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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벽 별 Dec 03. 2019

프라하 살이 10일 차

열흘 즈음 풀린 망아지의 고삐


프라하 살이 10일 차, August 10th, 2019


[생생 정보통 일일 리포터]

늦잠을 잤다. 한 1시간 정도 평소보다 늦게 일어났다. 하지만, 오늘은 임무가 주어진 날이라 서둘러 움직여야 한다. 데이비 츠카 역 근처 파머스 마켓에서 영상 하나를 찍어와야 한다. 이 마켓은, 매주 토요일 오전 8시부터 오후 2시까지 열리며 로컬 농장에서 온 싱싱한 식재료를 판매하고, 맛난 먹거리 그리고 공연이 함께 하는 곳이다. 앞에서 언급한 오늘의 중요한 임무는 나에게 방을 서블렛 한 분이 생생정보통 프로그램에 체코의 길거리 음식을 소개하는 영상을 제출해야 하는데 본인이 현재 한국에 있어 특정 음식에 대한 영상 촬영을 부탁한 것이다. 그 음식의 이름은 Palacinky (팔라친키)이며, 멘트까지 덧붙여서 영상을 완성해 주기로 약속했다. 바로 이렇게. “팔라친키는 체코식 팬케익이에요. 과일이나 초콜릿을 넣어 디저트로 먹기도 하고 치즈나 햄을 넣어 식사 대용으로 먹기도 한답니다.” 포스트잇에 적고 나름 중얼중얼 연습까지 하면서 갔다.


비가 촉촉이 내렸지만 꽤나 많은 사람들이 마켓에 있었고 활발하게 거래가 이루어지는 모습이 보였다. 역시 이 곳도 사람 사는 곳이다. 은은한 커피 냄새도 솔솔 나는 게 토요일 아침을 깨우기에 이만한 곳이 없다 생각했다. 나는 미션을 성공시키기 위해 눈을 힘껏 뜨고 팔라친키를 찾아다녔다. 한 7분 둘러봤을까, 사람들이 줄을 서 지켜보는 그 앞에는 한 소녀가 현란하게 철판 위에서 체코식 크레페를 만들고 있었다. 살짝 끝에 줄을 섰고, 앞에 계시던 아주머니께 ‘팔라친키인가요?’ 여쭤보았다. 나를 보시고는 재밌다는 듯 또는 귀엽다는 듯(나만의 생각일 수도 있다) 웃으며 고개를 끄덕여 주셨다. 햄&치즈 팔라친키를 자연스럽게 주문하고 휴대폰 카메라로 조리과정을 촬영하였다. 생각보다 빨리 만들어진 팔라친키 덕에 소개 멘트는 하지 않지 못하였다. 추후 따로 녹음을 얹을 생각이다. 어쨌거나 미션은 성공. 마켓에 마련된 벤치 중 비어있는 한 곳에 앉았다. 빗줄기가 굵어졌다. 꿋꿋이 우산을 쓰지 않고 먹으려 애를 쓰고 있었지만 정수리에 떨어진 큰 빗방울, 그리고 팔라친키가 점점 촉촉에서 축축으로 가는 과정이 안타까워 우산을 폈다. 어느새 옆에는 두 커플과 돌 정도 지난 아기를 안은 한 여성이 옆에서 베트남식 샌드위치인 반미를 먹고 있었다. 나에게 무엇을 먹고 있는지 물어보길래, (영상을 위해) 준비했었던 멘트로 아주 유창하고 맛깔스럽게 영어로 설명해주었다. 이방인이 설명하는 체코 식 팬 케이크 소개를 듣고 꽤나 놀란 것 같았다.

