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와 무료 사이

선택은 그대에게 달렸다.

by 새벽 별

05 자유와 무료 사이

선택은 그대에게 달렸다.




아래 5개의 항목 중 세 개 이상 손가락을 접게 된다면 당신은 이 곳, 캐나다와 잘 어울린다.


1. 나는 소음 하나 없는 고요한 주말을 꿈꾼다.

2. 퇴근 후에는 자기 계발보다는 온전한 여가를 원한다.

3. 연인 또는 친구와의 잦은 연락은 나를 지치게 한다.

4. 경쟁보다는 공생하는 평화주의자이다.

5. 저녁식사만큼은 가족들과 함께 하고 싶다.



캐나다라서 캐나다만 가능한 이야기는 결코 아니다. 그렇지만, 한국의 평범한 학생/직장인이라면 이 5가지를 모두 갖기란 꽤나 어렵다.


첫 번째. 나는 소음 하나 없는 고요한 주말을 꿈꾼다. 아파트는 교통이나 생활이 편한 대신 자연스레 소음에 노출되어있고 안팎으로 전자제품들이 제 각각 존재감을 힘껏 드러내고 있다. 캐나다는 반대로 작은 소리만 나도 무서울 지경이다.



두 번째, 퇴근 후에는 자기 계발보다는 온전한 여가를 원한다. 자기 계발에는 두 가지 유형이 있다. 자발적 계발 그리고 여론적 계발. 계발이라면 지식, 직무, 기술, 능력을 향상하는 것인데 이게 진짜 내가 원하고 필요로 해서 하는 건지 (자발적 계발)

아니면 남들이 하니까 해야 할 것 같아서, 뭔가를 하지 않으면 나를 마치 o2를 소비하는 열정 제로 인간으로 보는 (여론적 계발) 차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부분에서 열차 타는 문화가 만들어진다.


칙칙폭폭 열차가 출발하고 사람들이 열차에 탑승한다. 종점은 하나인데 탑승자는 늘어만 가고 결국 그 안에서는 무한 경쟁이 이루어진다.

결국 종착력에서 모두 좁은문을 어떻게 서라도 비집고 나오려 하지만 부딪치고 상처나 버린 몸과 마음으로 행선지에서 즐기는 것도 잠시, 다음 열차가 도착한다.

한국의 어제와 오늘이다. 부디 내일은 아니길 바라지만 최근 언택트 시대의 영향으로 방구석 배움의 한계를 넘은 것 같다. 이제 정해진 시간에 맞춰 열차가 오는 구조를 넘어 내가 원하는 시간에 열차를 출발시키는데 밤낮이 없고 정도가 없다. 문자 그대로 한계가 없다. 이것은 독인지 금인지 경험해본 자들만 알 수 있다.


캐나다는 자발적 계발과 여론적 계발의 비중이 7:3 정도이다. 그 이유는 Continuing Study 번역하면, 평생교육에서 확연이 눈에 띈다. 예술과 인문학, 문예 창작, 건강 및 사회과학이 인기 있는 수업들이다. 한국은 시대 트렌드가 반영된 과목들이 교육 시장에 파도처럼 들어왔다 또 금세 빠져나간다. 또한 캐나다와 달리 사설 기관에서 진행되는 교육 콘텐츠가 너무나도 많다. 지금은 코딩, 시각 디자인, 헬스(개인 트레이너) 시대로 일단 파도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여가의 정의는 다르지만 생산적인 무언가를 하지 않고 티브이를 보고 있던 것이 유일한 자유시간이 되었다.



세 번째, 연인 또는 친구와 잦은 연락은 나를 지치게 한다. 캐나다의 평범한? 연애 이야기를 처음 들었을 땐 설마라는 말을 내뱉었다. 삼일에서 길면 일주일까지도 연락의 공백이 아무렇지 않다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친구에게, 한쪽이 무언가 마음에 안 든다거나 토라져서 연락을 안 하는 건 아니냐고 물었더니 그런 것보다는 서로의 일이나 학업 같은 본인의 생활패턴에 집중하기 위함이라 했다.

한국에서 평범한 커플이 일주일 연락이 끊긴다는 건 잠수를 탔거나 납치된 정도의 극단적 상황일 것이다. 평범한 커플이라면..



네 번째, 경쟁보다는 공생하는 평화주의자이다. 2번 자기 계발 타입에 대해 기차를 들먹이며 말한 부분 때문에 경쟁 밀도를 이미 충분히 알고 있다. 한국은 빠른 경제 성장과 함께 서로 물어뜯고 맛보고 즐길 줄 모르는 사회구조를 쌓아왔다.

제 각각의 평화 관점이 다르다. 그만큼 자유를 찾지 못하는 사람들이 최소의 평화를 극대화시킨다

내가 제일 싫어하고 못하는 것은 말싸움이다. 일방적인 공격을 받는 건 싫고, 난 누굴 이기고 싶은 마음도 없다. 오히려 질 때 더 후련하지 않은가?


다섯 번째, 저녁식사만큼은 가족들과 함께 하고 싶다. 물론 캐나다에도 불이 꺼지지 않는 사무실이 있다. (많은 오피스가 불을 켜고 퇴근하기도 한다. 범죄 예방 차원이라 하기도 한다) 그렇지만, 앞서 04편. 진정한 개인주의란? 의 글처럼 모두가 가족 중심 사고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회식보다는 가정에서 가족들과의 시간을 중요시하며, 업무는 회사 시간에 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집으로 일을 가지고 오는 게 사실 너무 익숙해져 버린 탓에 일단 집에 왔지만 초반에는 일을 이어해버리고 만다. 캐나다의 '초 가족 중심'이 불만족스러운 시기가 보통 한국인이라면 분명 있을 것이다. 그러나 한두 달 사이 분위기에 맞춰지고 깨닫게 된다. 회사 외적으로도 보내는 나의 이 윤택한 시간을 왜 이제야 누리게 되었는지를.



손가락을 한두 개만 접은 사람은 사실 캐나다가 맞는지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져야 할 것이다. 천성이 일을 좋아하고 '나의 성장'이 인생의 활력이자 목표라면, 캐나다의 고요함 속의 단단한 가족중심 체계에서 사투를 벌이게 될 것이다. 몹시나 무료하고 발전 없다 느낄 수 있음을 그리고 그것이 나를 나태하게 만드는 지도 충분히 이해한다. 나 역시 첫 6개월은 한국의 빠르고 전투적인 환경이 너무나도 그리웠던 때가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것이 전쟁터의 용병이 하나의 목표를 위해 너무 많은 것을 희생하는 것과 같다고 생각한다. 고국과 가족을 위한 것일지라도 멀리서 보면 그곳은 결국 모두에게 고통을 주는 전쟁터임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