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리서 보면 희극 가까이서 보면 비극
06 이민 2세로 산다는 건
멀리서 보면 희극 가까이서 보면 비극
성인이 된 후 해외 생활을 해본 사람들은 한 번쯤 교포, 이민 2세를 부러워하는 시기가 있다. 그들은 자유자재로 쓰는 영어, 거기에다 부모님의 언어로도 기본 의사소통이 가능한 실력이다. 동양인의 얼굴로 영어를 퍼스트 랭귀지로 배운 친구들이 특히나 내 부러움의 대상이었는데 그들의 영어실력도 실력이지만 무엇보다 언어적 사고가 탐이 났다.
사고만큼이나 신규가입이 어려운 것이 없다.
이런 이유로 이민 2세 친구들은 동경의 대상이었다. 내가 가지고 싶다고 노력해서 얻어지는 것도 아니고, 직업처럼 배워서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그저 부러워만 하는 존재였는데. 일방적인 착각이었을까? 이기적인 결론이었을까? 겨울의 어느 날 그토록 동경의 대상이던 '교포'에 대한 관념이 바뀌고 만다. 환경과 정체성의 혼동을 겪은 룸메이트들의 생생한 증언으로부터 나는 되려 그들에게 연민과 측은함을 느껴버린 것이다.
나의 룸메이트들은, 한 명은 중국계 캐네디언 또 다른 한 명은 대만계 캐네디언이다. 둘은 초등학교 저학년 때 부모님과 함께 캐나다 땅을 처음 밟았고, 학교에 입학한 뒤 한동안은 극도의 우울증과 부적응으로 다소 힘든 시간을 보낸 것이 기억에 난다고 한다. 이후 영어로 대화하고 수업하는 것에 어느 정도 익숙해져도 왠지 모를 거리감에 진짜 친구라고 부르는 몇몇은 모두 비슷한 생김새였다고.
선택해야 하는 문화가 너무 양극이라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기에는 괴리감이 단시간에 만들어졌고, 언어적 사고 역시 생각을 넓히는데 일조하였으나 양쪽 언어 모두 100% 편하지 않은 현상이 발생하고 말았단다.
제삼자로 먼발치에서 본 그들은 유창한 언어 실력과 다민족 국가에서 어릴 적부터 넓은 시야를 확보한 특혜자인 줄만 알았지 정작 그들은 어느 하나 내 것이라 주장하지 못하는 주인 없는 정체성으로 성장하며 많은 고초를 겪었던 것이다.
교직원으로 근무하며 대략 300명 이상의 신혼부부, 미취학 아동의 부모님들을 상담했다. 그들은 아이들의 교육 문제를 1순위로 두고 캐나다행을 선택한다. 한국의 과열된 교육을 피해 아이들에게 넓은 기회를 주고자 떠나지만 이제 아이들에게는 그곳에서의 어려움이 어쩌면 어린 나이에 겪게 되는 선택하지 않은 첫 도전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