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연 우리는 실패했을까?
01 실패 - 과연 우리는 실패했을까?
우리는 지금까지 진짜 실패를 경험해보긴 했을까? 공중파 예능만 보더라도 MC들이 미션을 성공하지 못한 게스트들에게 연거푸 실패를 준다. 거기에는 자막도 한 몫하며, 오감을 통하여 그가 실패했음을 알린다. 그들이 뭘 그렇게 잘-못했던 걸까? 하루는 캐네디언 친구와 수능 얘기를 하면서 나의 고3 때 수시를 통해 지원한 대학에서 태어나 처음 인터뷰라는 것을 보았던 것과 결국 수능에서 최저 등급을 맞추지 못해 원하는 대학을 가지 못하였던 내 과거의 실패담을 얘기해 주었다. 친구는 놀라며, "실패? 그런 것을 우리는 실패라고 하지 않아.. 그건 그저 네가 지금 까지 온 길의 과정일 뿐이지."라는 말을 해주었다. 달리는 차 안에서 나는 작은 미션 하나에도 '실패'라고 외치는 한국인들 틈에 내가 실패의 정의를 잘못 알고 있었음을 생각하게 되었다. 캐네디언 그들은 실패라는 단어를 정말 인생의 끝자락에서도 쓰고 싶지 않아 한다. 실패란 다시는 복구할 수 없는 스스로 일어날 수 없는 그 순간에만 어쩌면 써야 할지도 모른다.
캐나다 공립학교 교직원이라는 타이틀로 꽤나 다양한 연령대의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다. 코엑스에서 하는 큰 규모의 교육 박람회장이나 유학원 또는 이주공사를 통해서 아니면 지인을 통해서 연락이 닿는 사람들까지. 10대부터 50대 후반까지 생각보다 저만의 배경을 가진 사람들은 진지하게 또는 호기심으로 유학, 이민을 고민하고 있었다.
게 중에는 더 나은 미래를 찾겠다는 사람, 본인은 이 땅에서는 더 이상의 미련이 없다는 사람, 그리고 스스로를 실패했다고 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놀랍게도 다시 한국으로 돌아오고 싶다는 사람은 열에 하나 정도였다. 휴직계를 내고 가는 공무원이나 대기업의 사람들 정도. 하지만 그들 역시 일단 잘되면 캐나다에서의 정착을 희망했다. 적지 않은 나이지만 아직 인생의 전반부를 살고 있는 나로서는 사회 경험이 많은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던 기회였다. 내 집 말고 다른 집 사정을 알 수 있는 직업은 흔하지는 않다. 유학을 가는데 왜 다른 집 사정을 알아야 하는지 궁금해 할 수도 있겠지만, 어찌 되었든 유학이란 기본 재정 사항이나 가족들의 저마다의 의견이 모아져 결정되는 중요한 선택이다. 나이가 어리면 부모님의 지원이 필요하고, 사회초년생은 현재의 위치와 각자 가지고 있는 배경이 그리고 30,40,50대이고 기혼자라면 함께 가는 가족들의 동반 여부가 영향을 준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희망적으로 우리를 찾아오지는 않는다. 그러나 희망을 찾기 위해 우리를 만난다. 그 희망을 여기 한국땅에서는 찾기가 힘든 것이라 결정한 것이다. 그들을 만나며 나의 가치관에도 많은 변화가 있었는데 가장 큰 부분은, 내가 판단했던 성공의 기준이 또 다른 누구에게는 고통이자 두려움이었다는 것이다. 한국에서 내로라하는 좋은 학교를 나와 이름만 대면 아는 기업에 팀장, 과장이라는 분들이 찾아와 한숨을 쉬며 말한다. 여기에서는 발전이 없다고. 몇천 명을 뚫고 어렵게 들어간 공기업에 다니는 사람이 와서는 말한다. 팍팍하고 숨 막히는 그곳에서 벗어나고 싶다고. 나는 물었다. 그렇게 힘들게 들어간 곳이면 분명 본인에게 목표가 있었을 것이 아니냐고. 그들은 이렇게 답한다. "그 목표를 나는 이루었다."
무엇이 우리를 실패했다고 만들고 있을까? 작은 것 하나 이뤄내지 못했다고 "실패"라는 단어를 남발하는 한국의 미디어와 문화에서 시작된 것일까? 아니면 타인이 만든 그럴듯한 성공의 정의가 우리를 실패했다고 자각하게 하는 것일까? 그럼 캐나다 그 땅에서는 과연 무엇을 성공이라고 부르는 걸까.
짧지도 길지도 않은 기간 동안 내가 만났던 모든 사람들에게 전하고 묻고 싶다.
과연 우리는 실패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