서로 어디에서 왔는지 체코에서 뭘 먹어야 하는지 대화를 나누다 그들이 깔라마리(식감이 부드러운 식용 오징어) 구이를 먹으러 간다고 하는 것을 듣고 얼른 쫓아갔다. 줄이 긴 것을 보니 이 집은 맛집이다. 사실 깔라마리가 맛이 없을 수가 없다. 구우면 다 맛있는 것들 예를 들어, 새우, 연어, 오징어 등을 파는 집이었다. 차례를 기다리며 나를 깔라마리로 인도해준 헝가리에서 와서 프라하에서 3년을 살았다는 여자와 대화를 했다. 그녀는 헝가리 부다페스트에서 왔으며 조만간 스페인으로 이동한다고 했다. 짧은 오렌지색 머리에 스타일리시한 그녀는 한국과 일본에 대해서 관심을 보였고. 언젠가는 한국에 꼭 한번 와보고 싶다고 그리고 언어를 배워보고 싶다고 말해주었다. 한국이라는 나라가 여러모로 전 세계인들의 주목을 받고 있다는 사실은 참 뿌듯했다. 각자 그들이 한국을 접하게 된 경로나 관심 갖고 있는 분야는 다르겠지만 5-6년 전, 캐나다에서 어학연수하던 시절, 한국사람이라고 하면 누구나 강남스타일 춤, 일명 ‘말 춤’으로 인사를 하던 친구들. 그때 그렇게 싸이에게 고마울 수가 없었다. 지금은 BTS(방탄소년단) 노래가 흔한 체코 레스토랑에서 흘러나오는 것을 어제 점심 먹다가 듣고 놀란 나였다.    


오전 생생정보통 미션을 끝내고 숙소로 돌아와 유튜브 편집에 몰입하였다. 사실 한달살이 3일 차에서 10일로 넘어온 것은 게으름이란 이름 아래 새로운 것을 도전하고 있던 탓이었다. 유튜브로 수입을 내볼까 하고 시작했다기보다는 일상을 영상으로 기록하고픈 마음에 시작했고, 지금 한 달이 지난 뒤 돌아보면 수증기처럼 날아갈 수 있을 내 기억을 증류수를 내려 작은 병에 넣어놓은 것 같다. 표현은 조금 거시기 하지만,  지금 이것보다 더 나은 표현은 찾을 수가 없을 것 같다. 영상을 보면, 딱 한잔씩 내려마시고 싶을 정도로만 그때의 기억을 꺼내 마신다.  





프라하 살이 11일째, August 11th, 2019


[고삐가 풀린 망아지]

고삐가 풀린 망아지라는 동화책을 읽어 본 적 있는가? 그 망아지는 오늘 나 자신이었다. 그리고 나는 감히 그 동화책의 주인공이 되었다.

프라하에 오기 전, 다짐 또는 나름의 계획을 몇 개 세워 놓았다. 어떤 거창한 것은 아니었다. 내가 딱히 여기 타국에서 거창하거나 위대한 것을 할 수는 없으니까.

딱 세 가지를 마음속에 다짐하였다.

1.    미니멀리즘이 되자.

2.    최대한 재활용하자

3.    건강하게 먹고 마시자

프라하에 도착한 지 11일이 지났다. 지금까지 절제하고 타이르며 잘 실천하고 있었으나 놀랍게도 자제력이라는 나사가 살짝 느슨해진 것일까? 시작은 베트남 쌀국수로 시작하였다. 여기부터는 무난하지 않은가. 분명 아침을 9시에 건강하게 먹고 나왔음에도 불구하고 베트남 쌀국수와 함께 라즈베리 에이드를 맛있게 먹어주었다. 이 베트남 음식점은 입구는 작은데 지하에 테이블을 거의 100개 이상이 있을 정도로 공간의 연결이 놀라운 곳이다. 행사를 해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 규모의 사실여부는 화장실 가는 길에 발견할 수 있다. 역시 사람이든 건물이든 겉모습으로만 판단해서는 안 되는 법이다.


*깨알 베트남 음식점 정보

Pho Hinh24 별 4.5 주소)  Vodičkova 24, 110 00 Nové Město, 체코

평일 10 AM – 10 PM

주말 12 PM – 10 PM

전화 +420 728 828 0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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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장 다닐 때 혹은 여행할 때 배운 간단한 베트남어는 프라하에서 꽤나 유용하게 쓰였다. 프라하에는 베트남 사람들이 많이 상주하고 있다. 그들은 슈퍼나 작은 상점들을 운영하기도 하고 이렇게 베트남 식당을 한국식당보다는 훨씬 더 가까이하고 있는데 그 이유는 프라하와 베트남은 동맹 국가이고 베트남 전쟁으로 힘든 시절 그리고 그 이후, 프라하는 베트남인들에게 프라하에서 공부할 수 있는 무료 교육비를 제공했다고 한다. 나의 전 직장 베트남 동료의 부모님 역시 프라하에서 만나 결혼하셨고 본인의 언니는 체코에서 태어났다고 한다.


