 40살을 맞이하게 된 나는 그 어느 때보다 일찍이 신년계획을 써 내려간다.
그 해가 그 해일 것임이 분명한데도 1월 1일을 밝히는 붉은 해가 떠오르면 세상이 나에게 무언가를 다시 시작할 수 있게 기회를 주는 것만 같아 연말부터 나는 들뜬 마음으로 새해를 기다린다.
지난해 신년계획에 거창하게 집어넣고선 시작도 못한 일들에 밑줄을 쭈-욱 그으면서 올해 이 계획을 다시 넣을지 말지 고민하고 한, 두 달은 열심히 지키다가 어느새부턴가 한 것도 안 한 것도 같은 찜찜한 기분으로 일 년 내내 남은 내 발목을 붙잡고 있던 계획들까지 하나씩 훑어가면서 올해는 거창한 계획은 다 뒤로하고 새롭게 장만한 3년 다이어리에 영어, 자격증, 운동 3가지를 크게 적어 넣었다.
해년마다 계획 최우선 순위에 들어가던 다이어트를 운동이라는 이름으로 바꾸었다. 다이어트는 한해도 성공한 적이 없었기에 불가능 영역에 가까운 다이어트 때문에 또다시 혼돈의 카오스에 빠질 불혹의 나를 건져 올리기 위해 운동이라는 말로 그럴싸하게, 두리뭉실하게 말바꿈을 했다. 그리고 운동이라는 글자 옆에 괄호를 그리고 그 안에 꾸준함이라는 글자를 적어 넣었다. 매일 운동하기 같은 족쇄도 차단하기 위해 적어 넣은 꾸준함이라는 이 글자는 매일 하라는 것도 일주일에 몇 번 하라는 것도 아닌 한 달에 한 번이든 두 번이든 열 번이든 꾸준히 1년을 하면 성공!이라는 안도감을 선사하며 절로 미소가 지어진다.
평소 같았으면 1월 1일부터 시작하던 영어공부도 이번엔 11월에 시작했다. 신년초에 시작해서 흐지부지 되는 것 때문에 일 년을 내 발목에 찬 모래주머니 같은 그 영어공부를 작심삼일 20번은 거칠 시간을 허락해 주기 위함이다.
어찌 됐든 할 수 있는 일들로 심플하게 세워둔 3가지 계획은 종전보다 내 마음의 짐을 가볍게 해 주었지만 불혹으로 맞은 아침은 결코 밝지만은 않았다. 출산을, 양육을, 코로나를 핑계로 십수 년간 서너 번 찾아간 엄마의 납골당을 이번 기일에는 꼭 가보겠다고 다짐을 해서인지 엄마 기일이 다가올수록 유독 마음이 춥고 시렸다.
데려갈 아이들에게 돌아가신 외할머니 이야기를 하다가 할머니는 몇 살에 돌아가셨냐는 물음에 엄마의 나이를 세어보니 마흔 중반 못 넘기고 돌아가신 내 젊은 엄마 생각에 눈물이 흘렀다.
살아온 40년 짧지도 길지도 않지만 올망졸망 세 아이 키우다 다 지나가버렸을 엄마의 젊은 날이 못내 죄스럽다. 내가 더 열심히 살아야지 하다 보니 다이어리 첫 장의 3가지 목표가 저리도 가벼워 보인다.
와상환자로 지내던 엄마의 병상생활이 나에게는 참 길고도 험하고 벗어나고만 싶었는데 그 젊은 나날의 3년이나 누워만 있어야 했던 엄마의 하루하루는 얼마나 짧고도 속절없는 시간이었을까.
얼마 전까지는 생각이 났었는데 이제는 기억나지도 않는 엄마의 휴대폰 번호를 떠올려보며 사랑하는 이들에게 더 많이 표현하지 못하고 지나가버린 시간이 가슴을 찡하게 한다.
모처럼 보고 싶던 친구에게, 사랑하는 아빠에게, 자주 못 보는 동생에게 전화를 걸어 안부를 전한다. 일 년에 한두 번 들을까 말까 한 친구의 목소리도 한치의 변함이 없고 굴비 확성기에 오버랩되어 더 크게 더 크게 대답하는 아버지의 목소리도 정겹다. 참 소중한 이 순간을 떨어지는 낙엽처럼, 내리는 비처럼 당연하게만 여기며 살았던 나의 그 시절이 불혹의 나를 여전히 뒤흔드는 가장 후회되는 순간이다.
2024년 여전히 내가 글을 쓰고 있다면 올 한 해 가장 뜨겁게 사랑하고 소중한 이들과 많이 웃었기를.. 매 순간 하루하루가 감사였음을.. 그래서 후회되는 순간이 없었다고 고백할 수 있었으면 한다.
그리고 새로운 나이계산법으로 또 한 번 주어질 나의 불혹의 일 년을 더 이상 갈팡질팡하거나 정신을 흐리는 일 없이 맑게 맞이할 수 있기를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