나는 식당 직원에게 정중하게 베트남어로 ‘신짜오’ (한국어로: 안녕하세요) 인사를 했고, 직원 아주머니는 적잖이 놀라시며 환하게 웃어 주셨다. 베트남어로 말을 걸진 않으셨다. 사실 이 식당은 우연히 발견된 식당이다. 원래 가려던 베트남 식당의 문이 닫혀 있었고 이건 벌써 두 번째 맞는 바람이었다. 다른 한 베트남 식당은 집에서 10분 정도 거리에 있었고 그곳 역시 휴가 중이라는 쪽지가 문에 붙여져 있었다. 이번 식당은 시내에 위치해져 있기 때문에 휴가를 가지 않았을 거라는 이상한 믿음으로 도착했지만 강하게 바람맞았다.

왠지 모를 배신감에 태국 음식점으로 마음을 돌리고 구글 지도에 검색하면서 찾은 한 식당이 약간 거리가 있어 마음속으로 투덜거리던 찰나 10걸음 걸어 나온 교차로 코너에 있는 이 식당을 발견한 것이다.


한국음식을 찾지 않는 이유는 간단하다. 정말 고삐가 풀릴 뿐만 아니라 목줄까지 끊을 까 봐 두려워서 이다. 한국사람이기에 그런 것일 수도 있지만 감칠맛에 한번 혀를 내주게 되면 돌이킬 수가 없다. 그리고 그만큼 나를 풍요롭게 해 준다. 육체적으로. ‘건강하게 먹자’에는 양과 식단 조절이라는 키포인트가 있다.  

이후, 이케아 포인트라는 곳을 방문했다. 이곳은 1층과 2층에 디스플레이를 해 놓은 곳이고, 2층 한편에 카페가 마련되어 있다. 식사는 아닌 간단한 커피, 티 등의 음료 그리고 디저트가 있었다. 사실 이케아 포인트는 온라인으로 주문한 물건을 픽업하러 오는 픽업 포인트라서 디스플레 이장에 마음에 드는 물건이 있어도 바로 물건을 살 수 없고 주문해야 한다. 무엇보다, 이들의 취지는 이케아 매장들이 보통은 꽤나 넓은 지대를 필요로 하기 때문에 도심지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있기 때문에 이 매장은 도심에 사는 사람들이 주문할 물건을 직접 픽업해가는 ‘포인트’ 장소인 것이다. 내가 이렇게 이케아에 대하여 특별한 관심과 설명을 하는 이유는 이전부터 지속적으로 이케아에 지원했고, 또 면접도 보았기 때문인데 그들의 비전과 사내 문화, 환경을 대하는 여러 복합적인 회사의 목적성을 높이 사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쉽게도 이 프라하 시내에 위치한 이케이 포인트는 8월 16일부로 문을 닫는다고 한다. 클로징 전에 방문할 수 있어서 다행이지만, 이 좋은 공간을 다른 사람들에게 공유하지 못하는 점이 아쉽다.


아쉬움을 뒤로한 채 Mango, Flying tiger에서 지갑을 열었고 역시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행복해하는 나를 보며 한국으로 돌아가 열심히 경제활동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물건을 사기 위해서가 아닌 내가 원하는 소소한 소비행위를 위하여 행복감을 얻기 위해서. 미니멀 라이프라고 해서 구매나 소비 행위 자체를 하지 않는 것이 아니다. 재미있게도 미니멀 라이프의 정의는 문화 심리학자 김정운 교수님의 ‘바닷가 작업실에서는 전혀 다른 시간이 흐른다’에서 짧고 명확하게 설명해준다. “여기서 미니멀리즘이란 무조건 줄이는 게 아니다. ‘나쁜 것’을 줄이는 거다!” 그렇다. 우리에게 나쁜 것을 줄이는 거다. 그것이 스트레스라면 제거할 수 있는 여러 방법을 사용하여 제거해보고 만약 내가 아침마다 뭘 입을지 생각하다가 짜증이 난다면 계절별로 7벌만 준비해서 요일별로 돌려 입기를 해봐도 좋다. 아무리 옷장에 옷들이 가득 차 터지기 일부 직전이라고 해도 우리는 늘 입을 것이 없다고 불평하기 때문이다. 돌려 입기가 적응되면 삶의 여유가 생기고 다른 취미 하나를 가질 만한 충분한 시간을 획득할 수 있다. 방금 옷을 산 사람으로서 이 얘기를 한다는 게 염치없지만 팩트를 전달한다. 아무튼 오늘의 풀린 고삐는 직접 자진해서 제자리에 걸어 두기로 한다. 내일은 밧줄 말고 비밀번호를 걸어 놔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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